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연합뉴스 최신기사
뉴스 검색어 입력 양식

<문화재 이야기> 같은 신석기시대 통나무배, 다른 대접

송고시간2014-11-03 07:00

중국선 발견현장에 수중박물관 지어 보존, 우린 유물 건지고 잔디밭 조성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2005년 9월5일, 국립김해박물관은 충격적이라고 할 만한 고고학 발굴성과를 발표했다. 경남 창녕군 부곡면 비봉리 44번지 일대 신석기시대 유적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8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초기 신석기시대 통나무 배를 찾아냈다는 것이었다.

이 선박은 비봉리 유적 중에서도 제2피트(조사구덩이) 제5 패층(貝層·조개무지) 아래서 출토됐다. 배가 확인된 지점은 해수면보다 2.0m가량 낮은 곳이며 비봉리 유적 중에서도 신석기시대 초창기 문화층에 속하는 곳이었다.

<문화재 이야기> 같은 신석기시대 통나무배, 다른 대접 - 2

발견 당시 배는 동서 방향으로 놓여 있었고, 강쪽을 향해 남쪽으로 약간 기운 상태였다. 실물 기준으로 최대길이 3m10㎝, 최대폭 60㎝, 두께 2.0~5.0㎝, 깊이 약 20㎝인 이 목선은 양끝 중 어디가 선수부(船首部·뱃머리)이며 선미부(船尾部)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폭이 상대적으로 좁아지는 동쪽 부분이 선수로 추정됐다. 배는 가운데를 잘랐다고 했을 때 그 단면이 U자형이며 통나무를 파내 만든 소위 환목주(丸木舟)다.

<문화재 이야기> 같은 신석기시대 통나무배, 다른 대접 - 3

원래 선체는 4m를 넘었다고 추정되며 철기나 청동기 같은 금속기가 발명되지 않은 당시로서는 대단히 치밀하게 가공한 흔적이 역력했다. 배를 만들기 위해 당시 사람들은 통나무를 군데군데 불에 태운 다음 돌자귀 같은 날카로운 석재를 이용해 깎아내고, 다시 갈돌과 같은 기구로 표면을 정리하는 방식을 구사했음이 드러났다. 이를 증명하듯 선박 곳곳에는 불에 그슬려 가공한 흔적인 초흔(焦痕)이 발견됐다. 배를 제작하는 데 쓴 나무는 소나무로 밝혀졌다.

김해박물관은 당시 이 비봉리선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배로 알려진 도리하마(鳥浜) 1호나 이키리키(伊木力) 유적 출토 목선보다 무려 2천 년 이상을 앞서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선이라고 발표했다. 이런 소식을 접한 당시 일부 기자가 세계 최고(最古)라는 데는 의구심을 표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중국에 없는 것은 세상에 없다'는 중국 쪽 발굴 사정을 궁금해하기도 했다.

<문화재 이야기> 같은 신석기시대 통나무배, 다른 대접 - 4

이로부터 얼마 뒤, 역시나 중국 대륙에서 신석기시대 목선 발굴 소식을 전했다. 중국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저장성문물고고연구소(浙江省文物考古硏究所)와 항저우 지역 샤오산구박물관(蕭山區博物館)이 샹후(湘湖)라는 유명한 호수 바닥을 준설하는 과정에서 샤오산(蕭山) 콰후자오(跨湖橋) 신석기시대 유적을 연차 발굴조사한 결과 신석기시대 독목주(獨木舟)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독목주란 글자 그대 나무 하나로 만든 배라는 뜻이니 통나무 배로 우리가 쓰는 환목주와 같은 말이다. 이들이 잔존 길이 5m60㎝, 두께 2.9~5.2㎝ 소나무로 제작한 이 목선을 발견한 시점은 2002년 11월이었다. 비봉리 통나무 배보다 몇 년 일찍 발견한 것이다. 이 목선을 탄소연대 측정한 결과는 7천~8천년 전. 비봉리 유적의 목선과 거의 같은 시기다.

