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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이토록 공허한 화려함…뮤지컬 '태양왕'

송고시간2014-04-13 07:29

드라마의 실종, 화려한 볼거리와 아름다운 노래까지 가려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지난 10일 개막한 프랑스 뮤지컬 '태양왕'은 "짐은 곧 국가다"라는 말로 유명한 프랑스 절대군주 루이 14세의 삶과 사랑을 무대에 옮긴 흥행 대작이라고 홍보됐다. 이 뮤지컬의 한국어 버전 제작을 맡은 EMK뮤지컬컴퍼니와 마스트엔터테인먼트는 음악과 대본만을 사와 드라마를 중시하는 국내 정서에 맞게 작품을 새롭게 다듬었다고도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 무대에 오른 이 작품에서는 사랑 이야기의 감동, 절대왕정을 구축해 나가는 정치 드라마, 권력자의 고뇌하는 감정선, 혼란스러운 프랑스 정세를 향한 민중의 분노 중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다.

<공연리뷰> 이토록 공허한 화려함…뮤지컬 '태양왕' - 2

작품의 줄거리라고 요약할만한 것도 없다. 루이 14세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세 명의 여인과의 사랑 이야기가 차례로 그려지는데, 갑작스럽게 사랑이 시작되고 정리된다.

첫사랑의 여인 마리 만치니와는 무도회에서 첫눈에 사랑에 빠져 절절한 사랑 노래를 부른다. 신분 격차와 정치적인 이유로 그를 잃고 힘들어하는 것 같던 왕은 두 번째 여인 몽테스팡 부인의 유혹적인 노래 한 방에 금세 다시 사랑을 느낀다. 자신을 조용히 걱정해주는 세 번째 여인 프랑소와즈를 발견하고서 '또' 금방 사랑에 빠지는 장면에 이르면 객석 여기저기에서는 실소가 터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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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흐름이 생기지 않고, 캐릭터가 살아나지 않으니 이 뮤지컬의 가장 큰 매력인 아름다운 노래와 화려한 쇼도 공허하게 느껴진다. 무용수들은 끊임없이 무대 위를 날아다니고, 서커스에 가까운 애크러배틱을 선보이며 투명한 공 안에서 춤을 춘다. 볼거리란 볼거리는 거의 다 들어 있다. 금빛을 기본으로 한 번쩍번쩍한 무대의상도 360여 벌에 달한다. 그런데 작품의 기본 뼈대가 부실하니 이 볼거리들이 제대로 작품에 달라붙지 못한다. 게다가 화려함을 강조하면서도 영상으로 조악하게 처리된 베르사유궁 모습 등은 너무도 초라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아름다운 노래들도 마찬가지. 2막에 등장하는 보포르 공작과 이자벨이 부르는 '하늘과 땅 사이'란 곡은 최근 뮤지컬 무대에서 만난 곡 중 손에 꼽을 만큼 감성적이고 세련됐다. 그러나 노래를 부르는 캐릭터들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쏟아진 아름다운 곡은 '낭비'됐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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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툭하고 성긴 이야기를 배우들의 역량으로 메우기도 어려워 보인다. 주인공 루이 14세를 맡은 안재욱은 안정적인 연기를 펼쳤으나 보는 사람을 긴장시킬 정도로 음정이 부정확했고, 신성록은 곡 소화 능력은 무난했던 반면 특유의 딱딱한 연기로 극 몰입을 방해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프랑소와즈 역의 윤공주·김소현, 보포르 공작 역의 김성민·조휘가 안정적으로 극을 받쳤고, '깨방정'을 떠는 필립 역의 김승대와 정원영이 썰렁한 객석에 가끔 웃음을 안겼다는 것 정도다.

프랑스 뮤지컬이 원래 드라마가 약한 것도, 원작 자체가 쇼적인 측면이 강조된 작품인 것도 맞다. 하지만 이 때문에 EMK뮤지컬컴퍼니는 개막 전 드라마를 중시하는 한국 관객 정서를 고려해 재창작 수준에 가깝게 작품을 매만졌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던 것이 아닌가. '루이 14세 기념사업회'의 작품이 아닌 이상 17세기 프랑스 왕과 2014년 한국 관객이 맞닿을 수 있는 부분을 더 치열하게 고민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드라마를 애초에 포기했다 치더라도 프랑스 뮤지컬 특유의 시적이고 철학적인 대사,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무대 미학만은 살렸어야 했다.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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