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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명여권' 중국동포 구제 판결 잇따라

송고시간2015-01-06 15:45

"국가주권 무력화 우려" vs "행정법규 엄격히 적용해야"판결 확정되면 '신분 불일치자' 추방 정책에 변화 예상

서울고법(연합뉴스DB)
서울고법(연합뉴스DB)

(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 다른 사람의 신분으로 불법 입국한 '박춘봉 사건'으로 위명 여권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관심이 커진 가운데 위명 여권 사용 사실이 적발돼 추방될 처지에 놓였던 이들이 잇따라 구제 판결을 받고 있어 주목된다.

위명 여권이란 가짜 인적 정보를 담았지만 해당 국가가 정식 발급한 여권으로 특히 중국동포들 사이에 소지자가 많다.

판결이 확정되면 복수의 신분(다른 여권)으로 국내에 들어왔다가 적발된 중국동포를 '신분 불일치자'로 규정, 원칙적으로 추방하던 정부의 정책에도 변화가 따를 전망이다.

서울고법 행정4부(지대운 부장판사)는 6일 귀화를 취소하고 강제출국을 명령한 법무부의 결정이 부당하다며 A(여·40)씨가 낸 소송에서 1심 판결을 깨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밝혔다.

2001년 해상으로 불법 입국한 중국동포 A씨는 2005년 출입국 당국에 적발돼 강제 출국당했고, '입국 규제자' 리스트에 올랐다.

A씨는 이후 중국에서 자신의 이름 마지막 한 글자와 생년월일을 바꿔 새 여권을 발급받아 2007년 국내에 다시 들어왔고, 이듬해 귀화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2013년 과거 다른 인적 정보의 여권을 사용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법무부는 A씨의 국적을 박탈하고 강제퇴거(출국) 명령을 내렸고, A씨는 외국인보호소에 갇힌 채로 법무부의 국적 박탈 처분과 강제 퇴거 명령을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A씨가 두 번째로 만든 중국 여권이 허위 사실을 담은 위명 여권일지라도 국적법에 따른 귀화허가 취소 처분의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가 위명의 호구부(중국의 신분증명)와 사증을 발급받은 것은 '위조·변조'가 아니라 정당한 발급권자로부터 '허위 내용'의 중국 여권과 사증을 발급받은 것에 지나지 않고 귀화 신청을 하면서 신분 증명 서류 사본을 제출했어도 마찬가지로 '위조·변조'된 증명서가 아니라 '허위 작성'된 증명 서류"라고 판시했다.

한 마디로 당사자가 서류를 위조한 것이 아니라, 중국 당국이 정식으로 발급한 허위 내용의 문서라는 말이다.

재판부는 이어 "원고는 국적법 시행령에 규정된 '귀화 허가를 받을 목적으로 신분 관계 증명 서류를 위조·변조하거나 위조·변조된 증명 서류를 제출해 유죄 판결이 확정된 사람'에 해당하지 않아 위 규정을 근거로 한 귀화 취소 처분은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불법체류 전력이 반드시 귀화 불허 대상은 아니라는 점, A씨 가족 대부분이 귀화해 국내에 사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법무부의 처분은 지나치게 가혹한 것으로서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A 씨는 2008년 귀화 허가를 받기에 앞서 유전자 검사를 통해, 이미 한국 국적을 회복한 아버지와의 혈연관계를 확인했다.

재판부는 "상대방에게 불이익한 결과를 가져오는 행정처분의 근거가 되는 행정 법규는 형법 법규와 마찬가지로 엄격하게 해석·적용되어야 하고 행정처분 상대방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확장 해석하거나 유추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앞서 서울행정법원 1심 재판부는 첫 번째 입국 때와 다른 인적 정보가 담긴 A씨의 두 번째 여권이 국적법에서 규정한 '위·변조 증명서류'로 판단,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1심 재판부는 "귀화허가 취소가 적법한 이상 외국인의 출입국에 관한 사항은 주권국의 기능 수행에 필수적이므로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며 "강제 퇴거 처분 역시 재량권을 남용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편 수원지법 행정4부(김국현 부장판사)도 이름은 같지만 생년월일이 다른 여권을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 강제 출국 명령을 받은 중국동포 B(56·여)씨가 법무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최근 판결했다.

재판부는 "위명 여권은 사인(私人)이 위조·변조한 여권과 달리 중국 정부가 유효하게 발급한 것이고 다른 국가가 그 효력을 부인할 수 없다"며 "의심되는 여권이 유효한지는 발급한 외국 정부에 조회해 보아야 하는 것이지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위명여권이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여권의 효력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두 사건은 각각 국적법과 출입국관리법 조항이 쟁점이 됐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위명 여권 소지 전력자를 추방하는 문제를 다룬 공통점이 있다.

정부는 지금껏 다른 인적 정보가 담긴 복수의 여권을 사용한 것이 적발되면 일률적으로 해당자를 위명 여권 소지자로 간주, 강제 출국시키는 정책을 펴왔다.

두 여권 가운데 어느 것이 진짜인지를 확인할 길이 없으므로 신분이 불확실한 외국인을 국내에 둘 수 없다는 취지다.

따라서 정부는 위 판결들이 확정되면 위명 여권 사용자 단속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의 협조를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불법행위 처벌을 위한 입증 책임을 우리 정부가 져야 한다는 판결이 나온 것에 당혹감을 느끼는 분위기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관계자는 "위명 여권 문제를 처리할 때 중국 정부에 공문을 보내도 답신이 오는 사례가 거의 없을 정도로 협조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법무부는 위 두 사건 모두 상소했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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