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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양대 실습선 한바다호 '선장 역할' 체험기

송고시간2014-09-17 16:38

파도와 해류 영향으로 조타기 원하는 방향 조작 쉽지 않아김종성 선장 "선장은 '무한 책임자'…세월호 VHF16 채널로 구조요청했더라면"

한국해양대 실습선 '선장 역할' 체험
한국해양대 실습선 '선장 역할' 체험

(제주 남쪽 공해 한바다호 선상 = 연합뉴스) 17일 제주도 남방 40마일 공해상을 운항중인 한국해양대학교 실습선 한바다호 선교(브리지)에서 연합뉴스 심수화 기획위원이 김종성 선장의 양해를 얻어 '선장 역할'을 체험하고 있다. 16일 경북 포항에서 '2014 해양실크로드 탐험대' 출정식을 마치고 출항한 한바다호는 중국 광저우를 향해 운항중이다. 2014.9.17 << 지방기사 참고 >>
sshwa@yna.co.kr

(제주 남쪽 공해 한바다호 선상 = 연합뉴스) 심수화 기획위원 = 17일 낮 오전 10시. 북위 32도 48분, 동경 127도 14분 제주도 남방 40마일 공해상.

16일 오후 4시 경북 포항 영일항에서 '2014 해양실크로드 탐험대' 출정식을 마치고 출항한 한국해양대학교 실습선 한바다호는 잔잔한 바다 위를 15노트의 항속으로 20시간째 미끄럽게 남서진하고 있었다.

중국 광저우까지 탐험대 동행취재에 나선 기자는 한바다호 김종성(43) 선장의 양해를 얻어 선교(브리지)에서 선장이 항해 중 취하는 역할과 기기조작법을 배우는 '선장 역할 체험'을 허락받았다.

선장은 별도로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선내에서 상황이 발생하면 언제든지 조처를 할 수 있는 '24시간 근무체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하며 수시로 선교를 드나들며 항로가 복잡하거나 긴박한 상황에 부닥치면 직접 항해를 지휘한다.

선장의 주 근무공간이자 1·2·3등 항해사의 당직근무 공간인 83㎡ 규모의 한바다호 선교 안에 들어섰다.

레이더 모니터, 전자해도, 기관실 무인화 모니터, 분리평형수 제어판, 텔레그라프(자동변속기), 바우 트러스트, VHF 폰, 폐쇄회로 모니터, 오토 파일럿(조타기) 등 선박 운항에 필요한 각종 첨단 기기와 계기판 등이 넓게 펼쳐져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이들 기기와 계기판은 브리지 콘솔이라는 묶음 속에 일목요연하게 배치돼 있다.

선교 뒤편에는 학생들이 항해 실습을 할 수 있는 장비와 테이블, 해도 등을 비치한 66㎡ 크기의 공간이 있었다.

심효상(29·한국해양대 61기) 2항사는 "한바다호 선교도 주간에 사관 1명이 근무할 수 있는 원맨 브리지 시스템으로 설계돼 있다"며 "일반 상선의 경우 브리지 면적이 실습선인 한바다호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크기"라고 말했다.

선장은 선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쌍안경으로 항로 해상 상황과 주변의 다른 선박들의 운항 상황을 살피고 나서 날씨, 선박 운항 속도, 주간작업 상황, 승선원 근무 배치, 기관 작동 등을 점검한다.

항로 주변에 선박이 많을 때는 조타수에게 지시해서 자동조작 상태인 조타기를 수동으로 바꿔서 긴급상황에 대비토록 한다.

선교 곳곳에는 봉이 가로로 설치돼 있는데 이는 악천후 때 선박이 심하게 요동치기 때문에 이 봉을 잡고선 채로 근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양실크로드 대장정
해양실크로드 대장정

(포항=연합뉴스) 16일 경북 포항 영일만항에서 열린 '코리아 해양실크로드 탐험대' 출정식에서 탐험대원들이 한국해양대의 실습선인 한바다호를 타고 대장정에 나서고 있다. 탐험대는 오는 10월 30일까지 45일 동안 9개국 10개항 2만2천958㎞에 이르는 대장정을 펼친다. 2014.9.16
<< 지방기사 참고, 경북도 >>
haru@yna.co.kr

광저우까지 항해하는 동안 기상 상태가 어떤지 궁금했다.

통신장이 관리하는 기상자료 모니터를 확인한 결과 지난 13일 필리핀 동부에서 발생한 태풍 '갈매기'가 중국 내륙으로 진입한 상태여서 바다상태는 매우 양호하다고 알려줬다.

