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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선 60년> ④ 통일이 오기 전에…풀어야 과제들

송고시간2014-03-09 14:00

남한지역만 매설 지뢰 100만 발…위치 거의 몰라토지 소유권 분쟁…'보존', '개발' 조화로운 해결도

<민통선 60년> 냉전의 유산 '지뢰 지대'
<민통선 60년> 냉전의 유산 '지뢰 지대'

(연천=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경기도 연천군의 민통선 인근에서 지뢰지역 경고 푯말이 길가에 놓여 있다. 국방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DMZ와 민통선 일대 지뢰매설 수는 무려 100만발이다. 미확인지뢰를 안전하게 제거하는 데 약 489년 걸린다는 게 통설이다. 2014.3.9
andphotodo@yna.co.kr

(의정부=연합뉴스) 임병식 권숙희 기자 = 민통선지역은 태생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통일 준비의 1번지'라고 할 수 있다.

통일시대에 대비해 이곳에 걸려 있는 그 기대를 충족하려면 풀어야 난제들이 적지 않다.

6·25 전쟁과 냉전시대에 매설된 지뢰, 분단과 황무지 개척 과정에서 잉태된 토지 분쟁 전망이 바로 그것이다.

'보존'이냐 '개발'이냐를 놓고 벌어질 논의를 어떻게 조화롭게 해나가느냐도 숙제다.

◇ 전쟁·냉전의 깊은 그늘 '미확인 지뢰'

'이 지역은 군사 통제보호구역 내 지뢰매설 지역으로 출입을 금지함-육군 제○○○○부대'

지뢰라고 적힌 붉은색 역삼각형의 철판부터 지뢰가 폭발하는 그림으로 경각심을 일깨우는 푯말까지 각양각색의 지뢰 경고 안내문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이질적이고 낯설지만, 민통선지역에서는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민통선지역에서는 마을 주민이라도 아무 곳이나 마음대로 다닐 수 없다. 군인도 마찬가지다.

미확인 지뢰 지대가 많아 안전이 확인된 곳으로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통선에서는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귀에 익은 경구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국방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DMZ와 민통선 일대 지뢰매설 수는 무려 100만 발이다.

미확인 지뢰 지대만도 97㎢다. 여의도 면적의 33배에 달한다.

이마저도 북측 DMZ 일대에 북한이 매설한 지뢰를 제외한 추정치다.

일반적으로 6·25 전쟁 때 많은 지뢰가 매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상은 조금 다르다.

유엔군이 6·25전쟁 당시 한반도에 들여온 지뢰는 10만여 발이다.

그러나 휴전협정 이후 남북 대치 상황이 지속되며 지뢰 수는 점차 늘어 10배로 급증했다.

냉전 시대 북한지역은 북한지역대로, 남한지역은 남한지역대로 군사 목적의 필요에 따라 지뢰가 지속적으로 설치됐기 때문이다.

<민통선 60년> 냉전의 유산 '지뢰 지대'
<민통선 60년> 냉전의 유산 '지뢰 지대'

(철원=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강원도 철원군의 민통선 인근에서 지뢰지역 경고 푯말이 길가에 놓여 있다. 국방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DMZ와 민통선 일대 지뢰매설 수는 무려 100만발이다. 미확인지뢰를 안전하게 제거하는 데 약 489년 걸린다는 게 통설이다. 2014.3.9
andphotodo@yna.co.kr

북한지역은 얼마에서 얼마로 늘었는지 추정조차 불가능하다.

지뢰 피해자 지원활동을 벌이는 사단법인 평화나눔회에 따르면 1960년대 쿠바 미사일 위기와 북한군이 청와대 근처까지 침투한 1·21 사태 때 DMZ와 민통선 일원에 지뢰가 매설됐다.

정부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 때 서울 우면산을 포함한 전국의 방공포기지 주변에도 지뢰를 심었다. 이곳은 1998년부터 집중적으로 제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양도 양이지만 더 큰 문제는 매설 위치를 대부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특히 전방지역에 묻힌 지뢰는 매설지도 유무와 별개로 수차례 장마와 수해로 쓸려 내려가 정확한 위치를 더욱 알 수 없게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매설 지뢰 가운데 '발목지뢰' 또는 '폭풍지뢰'로 불리는 M14 대인지뢰가 가장 위험하다.

