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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실크로드 불교유적 답사>-①시안 법문사·맥적산 석굴

송고시간2015-02-10 05:30

※<편집자 주> 연합뉴스는 백련불교문화재단(이사장 원택 스님)이 지난 2∼6일 마련한 중국 실크로드 불교유적 답사에 참여했습니다. 중국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에서 간쑤(甘肅)성 둔황(敦煌)까지 실크로드를 이동하며 만난 중국의 불교 유적지들을 소개합니다.

(시안·톈수이<중국 산시성>=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중국 서북 지역 중심 도시 시안은 진시황제 병마용으로 가장 유명하지만, 한편으로는 실크로드의 출발점이라는 상징성을 지닌 도시이기도 하다.

황제 73명을 배출한 이곳에서 상인들이 출발해 비단을 서역에 전했고 반대로 서역에서 전해진 불법(佛法)은 이곳 장안(長安)을 통해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전파됐다.

이를 웅변하듯 시안 곳곳에는 대형 사찰이 곳곳에 남아있다. 그 중 대표적인 사찰이 법문사(法文寺·파원쓰).

법문사 입구에 들어서면 어마어마한 위용에 놀라게 된다. 주차장에서 작은 전동차를 타고 이동해야 입구에 도착할 수 있는 법문사는 사찰이라기보다는 마치 불교를 주제로 한 대형 공원을 보는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은 최근에 와서 대대적으로 중창한 것이다.

<중국 실크로드 불교유적 답사>-①시안 법문사·맥적산 석굴 - 2

한쪽에 남은 원래 법문사는 모습이 소박하다. 아직도 승려 30여 명이 수행한다는 옛 법문사 입구에 서면 우뚝 솟은 팔각구층전탑(벽돌탑)이 맨 먼저 눈에 들어온다.

과거 인도 아쇼카 왕은 부처님 진신사리 중 19과를 중국에 보냈다고 한다. 법문사에는 그 중 부처님의 손가락뼈(지골)사리가 모셔졌다.

당나라 황제들은 법문사에 모신 부처님 지골사리를 30년에 한 번씩 시안으로 옮겨와 법회를 열고 공개했다. 그 당시 지골사리의 외출은 엄청난 이벤트였을 터. 수많은 사람이 경건한 마음으로 따랐을 그 길은 지금 훤히 뚫려 있는 고속도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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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 의종(833∼873)은 탑 아래 지골사리를 봉안할 지하궁전을 만들고 입구를 밀봉해 버렸고, 이후 지골사리는 천년 넘게 전설로만 전해내려왔다.

그러다 1981년 탑은 폭우로 한쪽이 무너져 내렸고 이후 탑을 완전히 해체해 보수하는 와중에 1987년 지골사리 존재가 다시 세상에 드러났다.

지하궁전에 밀봉해 놓은 탓에 지골사리는 유물 2천499점과 함께 다시 빛을 보게 됐다. 현재 남아있는 탑은 원래 목탑이었던 것을 그 때 전탑으로 보수한 것이다.

지골사리는 현재 매달 초하루와 보름, 석가탄신일에 공개된다. 그때마다 당나라 때 30년 만에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사람이 지골사리를 보고자 몰려든다. 지골사리는 우리나라에도 2005년 전시돼 큰 관심을 불러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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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사를 나와 다시 차로 4시간을 달렸다. 곳곳에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토굴이 뚫린 황량한 길을 지나면서 이 길을 말을 타거나 걸어서 움직였을 과거의 구법승들을 생각하며 도착한 곳은 톈수이(天水)다.

진시황제 조상이 살던 곳이자 서역에서 온 장안에 들어가기 전 머무르던 곳이기도 하다.

톈수이에는 중국 4대 석굴 중 하나로 꼽히는 마이지산(麥積山·맥적산) 석굴이 있다.

우리를 안내한 중국인 가이드가 1990년대 중반에 왔을 땐 말을 타고 지나갔다는 도로는 이제 소형 밴을 타고 이동해야 한다. 뿌연 안개에 쌓인 마이지산은 말 그대로 보리단을 쌓아놓은 듯한 모양에 곳곳에 구멍이 뚫린 모습이 거대한 개미집 단면을 보는 느낌이다.

<중국 실크로드 불교유적 답사>-①시안 법문사·맥적산 석굴 - 5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마이지산 석굴은 둔황석굴이나 룽먼석굴, 윈강석굴보다 규모는 작지만 그곳에서 느껴지는 불심은 절대 적지 않았다.

답사에 동행한 문무왕 동국대 불교사회문화원 연구원은 마이지산 석굴에 대해 "중국에 불교가 정착하는 과정과 상당히 깊은 관련이 있는 석굴"이라고 설명했다.

북위 시대 황실 후원을 받아 불교가 번성할 수 있었고 그 결과로 등장한 것이 거대한 불교 석굴들이라는 설명이다.

낭떠러지에 안치한 불상 대부분은 소조불이다. 마이지산이 역암(礫岩)산이므로 나무로 기본 틀을 만들고 그 뒤에 삼베를 감은 뒤 달걀흰자와 찹쌀 풀, 약재를 섞은 흙을 입혀 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채색하는 식으로 제작됐다. 달걀흰자와 찹쌀 풀은 일종의 접착제 역할을 하고 약재는 벌레를 막기 위한 옛 사람들의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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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떠러지에 연결된 194개 크고 작은 굴과 감에는 북위 시대 호리호리하고 눈까지 미소를 띤 불상부터 당나라 양식의 풍만한 얼굴의 불상까지 불상 7천200여 개와 벽화가 남아 있다.

중국 북송(北宋) 시기에 편집된 설화집인 태평광기(太平廣記)에 등장하는 '만개나 되는 감과 천 개나 되는 방이 있는데 비록 사람의 힘으로 이뤘다 하나 신의 솜씨가 아닌지 의심스럽다'라는 구절이 그저 과장된 찬사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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