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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가능한 일본> 아베, 7년만에 '집단자위권 고지' 등정

송고시간2014-07-01 17:31

'경제살리기'로 민심 붙잡고 의회장악한 뒤 '속전속결'

아베 신조(오른쪽) 일본 총리가 지난해 10월 27일 자위대의 날 행사에서 자위대 사열에 나서는 모습.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아베 신조(오른쪽) 일본 총리가 지난해 10월 27일 자위대의 날 행사에서 자위대 사열에 나서는 모습. (AP=연합뉴스 자료사진)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집단 자위권 추진은 2006∼2007년 제1차 아베 내각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6년 9월, 전후세대로는 처음이자 '최연소 총리'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을 달고 취임한 아베 총리는 필생의 과업으로 생각하는 '전후체제(패전의 결과로 받아들이게 된 평화헌법 하의 일본 체제) 탈피'를 향한 첫 과제로 집단 자위권을 택했다.

아베 총리는 과거 저서를 통해 '미국과 일본 국민이 상대 국민을 위해 피를 흘릴 때 동등한 동반자 관계가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미국이 공격받았을 때 일본이 함께 반격할 수 있는 집단 자위권이야말로 태평양전쟁 전승국과 패전국 관계를 넘어 대등한 미일관계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할 '관문'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일부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과업' 달성을 위한 첫 조치로 2007년 4월 집단 자위권을 논의하는 자신의 자문기구인 '안전보장의 법적 기반에 관한 간담회(안보법제간담회)'를 설치했다.

그러나 정권이 1년 단명으로 끝나면서 뜻을 접어야 했다. 2007년 5월12∼13일 교도통신 여론조사에서 집단 자위권 행사에 대해 62%가 '지금 상태(행사 불가능한 상태)로 좋다'며 반대한 데서 보듯 여론도 밀어주지 않았고, 한때 20%대로까지 떨어진 내각 지지율로는 중대 안보과제를 추진하기에 역부족이었다.

2012년 12월 총선거를 통해 재집권한 아베 총리는 다시 집단 자위권을 추진했다. '일장춘몽'으로 끝났던 1차 임기 때와는 본인도, 주변 상황도 달라져 있었다.

'대국굴기'를 본격화하고 있는 중국이 해양진출 확대를 꾀하며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열도 주변 해역에서 긴장을 고조시켰고, 북한은 2009년과 2013년 제2차, 3차 핵실험을 실시하자 안보에 대한 일본인들의 경각심은 7년전에 비해 한결 높아졌다. 또 국방예산을 감축한 미국은 일본이 미일동맹의 맥락에서 동북아 안보와 관련, 더 많은 역할을 맡아주길 희망하게 됐다.

안보환경이 이처럼 달라지면서 집단 자위권으로 미일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과거 어느 때보다 설득력 있게 들리게 된 것이다.

아베 총리 본인도 첫 임기 때에 비해 한결 주도면밀하게 일을 추진했다.

취임 이후 한동안 안보와 역사 등 '논쟁 사안'의 의제화를 피하는 대신 '아베노믹스(대담한 금융완화와 재정출동, 성장전략으로 구성된 아베 총리의 경제정책)'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먼저 안정적인 정권 지지기반을 구축하는 길을 택했다.

아베노믹스가 불러온 엔저와 주가상승이 작년 7월 참의원 선거 대승을 견인하면서 연립여당인 공명당과 함께 중·참 양원 과반의석을 확보, 야당의 힘을 빼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집단 자위권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 아베 총리는 작년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개헌 발의요건을 중·참의원 각 3분의 2에서 각 과반수로 낮추는 헌법 96조 개정 카드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려 했다가 여론의 반응이 좋지 않자 사실상 철회한 채 선거를 치르는 기민한 결정을 했다.

개헌의 문턱을 낮춤으로써 교전권을 부정한 헌법 9조를 개정하는 정공법으로는 어렵다고 판단한 아베 총리는 각의(국무회의) 결정을 통해 헌법해석을 변경하는 이른바 '해석개헌'으로 방향을 굳힌 것이다.

방향성이 정해지자 아베 총리는 거침이 없이 일을 밀어 부쳤다. 우선 작년 8월 헌법해석을 담당하는 내각법제국 장관을 집단 자위권 용인파로 교체했다. 통상 내각법제국 차장을 승진시켜온 그간의 관례를 깨고 집단 자위권 행사를 적극 지지하는 고마쓰 이치로(小松一郞) 당시 주프랑스 대사를 법제국 장관으로 내세운 것이다.

실무적인 논의는 1차 아베 내각때와 마찬가지로 안보법제간담회에 맡겼다. 신뢰하는 관료인 다카미자와 노부시게(高見澤將林·방위성 출신), 가네하라 노부가쓰(兼原信克·외무성 출신) 등 2명의 내각관방 부(副)장관보가 논의과정에 깊숙이 관여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뜻을 철저히 반영하게 하되, 형식만은 전문가들의 논의로 포장했다.

1차 D-데이는 지난 5월15일이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안보법제간담회가 작성한 '관제 보고서'를 받은 뒤 기자회견을 통해 집단 자위권과 관련한 헌법해석을 변경하려는 구상을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당시 아베 총리는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옮겨가는 역사적 전환을 의미하는 집단 자위권에 대해 설명하면서 해외 유사시 미국 배를 타고 피신할 여성과 아이들을 지키는 데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마치 강의하듯 그림판까지 동원했다.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사례를 거론하며 타국의 전쟁에 휘말릴 집단 자위권의 위험성을 감추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해석개헌은 편법'이라는 지적도 나왔지만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야당도 없었고, 아사히, 마이니치, 도쿄신문 등 자유주의 성향 언론의 비판보도도 국민적 저항여론을 일으키기엔 역부족이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관문은 평화주의 정당을 표방하며 집단 자위권에 신중론을 펴온 공명당이었다.

5월20일부터 시작된 연립여당(자민·공명) 협의에서 공명당은 한동안 집단 자위권의 남용 방지장치 부재 등을 거론하며 저항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 주변 인사를 통해 '창가학회(공명당의 모체인 종교단체)와 공명당의 관계는 정교분리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정부 견해를 수정할 가능성까지 제기하며 압박하자 공명당은 한 달만에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줄곧 집단 자위권에 대해 반대에 가까운 신중론을 펴온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공명당 대표가 지난달 26일 기자회견에서 "헌법의 규범성 등을 유지하면서 (헌법) 해석을 정리, 보충하고 명확히 하는 기능을 정부가 갖고 있다"며 아베 정권이 추진 중인 집단 자위권 헌법 해석 변경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아베 총리는 마지막 관문을 넘어섰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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