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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복도로 50년> ③ 홀로 설 수 있는 순환구조 만들어야(끝)

송고시간2014-10-19 07:00

전문가 "보조금 끊어질 때 대비해 제도 정비도 급선무"

부산 산복도로 모습
부산 산복도로 모습

<저작권자 ⓒ 2014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자치단체의 지원이라는 '목발'을 차버려도 주민이 스스로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진행된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많지만 전문가들은 진정한 도시재생은 주민이 지자체 도움 없이도 '홀로 서기를 할 때'부터 시작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자립으로 이어져야 진정한 '골목경제 활성화'

부산 동구의 '죽림공동체'.

2012년 12월, 1층짜리 아담한(50.4㎡) 건물의 '마을 공동작업장'이다.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 추진과정에서 만들어진 주민협의회 회원 29명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다가 지난해 4월부터 한과나 강정, 목공예작품 등을 만드는 곳으로 활용했다.

부산 산복도로 모습
부산 산복도로 모습

<저작권자 ⓒ 2014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만든 물건은 축제 행사장 등에서 팔아 한 달에 100여만원, 많게는 200만원까지도 수익을 냈다.

이렇게 번 돈으로 지난해 12월에는 김치를 담가 어려운 이웃 30가구에 무료로 나눠주기도 했다.

죽림공동체는 동구지역에 만들어진 주민협의회 10곳 중 가장 많은 수익을 내고 있다. 각종 활동에도 잘 참여해 마을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는 찬사를 받는다.

칭찬 일색이지만 '상황을 냉정하게 보자'는 목소리가 점차 나오고 있다.

마을활동가이면서 사회적기업 '인사이트영'을 운영하는 안효득 대표도 이런 목소리를 내는 사람에 포함된다.

그는 "도시재생으로 생겨난 여러 시설이 골목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한 데는 의미 있지만 '지자체 보조금'을 걷어냈을 때의 비용과 수익을 철저히 따져 자립가능성을 판단할 필요가 있다"며 "보조금을 걷어내는 순간 무너지는 공동체로는 르네상스도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년 동안 죽림공동체의 수도·전기요금 등 관리비는 600만원이 나갔다.

이 비용은 보조금으로 계산됐고 수익을 계산할 때 손실로 잡히지 않았다. 물론 재료비도 포함되지 않았다.

월 100만원의 수익을 안정적으로 받는다 치더라도 이런저런 비용을 생각하면 순수익은 없는 셈이다.

부산 초량 이바구길
부산 초량 이바구길

<저작권자 ⓒ 2014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이곳뿐만 아니라 2011년부터 현재까지 산복도로 사업 4년 동안 만들어진 33개의 마을 공동체의 상황도 비슷하다.

감천문화마을의 '감내 카페' 등 2∼3곳을 제외하고는 비용 이상의 수익을 낸 곳이 없다고 지자체도 인정하고 있다.

이 마을공동체 시설들은 '마을기업' '사회적 기업' '노인 일자리' 사업 등 각종 다른 보조금 지원을 한꺼번에 받고 있고, 담당부서도 제각각인 탓에 제대로 된 비용·수익 분석을 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안 대표는 마을 공동체 '자생력 확보'의 한 방안으로 전국의 마을 조직이 모인 '사회적 경제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지금 한 마을단위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수익으로는 자생력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소위 '사회적 경제'라고 불리는 마을기업이나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각종 지자체의 자활단체가 모두 모여 '골목 내수 시장'을 만들자는 것이다.

안 대표는 "전국의 마을 공동체가 하나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필요한 물건을 자신들끼리 구매하고 판매하면서 '서로가 끌어주고 당겨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며 "이렇게 '마을경제 생태계'가 구축되면 마을기업은 지역별·개인 기업별로 전문성도 키울 수도 있고 '판로개척'의 어려움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원도심 살리려고 폐·공가 인수했는데…이상한 규제들

산복도로의 집
산복도로의 집

부산의 한 지자체에 만들어진 한 마을기업은 간판만 걸려 있지 폐업 상황이나 다름없다.

2011년 마을주민 19명이 똘똘 뭉쳐 "원 도심의 골칫거리 폐·공가를 활용해 가게를 차리고 수익을 내보겠다"며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그런 곳을 인수한 것이 결국 발목을 잡고 말았다.

초기에는 백화점식으로 다양한 일을 하다가 사업이 진행되면서 '김장 담그기'나 '천연조미료 판매'로 특화를 원했지만 지자체는 사업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음식물을 만들거나 판매하는 건축물은 건축법상 용도가 '근린생활시설'이어야 하는데 인수한 곳은 '주택'으로 분류돼 있다는 이유였다.