플라스틱 재질로 무게 95g에 불과해 물길을 따라 이곳저곳으로 쉽게 옮겨질 수 있다.

남한지역의 지뢰뿐만 아니라 북한지역의 지뢰 역시 장마철이 되면 임진강으로 흘러들고 있다.

실제로 2010년 8월 유실된 북한 못함지뢰가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과 인천 강화도 섬 지역까지 흘러 내려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미확인지뢰를 안전하게 제거하는 데 남한지역만 약 489년 걸린다는 게 통설이다.

군은 지뢰 유실 예상지역과 과거 지뢰지대에 위험 표지판을 설치해 지뢰사고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는 1998년부터 '유실 지역'과 '민통선에서 해제된 지역'을 중심으로 최우선 지뢰제거작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까지 총 6만8천여 발을 없앴다.

또 집중호우 때 유실 우려가 있는 임진강과 한탄강 등에서 지뢰 탐색 작전도 수시로 실시하고 있다.

합참은 2014년에도 후방 방공기지와 민통선 이남 미확인 지뢰 제거 작전을 적극 펼치고 있다.

군의 한 관계자는 "철조망과 경고 간판을 설치, 미확인지뢰 지대 출입을 통제하고 있으나 산나물 채취나 영농활동을 이유로 무단출입해 사고가 나는 경우가 있다"며 "과거보다 많이 줄기는 했지만 유실 지뢰나 폭발물은 약한 충격으로도 터질 수 있으니 발견 즉시 군부내나 경찰서로 신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지뢰 피해 많이 줄었지만 '현재 진행형'

"농사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워 고철을 줍다가 지뢰를 밟는 사람들이 많았지…"

정부가 부족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방한계선 인근 황무지를 개척한 1960년대부터 민통선마을에는 지뢰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평화나눔회는 2011년 강원도 지역에서 6·25전쟁 이후 첫 지뢰피해 실태 조사를 벌였다.

휴전협정 이후 강원지역 민간인 228명이 지뢰를 밟았다. 116명은 현장에서 사망했고 76명은 손·다리가 잘렸다.

<민통선 60년> 냉전의 유산 '지뢰 지대'
<민통선 60년> 냉전의 유산 '지뢰 지대'

(철원=연합뉴스) 이해용 기자 = 강원도 철원군의 민통선 인근에서 지뢰지역 경고 푯말이 길가에 놓여 있다. 국방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DMZ와 민통선 일대 지뢰매설 수는 무려 100만발이다. 미확인지뢰를 안전하게 제거하는 데 약 489년 걸린다는 게 통설이다. 2014.3.9
dmz@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dmzlife

M14 대인지뢰 피해자가 137명으로 가장 많았다. M16 대인지뢰, 대전차지뢰, 목함지뢰 등이 뒤를 이었다.

M16 대인지뢰는 밟는 순간 지뢰가 3m가량 튀어 오르며 폭발, 반경 38m 이내를 살상하는 무기다.

장소는 야산이 121명(55%)으로 가장 많았다. 약초, 나물, 고철, 땔감 등을 구하다가 사고가 난 것이다.

특히 피해자 가운데 128명은 사고 이후 배상신청이나 소송 절차를 몰랐던 것으로 나타났다.

평화나눔회는 '지뢰피해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별법은 국회에서 수년째 논의가 불발하거나 계류된 상태다.

지난해 1월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은 '지뢰 피해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6·25전쟁 이후 이 법의 공포일 3년 전까지 지뢰사고로 다치거나 숨진 사람을 지뢰피해자로 규정하고 피해자 또는 유족에게 위로금 및 의료지원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국방부 장관 소속 '피해자 지원 심의위원회'를 설립해 사고를 조사하고 지원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것을 명시했다.

◇ '지뢰 문제' 대만·통일 독일은 어떻게?

대만은 1997년 중국 본토에 인접한 진먼다오(金門島)와 마쭈다오(馬祖島)의 지뢰 제거에 나섰다.

이 두 곳은 1949∼1978년 중국과 대만이 치열한 군사 공격을 주고받던 섬이다. 대만은 당시 중국군 상륙을 막기 위해 지뢰를 매설했다.

그러나 중국과의 양안 교류가 진전되며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교류가 활발해지며 대만은 중국의 항구도시 샤먼(廈門)과 직교역이 필요해졌다.

