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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사 투영된 장샤오강의 작품세계>

대구서 국내 첫 대규모 회고전시 열어'혈연-대가족', '천안문', '기억과 망각' 등 총망라
장샤오강 기자회견
장샤오강 기자회견(대구=연합뉴스) 이재혁 기자 = 13일 중국 현대미술 작가 장샤오강(張曉剛)이 대구미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는 14일 개막하는 '장샤오강, Memory + ing'는 9월10일까지 계속된다. 2014.6.13
yij@yna.co.kr

(대구=연합뉴스) 한무선 기자 = 중국의 대표적인 현대미술가 장샤오강(張曉剛·56)이 오는 14일부터 9월 10일까지 대구미술관에서 열리는 자신의 회고전 '장샤오강, Memory + ing'를 앞두고 대구를 찾았다.

장샤오강은 13일 오후 대구미술관이 마련한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에서 첫 대규모 회고전을 열게 된 소감과 함께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펼쳤다.

장샤오강은 "제가 30여년간 그려온 작품의 주제를 하나로 정리하긴 어렵지만 모든 작품에 생명과 시대와의 관계가 들었다고 봐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2006년 국내 한 갤러리에서 '기억과 망각'이라는 개인전을 통해 30여점의 작품을 선보였고 앞서 2000년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하기도 했다.

장샤오강은 1980년대 중국 미술계의 주류였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화풍을 거슬러 서구 모더니즘의 전위성을 수용했던 작가다.

그는 1960~70년대에 걸친 문화혁명, 1989년 천안문사태 등 중국의 혼란기를 겪으며 슬픔과 고뇌를 안고 살아가는 개인의 모습을 인물화 등으로 그려내면서 중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했다.

1990년대 그의 이름을 세계무대에 각인시킨 '혈연-대가족' 시리즈는 격동의 현대사를 지나온 중국인들의 모습을 가족사진이라는 형식으로 담아냈다.

이 시리즈의 한 작품은 지난 4월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9천420만 홍콩 달러(125억원 상당)에 팔렸다. 그의 작품 최고가는 300억원대로 알려졌다.

이번 대구미술관 전시는 2009년 호주에서 열린 전시에 이은 장샤오강의 두 번째 회고전으로, 신비스런 느낌의 초기작부터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거나 전통회화를 재해석한 근작까지 105점을 한자리에 모아 그의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다음은 장샤오강과의 일문일답.

-- 회고전까지 총체적인 작업의 흐름은 무엇인가.

▲ 30여년 동안 작가 생활을 하면서 해온 작업을 한 번의 전시회에 담아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간의 작가생활을 하나의 주제로 이야기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작품을 하는 모든 시기마다 같지 않은 일이 있었고 그때마다 감정도 다 다르다. 지금 이 시대는 사람이 따라가지 못할 만큼 급격히 발전하고 있다. 회고전의 방향을 하나로 말하라면 생명과 시대 간에 형성되는 관계 또는 모순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장샤오강 회고전
장샤오강 회고전
(대구=연합뉴스) 대구미술관이 오는 14일부터 9월 10일까지 중국 현대미술가 장샤오강의 회고전을 연다. 사진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혈연-대가족'. 2014.6.10 << 대구미술관 >>
mshan@yna.co.kr

-- 문화혁명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 문화혁명 당시 중국은 폐쇄된 국가였고 외로웠다. 우리 연배가 예술에 대해 공부할 땐 중국 밖 세계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공산당 이론에 대한 이념 교육을 주로 받던 시대였다. 처음으로 인상파 화풍을 알게 된 것은 대학 2학년이던 21세, 고흐 작품을 처음 본 때가 대학 졸업한 후인 24세 때였다. 처음 해외로 나갔을 때가 33세였다. 우리 세대들은 대체로 이런 과정을 겪었다. 이번 전시는 한 명의 중국 예술가가 서양의 미술을 알게 돼 계속 발전해 현재 자신의 자아를 찾는 단계를 잘 알 수 있는 자리다. 예술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겪은 모순, 의심, 기쁨을 이번 전시가 모두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 작품에 표현한 가족의 의미는.

▲ 대가족 시리즈는 집에 있던 오래된 사진을 보고 영감을 얻어 그렸다. 1992년 유럽에서 서양 미술에 대해 탐구할 무렵은 자아에 대해 성찰하는 시기였고 예술가로서 절망적인 시기기도 했다. 나는 누구인가,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 고민에 휩싸였다. 서양의 화풍만을 따라가는 예술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중국사람으로서 중국에서 자아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중국은 아주 복잡한 국가였다. 때마침 가게 된 고향 집에서 부모님의 옛 사진을 보고는 중국에 있는 가정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느 가정이었지만 국가가 가정에 미치는 영향 같은 것을 사진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모두는 대가정이라는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 혈연-대가족 시리즈에 표현된 빛 또는 얼룩의 의미는.

▲ 초기작부터 작품 속에 빛을 나타내는 것을 좋아했다. 유럽에 있을 때 서양 화가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게 빛이었다. 화면에서의 빛은 강조하거나 이상한 기분을 주기도 하므로 작품에서 빛이 구현되는 것을 좋아한다. 대가족 시리즈의 빛 또는 얼룩 모양은 시간의 흔적이라 말할 수 있다. 이는 제 작품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로 고통, 절망 등을 나타내기도 한다.

-- 한국미술을 접해본 소감은.

▲ 한국에는 좋은 화랑과 미술관이 있다. 이번에 여러 소장가를 방문하고 그들의 소장품을 보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 거의 세계 정상급으로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갖고 있어 놀랐다. 심지어 제 작품을 가진 분도 있었다. 화랑에서도 여러 훌륭한 작품, 대가의 작품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작가에게 천안문 사태의 의미는. 앞으로 어떤 중국을 그릴 것인가.

▲ 천안문 사태를 포함한 천안문은 중국인에게 복잡한 개념의 대상이다. 제 연령대 중국 사람들은 천안문을 전통적인 중국의 건물이라기보다 우리와 함께 성장한 역사라 생각한다. 천안문을 그릴 때가 천안문사태가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천안문은 모두 세 작품이 있는데 대구 전시작은 그 중 하나다. 유럽에서 돌아와 천안문을 다시 봤을 때 내가 천안문 아래 살아가는 중국 사람이란 자각을 하게 됐다. 제 연배 중국인들은 중국 최근 100년 역사의 가장 많은 일이 일어난 시기를 살았고 제 작품에서도 개인이 30년을 겪은 역사를 다 볼 수 있다. 예술가로서 겪는 생활과 저는 분리된 게 아니라 일체여서 제게 과거, 현재, 미래가 구분이 없고 모두 같은 것이다.

-- 작가로서 지금 행복한가.

▲ 제 작품은 미술시장에서 최고가의 작품은 아니다. 경매시장에서 낙찰된 가격과 화랑에서 실제 팔리는 금액은 다르다. 제 작품을 많은 분이 좋아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이 얼마에 팔렸는가가 아니라, 작품의 예술적 가치가 얼마인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 그림을 그리고 제 내면을 모두 그림으로 표출할 수 있다면 그것이 제게는 행복이다.

mshan@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4/06/13 18:18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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