건축물 용도변경을 추진하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던 이들은 또 다른 규제의 벽을 발견하고는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음식물을 만드는 곳은 식품위생법상 정화조 시설을 갖춰야 한다.

건물의 면적대비 일정규모 이상이어야 하는데 이곳은 재래식 공동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어 정화조가 아예 없다.

상황은 이곳뿐만 아니라 인근에 있는 폐·공가 대부분이 비슷하다.

과거 집을 다닥다닥 붙여 지은 탓에 내부에 화장실을 둘 여유가 없어 이곳 주민들은 공동화장실을 만들어 이용하며 살았다. 설령 정화조가 있는 폐·공가가 있어도 법에서 요구하는 수준을 갖춘 곳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산복도로의 집
산복도로의 집

<저작권자 ⓒ 2014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이 마을기업은 정화조 설치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사실상 사업을 접은 상황이다.

이곳 대표 김모(58·여)씨는 "위생환경을 갖추게 하려는 규제의 근본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다만 그는 '위생'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은 다른 수단으로 달성할 수 있는데도 틀에 박힌 현재의 규제만 고집하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마을기업의 특성상 내가 먹는 것을 좀 더 만들어서 이웃들에게 판매하는 것이어서 위생에는 무엇보다도 자신있다"면서 "대량생산을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건축물의 용도가 맞지 않다거나 시설물의 기준을 획일적으로 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원 도심이 생긴 역사를 되짚어 보면 건축법·식품위생법상의 시설규제를 다 충족할만한 데가 몇 군데나 있겠느냐"면서 "규제를 강행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 마을을 활용하라는 게 아니라 용도에 맞게 새로 지으라는 의미"라고 꼬집었다.

◇주민들 "예산지원도 좋지만 발로 뛰어 달라"

김씨는 "이런 문제로 사업을 놓은 지 3년이 돼 가는데 정작 담당 공무원은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다"고 탄식했다.

그는 "그동안 담당 공무원이 3번 바뀌었는데 첫 번째 공무원을 빼고는 영업장에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다"면서 "국가가 도움을 준다는 말만 믿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공무원이 영업장을 찾지 않으면 무슨 수로 현장의 목소리를 내느냐"고 일갈했다.

부산 초량 이바구길
부산 초량 이바구길

<저작권자 ⓒ 2014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그는 마을재생과 관련해서는 끝까지 현장을 책임 있게 지켜봐 줄 '책임공무원'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담당 공무원은 나름의 '억울한 사정'이 있다고 항변한다. 터무니없게도 자신이 담당자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마을기업과 관련된 업무를 처리하려면 구청에서는 경제진흥과, 문화체육과, 건축과, 주민생활지원 등 7개 부서가 협업해야 하는데 이게 잘 안되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에서 가장 활발하게 도시재생사업이 벌어지는 부산 동구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최근 '도시재생과'를 신설해 주목을 받고 있다.

황동철 동구 부구청장은 "부서 간 업무의 충돌이나 중복으로 비효율적인 면이 너무 많이 나타났다"면서 "부산시 차원에서는 이미 컨트롤타워가 만들어졌지만 정작 일선 행정조직에서 이를 따라가지 못해 새로운 조직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도시재생 사업이 아직 초창기인 만큼 국가 제도와 시책에 관심을 두면서도 현장중심의 사고를 해 달라"고 신설 조직의 공무원에게 당부했다.

황 부구청장은 "도시재생의 열풍으로 개념이 재정립되고 신조어가 생겨나고 연구기관의 자료가 쏟아진다. 법령이 재편되고 있고 과도기인 만큼 일선 공무원들이 현장에서 문제점을 발견해 적극 제도개선을 건의해야 한다"면서 "스스로 얼마나 환경변화에 민감하고 현장을 찾아봤는지 스스로 점검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 주민교육·역량강화 예산은 고작 10%

부산시가 물리적 시설개선에만 예산을 투입하지 말고 주민의 역량강화에도 신경을 쓰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금까지 집행된 산복도로 르네상스 예산 가운데 주민역량 강화에 투입된 돈은 2011∼2012년에는 3억원, 2013∼2014년에는 10억원 정도로 전체 사업비의 10%도 채 안 된다.

시설 확충과 함께 주민 교육에 필요한 예산이나 각종 회의 또는 마을축제 등 '커뮤니티 단결화'에 더 많은 예산을 들여야 관의 지원이 줄었을 때 주민이 자립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도시재생 사업의 '마을계획가'로 활동하는 오광석 한국해양대 교수는 "새로 만들어지거나 정비된 시설을 최종 관리하고 사용하는 주체는 결국 주민"이라면서 "주민이 재생사업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면 행정청의 공적부조가 끝났을 때 시설이 활용되지 못하거나 관리가 안 돼 결국 행정기관에 새로운 부담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rea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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