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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대신 총 들고 전쟁터 뛰어든 소년병들 '홀대'

송고시간2014-06-23 15:47

정규군 인정 받고도 국가유공자 지정 안돼…"명예 지켜줘야"

"6·25 징집 아동권리 침해" 첫 헌법소원
"6·25 징집 아동권리 침해" 첫 헌법소원


(대구=연합뉴스) 최수호 기자 = 6·25전쟁 당시 10대 소년병 징집행위가 법치주의에 위반됐다는 헌법소원이 처음으로 제기됐다.2014.6.23
≪지방기사 참고≫
suho@yna.co.kr

(대구=연합뉴스) 최수호 기자 =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9월.

당시 17세 소년이던 박태승(81)씨는 고향인 경북 경산 한 초등학교에 차려진 제3야전병원에서 부상 군인 등의 피고름을 닦으며 매일매일을 보내다가 전쟁터에 투입됐다.

인근 의성·군위·김천 등지에 형성된 전선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간다는 소식을 들은 뒤 야전병원에서 만난 한 장교를 따라 군에 입대한 것이다.

3주 간의 훈련 후 군번을 받고 육군 이등병이 됐다. 박씨가 속한 부대는 안동~원주~동두천~평양 등을 거치며 북진하다가 그해 11월 중공군 인해전술에 밀려 다시 남쪽으로 후퇴해야 했다.

사방이 어둑어둑한 적지를 사력을 다해 빠져나오던 중 또래 한 소년병이 유탄을 맞고 쓰러졌다. 부상 소년병은 도망칠 기력이 없자 박씨에게 "죽여달라"고 애원했다.

두려움이 엄습해왔지만 그 말을 들어주는 게 고통을 덜어주는 방법이라 판단했다. 박씨는 눈을 질끈 감고 방아쇠를 당겼다.

박씨는 "전쟁터에서 부상 전우를 쏴죽이고 혼자 탈출한 것은 살인행위로 어떤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도의적 책임을 면키 어렵다"며 "죄의식을 떨쳐내지 못하고 한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고 말했다.

어린 나이에 극한의 상황을 겪은 박씨는 1955년 2월 일등중사로 제대했다. 하지만 가세는 이미 기울어져 있었다. 학업을 제대로 마치지 못해 중학교 졸업장도 없었기에 전쟁 후에도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장성곤(81)씨도 대구 고산고등공민학교 2학년이던 17세에 전쟁에 참가했다.

1950년 7월 전쟁으로 휴교 중일때 논에서 벼를 심다가 교직원에 의해 학교 운동장으로 끌려갔고, 이미 모여있던 다른 동기생 등과 함께 군용 트럭에 올라타야 했다.

박태승 6ㆍ25참전 소년병 중앙회 회장(오른쪽) (연합뉴스 DB)

박태승 6ㆍ25참전 소년병 중앙회 회장(오른쪽) (연합뉴스 DB)

대구 한 초등학교에 까까머리를 한 장씨 일행이 도착하자 한 장교는 "(너희들은) 대한민국 국군에 입대했다. 나라를 위해 죽음을 안타까워 하지마라"고 소리쳤다.

변변한 군복이 없어 사복차림으로 6일 간 훈련받은 후에야 군복과 총이 주어졌고, 장씨 등은 영천·백마고지전투 등에 투입됐다.

장씨는 "싸우면서 난생 처음 사람을 죽였고 처절하게 발악도 했다. 역겨움에 기절하기도 했으며 힘겨움에 눈물이 마르지 않는 시간도 견뎌야 했다"며 "우리는 그렇게 싸웠고 나라에 충성했다"고 전했다.

국방부 등에 따르면 6·25전쟁 당시 박씨·장씨처럼 병역 의무가 없는 18세 미만의 어린 나이에 연필 대신 총을 잡고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건 소년·소녀병은 총 2만9천603명(1950년 6월25일~1953년 7월27일)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6·25전쟁 발발 60년을 훌쩍 넘긴 최근에야 공식 파악한 수치다.

정부가 소년·소녀병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수 십년간 시간을 끌어온 사이 팔순 나이에 이른 이들 대부분은 변변한 보상조차 받지 못하고 전쟁 후유증 등에 시달리다가 하나둘 숨졌다. 이제 생존 소년·소녀병은 6천~7천여명 뿐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6·25참전 소년·소녀병전우회 측은 "소년·소녀병의 경우 자원입대한 경우도 있었지만 징집 등 의사와 상관없이 입대한 경우가 더 많았다"며 "국제법적으로는 18세 미만 소년·소녀의 징병·참전이 금지돼 있어 (정부가) 지금껏 감춰온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소년·소녀병의 전체 규모가 파악된 지금도 이들에 대한 처우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생존 소년·소녀병들은 현재 정부로부터 월 17만원 정도의 참전수당만 받고 있을 뿐 더 이상의 예우는 받지 못하고 있다.

또 6·25참 전소년·소녀병전우회는 지난 16대 국회부터 끊임없이 모든 소년·소녀병들에 대한 국가유공자 지정을 청원했지만 해당 법안은 번번이 폐기됐다. 국가유공자로 지정되면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고, 연금도 지금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박태승 전우회장은 "지금이라도 정부가 어린 나이에 몸을 바쳐 나라를 지킨 소년·소녀병들에 대한 명예를 지켜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su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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