한데 2008년, 김해박물관은 또 다른 소식을 전했다. 2004~2005년 비봉리 조사에서 발견한 같은 신석기시대 소나무로 제작한 통나무 배가 1척 더 있다는 내용이었다. 역시 단면 U자형인 또 다른 목선은 내·외부에서 돌도끼로 가공한 흔적이 발견됐고 불로 지진 자국도 드러났다. 현재 남은 크기는 길이 64.0㎝, 너비 22.0㎝, 두께 1.2~1.7㎝지만, 1호 비봉리선과 흡사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비봉리 유적은 이들 통나무배뿐만 아니라 신석기시대 생활상을 엿보게 하는 성과를 쏟아냈다. 유적 자체가 한반도에서는 처음으로 확인한 신석기시대 저습지 유적으로서, 망태기라든가 칼 모양 목기, 똥이 화석처럼 굳어 생긴 분석(糞石), 멧돼지로 추정할 수 있는 동물 그림 등 국내 최고(最古), 최초로 기록되는 유물을 다량으로 쏟아낸 것이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애초 홍수 예방을 위해 배수장이 들어설 예정이던 비봉리 유적은 2007년 8월에는 국가 사적 486호로 지정돼 현장이 보존되기에 이르렀다. 현장은 잔디밭을 조성해 보호 중이다. 통나무배 2척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존처리 중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선사고대실과 국립김해박물관에는 1호 목선 복제품이 전시 중이다.

이쯤이면 비봉리 유적이 그럴 법한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같은 8천년 전 신석기시대 목선인 콰후자오 통나무배가 중국에서 받는 대접과 비교해 보면 우리의 얼굴이 화끈거린다고 할 수밖에 없다.

2008년, 중국 당국은 저장성 성도 항저우 시내 중심가에서는 남동쪽으로 1시간 남짓 걸리는 콰후자오(跨湖橋) 유적 현장에다가 박물관을 지어 개관했다. 이 유적이 샹후(湘湖)라는 호수 바닥에서 발견됐으므로 어떻게 현장에다가 박물관을 짓느냐 되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지었다. 어떻게? 박물관을 물속에다 지은 것이다. 이른바 수중박물관을 완공했다.

<문화재 이야기> 같은 신석기시대 통나무배, 다른 대접 - 5

이 박물관 이름은 '콰후자오유지박물관'(跨湖橋遺址博物館). 유지는 유적에 해당하는 말이다. 이 박물관은 중국에서는 흔한 현장 박물관이 그렇듯이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뉜다. 하나는 발굴성과를 실제 유물과 사진 동영상 자료 등으로 보여주는 자료관이고, 다른 한 곳은 실제 발굴현장을 전시하는 유지관(遺址館)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박물관은 당연히 자료관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유적 현장을 보여주는 유지관이 거의 세트를 이루며, 실제 박물관 중심도 현장이다. 발굴이 끝나면 유물을 수거해 버리고 박물관 전시실이나 수장고로 옮기는 우리의 문화재 정책과는 판이한 대목이다.

콰후자오박물관 중 자료관은 호수와 육지가 만나는 지점에 배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 인근 통나무배가 출토된 호수를 보면 마치 버섯 머리 모양으로 지붕만 수면 위로 내민 유지관이 있다. 이 유지관이 애지중지하며 마스코트로 내세우는 주인공이 바로 통나무 목선이다. 우리 같으면 유물 훼손 논란이 있을 거라 해서 출토 지점에 해당 유물을 그대로 가져다 놓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지만, 이곳은 다르다. 보존처리를 끝낸 통나무배를 발견될 당시 위치 그대로 놓고 전시 중이다. 이렇게 되니 고고학을 모르는 사람도 통나무배가 지하 어느 지점에서 어떠한 상태로 있었는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문화재 이야기> 같은 신석기시대 통나무배, 다른 대접 - 6

현재까지 중국대륙에서 발견된 선박 중에는 가장 오래됐다 해서 현장 자체를 박물관으로 만들고, 그에서 한발 더 나아가 수중박물관까지 지어버린 중국을 두고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니깐, 그리고 항저우와 저장성은 돈이 많은 고장이니깐" 이런 말로만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유적으로만 보면 창녕 비봉리 유적이 콰후자오 유적에 비해 훨씬 풍부한 신석기시대 생활상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비봉리 유적을 위한 박물관을 짓기는커녕 고작 잔디밭을 조성해 보호하고 있을 뿐이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댓글쓰기
에디터스 픽Editor's Picks

영상

뉴스
댓글 많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