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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낙선재② 조선의 조형미가 응축된 장소

송고시간2014-05-07 09:44

창덕궁 낙선재② 조선의 조형미가 응축된 장소 - 2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낙선재는 본래 창경궁 권역에 속해 있었다. 수강재 옆의 높은 담 너머가 창경궁이다.

이 담은 덕혜옹주가 생활하면서 세워졌다고 한다. 당시 창경원에 놀러온 사람들이 수강재 근처까지 와서 소란을 피우자 경계를 가르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통해야 낙선재에 갈 수 있다.

낙선재는 조선을 대표하는 정치 공간이었던 인정전과 국왕이 평소에 거처하던 희정당을 지나면 닿는다.

흥선대원군이 현판을 쓴 장락문(長樂門)이 정문 역할을 한다. 장락문에서 앞쪽을 바라보면 넓은 마당 안에 낙선재가 자리하고, 위쪽으로 아름다운 정자인 상량정(上凉亭)이 서 있다.

낙선재는 한눈에도 창덕궁의 다른 건물과 구별된다. 이유는 빛깔이다. 낙선재에는 단청이 없다. 그래서 단아하고 질박한 느낌을 준다.

왕이 아니라 사대부가 조성한 저택 같다. 헌종은 사치를 멀리하고 검소함을 드러내기 위해 단청을 배제했다고 전한다.

꾸밈없는 첫인상 때문에 수수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낙선재는 화려한 건물이다.

색이 칠해지지 않은 지붕만 봐도 그렇다. 서까래 위에 다른 서까래를 잇대어 단 겹처마다. 낙선재를 둘러싸고 있는 행각은 홑처마인데, 홀로 멋스러운 지붕을 이고 있다.

문살과 창살도 독특하다. 평상시에는 관람객을 위해 문이 열려 있어서 알아채기 어렵지만, 문양이 단순하지 않다. 서양의 현대 화가들이 그린 추상화를 떠올리게 한다. 입체감을 살리고 조형미를 오롯이 담아냈다. 형태와 질감이 다양해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창덕궁 낙선재② 조선의 조형미가 응축된 장소 - 3

낙선재와 석복헌 사이에 있는 담도 특이하다. 거북의 등껍데기와 닮은 귀갑문이 있다. 거북처럼 왕이 만수무강하길 기원하는 장식이다.

또 누마루 아래에는 얼음이 깨져 있는 듯한 빙렬문(氷裂文)이 있다. 안쪽에는 아궁이가 있었는데, 화마를 막기 위해 고안한 장치였다고 한다.

정면 6칸, 측면 2칸의 건물 내부도 색다르다. 온돌과 마루가 공존하고 있으며, 누마루 안에는 동그란 만월문이 있다.

일반 관람객에게 4월 1일 공개된 낙선재 뒤뜰에는 화계(花階)가 마련돼 있다. 화계는 수목을 심은 층계 형태의 단을 의미하는데, 낙선재가 으뜸으로 알려져 있다.

창덕궁 낙선재② 조선의 조형미가 응축된 장소 - 4

사실 낙선재 뒤뜰을 거닐면 다소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 청나라의 영향을 받은 화려한 창살 문양과 신선사상을 내포하고 있는 괴석 탓이다.

괴석은 인간이 다듬지 않은 자연석으로 생김새가 무척 기묘하다. 괴석을 받치고 있는 기단에는 임금에 비유되는 봉황이 새겨져 있다.

괴석 옆에는 '금사연지'(琴史硯池)라는 글자가 음각된 정사각형의 커다란 돌이 놓여 있다. 원래 연지는 벼루 앞쪽에 팬 곳을 뜻하는데, 이 돌은 화재를 대비해 물을 담아 두던 작은 연못이었다.

뒤뜰의 또 다른 볼거리는 굴뚝으로, 공예품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정교하게 제작됐다. 굴뚝을 받치고 있는 구조물에는 장수를 뜻하는 '수'(壽) 자가 있다.

낙선재 뒤뜰에서는 상량정 외에도 한정당(閒靜堂)이 보인다. 당호는 '한가롭고 조용하게 지내는 집'을 의미하며, 일제강점기에 세워졌다. 문은 유리로 마감됐고, 바닥에는 타일이 깔려 현대적인 면모를 띤다.

또 한정당 옆에는 취운정(翠雲亭)이란 정자가 있다. 하지만 상량정, 한정당, 취운정은 개방돼 있지 않아서 멀리서 올려다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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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복헌과 수강재, 봄볕을 쬐며 감상에 젖다

낙선재에 딸린 석복헌과 수강재는 왕실의 여성이 거주하던 집이었다. 규모는 낙선재와 비슷하지만, 앞마당이 좁아서인지 훨씬 조촐하게 느껴진다.

낙선재와 뒤뜰을 공유하는 석복헌은 'ㅁ'자 형태로 행각이 에워싸고 있다. 낙선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문살이 볼만하다.

마루 난간에는 경빈 김씨의 다산을 염원하는 자그마한 호리병 장식이 있다. 또 부엌이 없어서 음식을 데우고 상을 물리는 퇴선간(退膳間)이 설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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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재는 역사가 긴 건물이다. 태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뒤 머물기 위해 지었고, 폐위된 단종이 잠시 생활하기도 했다. 헌종은 할머니를 위해 수강재를 중수했다.

순원왕후는 아들과 손자를 일찍 잃었고, 두 번이나 수렴청정을 했던 인물이다.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 국모의 거소치고는 상당히 간소하다. 아쉽게도 수강재의 뒤뜰은 들어가 볼 수 없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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