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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선 60년> ③ 그 안에 마을, 사람, 문화가 있다

송고시간2014-03-09 14:00

실향민·제대군인·이재민·원주민 각양의 4색 공간 '육지 섬' 독특한 문화…'설움'은 '부농자부심'으로

<그래픽> 민통선마을 현황
<그래픽> 민통선마을 현황


(서울=연합뉴스) 장예진 기자 = 민간인통제선(민통선) 안으로 들어가려면 누구나 초소를 지키는 군인의 검문과 통제를 받는다. 관할 군부대를 통해 사전에 출입허가를 받기부터 까다롭다. 민통선 마을 현황.
jin34@yna.co.kr
@yonhap_graphics(트위터)

(연천·철원=연합뉴스) 임병식 권숙희 기자 = "신분증 맡기고 출입 신청서 작성하십시오."

민통선지역으로 들어가려면 누구나 초소를 지키는 군인의 검문과 통제를 받는다.

관할 군부대를 통해 사전에 출입허가를 받기부터 까다롭다. 기자가 취재할 땐 육군 공보담당자를 대동해야만 가능하다.

초소 앞 게시판에는 파란 바탕에 흰 글씨로 깨알같이 '출입자 준수사항'과 '경고문'이 적혀 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출입 허가자는 일출과 일몰 사이에만 드나들 수 있다. 해가 지면 안으로 들어가기도 나오기도 어렵다는 뜻이다. 물론 응급 환자가 발생하는 등 긴급 상황은 예외다.

민간인은 군복을 입고 돌아다닐 수 없다. 허가받지 않은 개간·영농·어로·수렵·약초 채취도 모두 금지된다.

그러나 이 안에도 사람 사는 마을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 저마다 '이유 있는' 탄생

<민통선 60년> '이젠 최전방이 청정지역'
<민통선 60년> '이젠 최전방이 청정지역'

(철원=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강원도 철원군 민통선 지역 상공으로 큰기러기 떼가 날고 있다. 북쪽에 보이는 임야가 비무장지대(DMZ)다. 군이 민간인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기에 민통선 지역은 산불이 많은 DMZ보다 더 환경보전이 잘 되어 있다. 2014.3.9
andphotodo@yna.co.kr

2월 말 연합뉴스 취재진이 찾은 경기도 연천군의 유일한 민통선마을인 횡산리가 외따로 보였다. 군 초소를 지나 적막강산을 차로 10여분 간 달렸다.

마을 입구에서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자 이 마을의 권영우(79) 할아버지가 반겼다.

권씨 집은 담 없이 문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다. 드나듦이 엄격해 마을 보안은 걱정 없는 듯 했다.

권씨는 일제강점기인 1935년 이곳 횡산리에서 태어났다. 해방 후에는 이북 치하였던 마을에 살다가 1·4 후퇴 때 피난했다고 한다.

그는 민통선마을이 조성된 지 한참이 지난 1994년 고향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권씨는 "휴전되고 나서는 민통선 때문에 고향에 들어오는 것은 명절 때 성묘하러만 가능했다"며 "세월이 바뀌어 다시 마을이 생겨 귀향했다"고 말했다.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마을이 자리 잡게 된 것은 '분단'이라는 시대상황과 그 궤를 같이한다.

경기개발연구원 박은진 연구원은 "민통선마을은 북한의 선전촌에 대응하고자 정책적으로 정부에서 만들었다"며 "황폐화된 논과 밭을 개간할 필요성도 마을 조성에 한몫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6·25전쟁을 치른 지 얼마 안 된 땅에, 특히 남북한 경계를 바라보는 지역에 아무나 들어와 살도록 할 수는 없었다.

<민통선 60년> 담장 없는 민통선 마을
<민통선 60년> 담장 없는 민통선 마을

(연천=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민통선 마을인 경기도 연천군 횡산리에 거주하는 권영우(79) 씨의 집. 대문은 있어도 담장은 없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민통선 마을은 군이 민간인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기에 구제역과 같은 전염병이나 범죄가 거의 없다. 2014.3.9
andphotodo@yna.co.kr

민통선마을로 들어온 사람들이 이색 이력을 가진 것도 이 때문이다.

