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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다닐 트리포노프 피아노 리사이틀

송고시간2014-10-15 14:52

음악 속에 대 자유를 누리는 이 시대 가장 비범한 음악가

(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과연 피아노 소리인가!

다닐 트리포노프는 피아노를 거대한 오케스트라로 바꾸어놓았다. 아니 차라리 거대한 우주로 바꾸어놓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그가 만들어낸 소리 중엔 일반적인 오케스트라의 악기 소리에 비길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므로.

지난 14일 저녁, 트리포노프의 영감 넘치는 연주에 청중은 모두 할 말을 잃은 듯했다. 바흐의 환상곡과 푸가는 거대한 대양과도 같이 장대했고,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번은 일종의 명상 삼매경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12곡은 마치 12점의 회화작품처럼 환상적인 이미지를 그려냈다. 그것은 상상을 뛰어넘는 피아노 연주였다.

<공연리뷰> 다닐 트리포노프 피아노 리사이틀 - 2

사실 기술적인 면에서 트리포노프의 피아노 연주를 따져본다면 흠 잡을 곳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간혹 빠진 음들도 있고 악보에 표기된 음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표현되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또한 템포나 리듬도 악보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트리포노프의 연주는 음악작품 자체가 지닌 역동적인 본질을 꿰뚫고 있기에 모든 이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미리 계산된 흔적이 전혀 없는 신들린 페달링, 피아노와 일체가 된 듯 거침없이 움직이는 그의 손가락을 보며 음악 속에 '대 자유'를 누리는 완전한 음악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바흐와 베토벤, 리스트의 곡들이 얼마나 심오하고 깊은 영감을 지닌 곡인지 새삼 깨우쳐 주었다. 그가 첫 곡으로 연주한 바흐의 환상곡과 푸가 BWV542 중 푸가를 예로 들어보자.

대개 하나의 주제를 여러 성부에 걸쳐 차례로 모방해가는 푸가라는 음악은 매우 논리적이고 때로는 현학적인 음악이라 여겨지곤 하지만 트리포노프가 들려준 푸가는 전혀 달랐다. 딱딱한 푸가의 주제는 부드러운 속삭임처럼 달콤했으며, 그 주제는 마치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져 파문을 일으키듯 동심원을 그리며 서서히 증폭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물결과 파도가 되어 우리를 압도해왔다. 그것은 논리적인 과정이라기보다는 그저 엄습해오는 것이었고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에너지의 흐름이었다.

반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32번은 고통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투쟁 과정처럼 느껴졌다. 1악장의 도입부에서부터 그의 피아노 소리는 처절한 투쟁의 고통으로 가득했다. 마치 지옥의 사자들이 토해내는 신음처럼 거친 음색, 사정없이 몰아치는 광기 어린 리듬에 정신이 아찔했다. 그러나 2악장이 시작되자 해탈의 기쁨을 머금은 유희의 세계가 펼쳐졌다. 그것은 신을 향한 한 편의 기도로 시작해 천국에서 벌이는 축제로 변모해갔다.

무엇보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이었다. 때로는 의미 없이 여겨지곤 했던 기교적인 악절들이 트리포노프의 손끝을 거치자 그 하나하나가 생생한 의미로 다가왔다. 리스트의 연습곡에 이토록 과감한 화성과 신비로운 표정이 담겨 있었던가! 그가 이 작품을 연주하는 60여 분간 마제파의 고통스런 여정, 도깨비불의 환영이 눈앞을 어른거렸고 모든 음표들이 노래하는 듯했다.

피아노 연주뿐 아니라 작곡과 편곡에도 능한 트리포노프는 이번 음악회의 세 번째 앙코르곡으로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중 '가보트'를 편곡 연주해 편곡자로서의 비범함도 선보였다. 아마 바흐가 이 피아노 편곡 연주를 들었다면 이토록 소박한 가보트의 선율이 멋진 화성이 붙은 대담한 곡으로 바뀐 것에 감탄스러워했을지도 모르겠다.

herena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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