두 곳의 지뢰제거는 화해의 제스처로 받아들여졌다.

대만은 2013년까지 17년 간 지뢰 12만6천여 개를 제거했다.

지금 진먼다오는 반공기지에서 평화의 섬으로 탈바꿈, 중국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지가 됐다.

독일은 1990년 통일 당시 지뢰매설지도가 잘 보관돼 있어 비교적 제거가 수월했다. 개활지의 경우 굴착기나 지뢰제거전차를 이용했다.

이후 일부 미확인 지뢰 지대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자 독일은 퇴역장병 가운데 지뢰 설치자를 일일이 수소문, 지도에 없는 지뢰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인간 지도'를 만들어 해결했다.

물론 한반도 사정은 대만, 독일과 다르다.

<민통선 60년> '냉전의 유산을 제거하라'
<민통선 60년> '냉전의 유산을 제거하라'

(연천=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국방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DMZ와 민통선 일대 지뢰매설 수는 무려 100만발이다. 플라스틱 재질로 무게가 95g에 불과한 M14대인지뢰(발목지뢰)는 폭우나 수해 때 유실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는 1998년부터 민통선에서해제된 지역과 유실지역을 중심으로 지뢰제거작전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에서 육군 공병들이 지뢰제거작전을 벌이는 모습. 20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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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육지에서 대치하고 있는 남북한에 걸쳐 훨씬 넓은 지역에 훨씬 많은 양이 매설돼 있기 때문이다. 한쪽의 의지만으로는 어려울 수 있다.

지뢰금지협약 특사자격으로 2011년 방한한 미레드 알 후세인 요르단 왕자는 "요르단은 1993년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기 전에 요르단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지뢰를 제거했다"며 "지뢰제거는 분명히 남북한이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거 방법 또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DMZ와 민통선 일원은 지뢰의 밀도와 파괴력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는 2000년 경의선 철도 연결에 앞서 지뢰 제거를 위해 독일제 첨단 지뢰제거 장비인 마인 브레이커를 도입했다.

마인 브레이커는 작업 도중 대전차 지뢰를 밟아 핵심 부품이 망가졌다.

한반도에 매설된 대전차 지뢰의 장약은 10㎏으로 유럽 대전차 지뢰의 장약(7㎏)에 맞춰 설계된 독일 장비가 버티질 못한 것이다.

군은 지뢰제거 때 방탄장비가 갖춰진 굴착기를 이용하는 등 장병 안전에 애를 쓰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현행 제거 방식에 '지나치게 환경을 파괴한다'며 문제를 제기한다.

녹색연합은 유엔대인지뢰대책기구에서 공인한 '수목을 보호하면서 지뢰를 제거하는 환경 친화적인 지뢰제거 기법'을 바탕으로 작업, 지나친 환경 파괴를 막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녹색연합 정규석 활동가는 "완벽히 친환경적인 지뢰 제거는 어렵지만 환경 파괴를 최소한으로 줄여보자는 사회적 합의와 노력이 중요하다"며 "전 사회가 지뢰문제에 관심을 갖고 예산을 책정하면 제거 기간도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만은 많은 전문가들이 지뢰를 제거하는 데 200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지만 막상 시작하니 17년 만에 끝낼 수 있었다.

◇ '소유권 vs 경작권' 토지분쟁…통일 과정 '봇물' 이룰듯

인터넷에서 민통선을 검색하면 '민통선 땅', '민통선 땅찾기' 등의 검색 결과물을 쉽게 볼 수 있다.

토지분쟁이 일어난 곳은 1945년 해방과 함께 38선이 그어지며 북한 정권에 놓인 강원도와 경기북부 일부 지역이다.

북한은 1946년 농지개혁법을 공포해 산림, 임야, 농지를 막론하고 모든 토지를 국유화해 무상분배했다.

정전협정 이후 남한의 영토가 됐지만 유엔군사령부는 군사작전상의 이유로 민간인 출입을 통제했다.

격변하는 현대사 속에서 이 지역의 소유권은 물론이고 재산권 행사마저도 어려웠다.

이 와중에 정부가 식량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60년대부터 민통선에 주민을 이주시키는 사민정책을 실시하며 불가피하게 토지 분쟁의 싹이 텄다.

정부는 20년 뒤 수복지구(38선 이북으로 6·25전쟁 후 대한민국 영토로 편입된 지역) 땅의 등기를 복구하기 시작했다.