2등 항해사가 출항 전에 항로상의 여러 자료를 입력시켜 놓는 액디스라는 전자해도가 GPS와 연동하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운항 지점을 확인할 수 있고 AIS 기기를 통해 항로 주변을 운항하는 선박 명칭과 호출부호, 속도, 목적지를 알 수 있었다.

이는 항로상에 있는 선박별 각종 정보를 서로 공유하도록 강제돼 있기 때문이다.

또 VHF 공용채널 16번을 통해 선박과 선박 간에 각종 연락을 취할 수 있었는데, 이 채널은 사용하면 광범위한 해역에 있는 모든 선박이 통화 내역을 들을 수 있다.

따라서 조난신호를 보내야 하는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김 선장은 세월호의 긴급 상황 때 VHF 16을 사용, 구조요청을 했더라면 주변의 모든 선박이 빠른 시간 안에 사고 현장으로 달려와 구조작업에 동참할 수 있었을 텐데 왜 VHF 12를 사용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VHF 16을 사용하면 부산∼울산 해역에 있는 선박들은 통화 내역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수신 범위가 넓다.

항해사의 눈인 레이더 모니터는 통상 동심원 반지름 12마일 해역까지 확인할 수 있으나 제주 공해상에서는 선박 운항 수가 적어 전방 20마일까지 점검 할 수 있을 정도로 조정해 놓고 있었다.

항구나 하구 등 복잡한 구역으로 진입하면 레이더 체크 구역을 3마일까지 줄인다.

1분당 프로펠러 회전 속도를 확인할 수 있는 RPM 모니터상에는 155로 나타나 있었다.

한바다호는 RPM을 176까지 높일 수 있도록 설계됐지만 엔진에 무리가 가지 않게 일정한 속도로 장시간 달릴 수 있는 155로 고정해 놓았다고 한다.

거의 2시간여 동안 각종 운항기기의 작동을 설명을 마친 김 선장은 드디어 기자에게 선박 운항의 상징인 조타기를 잡는 기회를 줬다.

'해양 실크로드' 출항
'해양 실크로드' 출항

(부산=연합뉴스) 한국해양대 해사대생 91명을 포함한 200여 명으로 구성된 '2014 해양실크로드 탐험대'가 16일 포항에서 한바다호를 타고 출발하고 있다. 이들은 신라시대 고승 혜초 스님이 연 바닷길인 '해양 실크로드'를 재현하기 위해 10월 30일까지 45일간 9개국 10개항에 이르는 주요 거점 도시들을 항해한다. 2014.9.17 << 지방기사 참고, 한국해양대 >>
ccho@yna.co.kr

선교 가운데 지점에 설치된 조타기는 자동조작 상태에서 222도에 맞춰져 있었다.

전방위를 360도, 0을 정북 방향으로 잡았을 때 광저우 쪽인 남서방향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김 선장은 조타기를 수동상태로 전환한 뒤 230도를 유지한 채 5분 동안 조작할 것을 주문했다.

자동차 핸들 크기보다 작은 조타기를 매우 부드럽게 좌우로 작동할 수 있었지만 230도를 맞춰 놓아도 파도나 해류 등의 영향으로 계속 모니터상의 수치가 달라지는 바람에 230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았다.

조타기를 좌나 우로 한꺼번에 급히 돌려버리면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된 급변침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한바다호의 경우 터닝서클 설계치는 오른쪽 조향은 407∼441m, 왼쪽 조향은 374.6∼459.7m 정도였다.

한바다호가 원 한바퀴를 도는데 이 정도 거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광저우 항에 접안하기 위해서는 난샤강 입구에 있는 귀샨도 부근에서 중국인 도선사가 승선한 뒤 수많은 선박이 오가는 강을 따라 7시간이나 올라가는데 조타수는 이때 조타기를 수동으로 전환해 놓고 계속 조작해야 한다.

김 선장도 선교에서 함께 근무하는 것은 물론이다.

선장의 근무자세를 묻자 김 선장은 "선장은 24시간 근무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무한책임자이고 따라서 승선자에게 내린 지침도 '문제가 있으면 하시라도 즉시 보고하고 필요하면 즉시 찾아와서 보고하라'이다"라며 "엄격한 의미에서 선장은 안전한 항해를 위해 리더십, 포용력 등 모든 수단을 동원돼야 하겠지만 특별한 근무 매뉴얼이 없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감(感 )'이 매우 중요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선장 역할 체험'을 마친 시각은 오후 3시께.

이때 한바다호는 체험 시작 때보다 80마일(148㎞)이나 더 남서진해 북위 31도 41분, 동경 126도 14분 제주 남방 90마일 해상을 달리고 있었다.

동양최대의 실습선인 한바다호 선교에서 조타기를 잡고 '선장 위치'에서 선박 운항 기기 원리 이해와 함께 안전 운항을 고민해 본 시간은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sshw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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