1972년과 1973년 각각 탄생한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와 강원도 철원군 근북면 유곡리의 통일촌은 실향민과 제대군인들이 들어왔다.

투철한 반공의식 아래 마을이 조성됐다. 원래 이곳이 고향인 원주민은 거의 없었다.

철원군의 또 다른 민통선마을인 김화읍 생창리는 1970년 원주민 3가구를 제외하고 100가구 모두 제대군인이 자리를 잡은 마을이다. '예비군 마을'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다.

태풍 피해를 입은 이재민이 집단으로 이주한 마을도 있다.

철원군 근남면 마현1리(1960년 조성)는 '북한의 선전마을에 대응한다'는 정부 정책과 '이재민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한다'라는 명분이 맞아떨어진 경우다.

주민들은 1959년 당시 태풍 사라호가 강타해 사망 또는 실종자가 800여 명이나 발생한 경상북도 울진에서 올라왔다.

마현1리에서 만난 오성환(74)씨는 "(사라호 태풍때) 집과 논이 다 쓸려 내려가 선택의 여지 없이 이곳에 오니 북쪽 산 정상 인근에 남방한계선 목책이 보였고 논밭은 흔적만 남아 있었다"고 스무살이던 당시를 떠올렸다.

초기에는 잘 곳이 없어 군용텐트에서 눈을 붙였다. 농사 수확이 나지 않은 첫해에는 육군에서 배급하는 잡곡으로 밥을 지었다고 한다.

<민통선 60년> '민통선 입주증'
<민통선 60년> '민통선 입주증'

(연천=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민통선 마을인 경기도 연천군 횡산리에 거주하는 권영우(79) 씨가 '민통선 입주증'을 들어 보이고 있다. 군이 민간인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기에 주민들은 입주증을 휴대하고 있다. 2014.3.9
andphotodo@yna.co.kr

또 다른 마현리 주민 진남수(68)씨는 "벼와 콩을 주로 재배했지만 다들 배가 너무 고파 돼지감자를 캐거나 탄피를 수집해야만 했다"고 기억했다.

6·15 공동선언 이후에는 반공의식이 아닌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상징적인 마을도 탄생했다.

바로 2001년 조성된 파주시 진동면 동파리 해마루촌이다.

6·25전쟁 때 고향을 떠나야 했던 실향민들의 건의에 따라 만들어진 정착촌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을 전체가 높은음자리표 모양으로 설계돼 고향과 통일을 그리는 이들의 애절함이 묻어난다.

◇ 최전방 '설움'→청정지역 '부농 자부심'

일종의 '사민 정책'에 따라 마을에 자리를 잡게 된 초기 민통선마을 주민들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고향을 떠나온 데다 전쟁으로 황폐한 땅을 개간해서 먹고 살아야 했다.

냉전 시기 북한을 가장 가까이서 마주하며 안보 불안도 컸다.

<민통선 60년> 마현리 마을의 입주기념비
<민통선 60년> 마현리 마을의 입주기념비

(철원=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마현리는 가장 오래된 민통선 마을이다. 마현 1리는 1960년 정부가 사라호 태풍 수재민 66세대를 이주시키면서 탄생했다. 이주민들은 전쟁으로 황폐화된 땅을 일궈 현재는 철원을 대표하는 시설하우스 부농을 이뤘다. 사진은 마현1리 입구에 있는 입주기념비 모습. 2014.3.9
andphotodo@yna.co.kr

육군본부에 따르면 베트남 전쟁으로 냉전 대치가 극에 달한 1960년대 DMZ 인근에서 자행된 북한 침투는 무려 472회에 이른다.

남북한은 10년 간 한 달에 3.9회꼴로 DMZ와 민통선 일원에서 교전했다.

이에 따른 출입 통제, 곳곳에 묻힌 대인지뢰는 민통선 주민들을 실질적 위험에 떨게 했다.

마현리 주민 오성환씨는 "제대 후 예비군 훈련장에 따로 갈 것도 없었다"며 "당시에는 군인들과 함께 경계 근무를 하며 마을을 지켰다"고 말했다.

1980년대 정부가 민통선지역 토지 등기를 정리하면서 원소유자들이 나타나 토지 분쟁도 겪었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점차 평화를 지향하고 생업도 번성하면서 주민들은 이전의 설움보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됐다.