<민통선 60년> 냉전의 유산 '지뢰'
<민통선 60년> 냉전의 유산 '지뢰'

(파주=연합뉴스) DMZ와 민통선 일원은 지뢰의 밀도와 파괴력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정부가 2000년 경의선 철도 연결을 위해 도입했던 독일제 첨단 지뢰제거 장비 '마인 브레이커(MINE BREAKER)'마저도 대전차 지뢰를 밟아 파손됐다. 사진은 2000년 10월 마인브레이커가 통일대교-장단역 구간에서 지뢰 제거 작업을 벌이는 모습. 2014.3.9 <<연합뉴스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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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선 이주민들은 정부를 믿고 전후 황무지를 비옥한 농토로 개간했지만 땅주인들은 민통선 주민을 상대로 토지를 내놓으라는 소송을 벌였다.

가장 오래된 민통선마을인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마현리 주민들 역시 토지 분쟁에 휘말렸다.

주민들은 "정부가 우리를 이주시킬 때 향후 발생할 토지문제에 명확히 정리하지 않았다"며 "땅주인들도 그동안 사용하지 못하면서 세금만 냈으니 우리 만큼 억울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당시만 해도 정부는 "국가 정책으로 만든 민통선마을이지만 소유자와 경작자 간의 분쟁은 당사자들끼리 합의할 문제"라며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결국 소유자와 경작자가 개별적으로 매매하거나 임대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마현리 주민 진남수(68)씨는 "황무지를 개간해 간신히 자리 잡았는데 토지 분쟁에 휘말리며 다시 빚더미에 오르는 주민들도 많았다"고 기억했다.

이주민들과 정부 사이에서도 일어났다.

정부는 1996년 3월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8.42㎢를 토지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유화했다.

졸지에 '소작농'이 된 이주민들은 정부에 개간비를 보상하고 국유농지를 불하할 것을 요구하며 맞섰다.

그렇다고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82년 말 '수복지역 소유자 미복구 토지의 복구 등록과 보존등기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일정 조건을 갖춘 보증인 3명 이상이면 소유권 보존 등기를 해줬다.

1983∼1991년 14만6천 필지가 주인을 찾았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민통선지역 개발 기대감이 커지며 강원도 철원군 대마리에서는 땅주인들이 토지뿐만 아니라 주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정부는 민통선 토지 분쟁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닫고 2011년 국무총리실이 직접 나서 '철원군 대마리 주택부지 토지분쟁 해결을 위한 지원 조례안'을 마련했다.

조례안은 사유지가 마을 길 등 공공용지로 사용된 경우 정부가 매입하고 땅주인과 건물주가 다를 경우 부지 매입 융자금 이자를 정부가 일부 보전해 주는 내용을 담았다.

1982년 특별법은 허점이 많았다. 전쟁 등으로 지적 공부가 사라진 탓에 기억과 증언을 토대로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989년 강원도 고성에서는 주민 3명이 허위로 보증해줬다가 들통나 구속되는 등 이를 이용한 유사 범죄가 잇따랐다.

전문 사기범도 심심찮게 등장했다.

1988년 판결문에 가짜 법원장 직인을 찍어 위조해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 산 297만5천㎡를 가로채려던 사기범이 경찰에 붙잡혔고 2011년에도 민통선지역 허위 개발 정보를 이용해 수십억대를 가로챈 사기꾼이 징역 5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대부분 소유권이 불분명하거나 소유권 분쟁이 예상되는 민통선지역 특성을 악용했다.

경기북부 지자체의 한 지적담당자는 "특별조치법이 당시로선 최선이었지만 불완전해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이 잇따랐다"며 "그러나 행정절차상 문제가 없어 땅주인이 승소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민통선지역이 개방되거나 통일이 되면 토지 소유권 분쟁이 봇물을 이룰 것"이라고 예상하고 "물론 분쟁이 발생하면 건건이 대응할 수밖에 없지만 지적 조사 등 가능한 것들을 미리 준비해야 대혼란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김진환 교수는 자신의 논문 'DMZ의 미래와 인문학'에서 "남북관계 발전에 따라 민통선지역에 '개발 바람'이 불어 닥칠 것"이라며 "원소유자와 개척민의 토지 분쟁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andphotodo@yna.co.kr, suk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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