특히 DMZ와 민통선 일대가 청정지역으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영농활동이 탄력을 받았다.

'청정 명품 농산물'이 속속 등장했다.

1982년부터 철원군이 생산한 오대쌀은 'DMZ 청정지역 재배'라는 강점으로 현재 20㎏당 6만원이 넘는 값에 팔려나가고 있다. 일반 쌀 평균 가격이 4만원대를 조금 웃도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고가다.

<민통선 60년> 마현리 마을의 입주기념비
<민통선 60년> 마현리 마을의 입주기념비

(철원=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마현리는 가장 오래된 민통선 마을이다. 마현 1리는 1960년 정부가 사라호 태풍 수재민 66세대를 이주시키면서 탄생했다. 이주민들은 전쟁으로 황폐화된 땅을 일궈 현재는 철원을 대표하는 시설하우스 부농을 이뤘다. 사진은 마현1리 입구에 있는 입주기념비 문구. '전쟁 이후 버려진 황무지를 옥토로 가꾼 빛나는 업적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2014.3.9
andphotodo@yna.co.kr

임진강 최북단에 자리한 횡산리는 우리나라 율무의 70% 이상이 재배된다.

횡산리 주민 권씨는 "1990년대 마을에 입주해 줄곧 율무와 콩 농사를 짓고 있다"며 "청정 먹을거리를 연천농협에 내다 팔아 먹고 사는데 다른 어느 곳보다 공기가 맑고 수입도 좋으니 여생은 이곳에서 지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통선 브랜드'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농산물도 있다.

백연리 통일촌은 1996년부터 콩을 재배하기 시작해 전국에서 유명한 장단콩 축제를 열고 슬로푸드마을에도 지정됐다.

2000년대 들어 기후 온난화로 인삼 재배 한계선이 북상하면서 민통선마을에서도 인삼을 재배했다. 포천 인삼과 함께 지금 '개성인삼'의 명맥을 잇고 있다.

농가 소득은 자연히 늘어났다.

경기도 파주시에 따르면 2011년 말 기준 농가당 평균소득은 통일촌 4천500만원, 해마루촌 4천만원으로 각각 조사됐다. 같은 해 통계청에서 집계한 전국 평균 농가 소득인 3천14만8천원 보다 1천만원 이상 많다.

비닐하우스에서 파프리카 등을 재배하며 연 억대의 소득을 올리는 농가도 늘어났다.

마현리에서 벼농사와 시설하우스 농업을 하는 진남수씨는 "군의 통제로 출입이 까다로운 덕에 청정지역으로 이름값이 높아지고 농산물 절도도 없는 마을이 됐다"며 "이젠 민통선이 오히려 장점"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민통선 60년> '이젠 최전방이 청정지역'
<민통선 60년> '이젠 최전방이 청정지역'

(파주=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민통선 마을인 경기도 파주시 통일촌의 장단콩 마을의 전경. 통일촌은 1996년부터 콩 재배를 시작해 장단콩 축제, 슬로푸드마을 등으로 소득을 늘리고 있다. 군이 민간인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기에 민통선 지역은 산불이 잦은 DMZ보다 더 환경보전이 잘 되어 있다.2014.3.9
andphotodo@yna.co.kr

그는 또 "여기보다 좋은 곳은 없는 것 같다"며 "마을 밖 와수리에 살던 동창들도 민통선 안으로 귀농하고 싶어한다"고 자랑했다.

◇ '육지 위의 섬'…동·식물의 천국, 독특한 문화도

민통선의 땅은 영농으로 활기차고 하늘은 겨울이면 천연기념물 두루미와 독수리의 날갯짓이 아름답다.

사향노루, 산양, 왕은점표범나비 등 다양한 멸종위기 야생동식물들이 민통선 일원에서 관찰된다.

2008년 환경부가 유엔사의 허가를 받아 조사해 보니 DMZ는 산불 때문에 산림이 많이 소실돼 민통선지역이 오히려 환경 보전이 더 잘돼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김진환 교수는 "민통선지역의 보전 상태가 좋아 남북관계가 정상화되고 남북경제협력이 활발해 질수록 민통선 일대 개발-보존 논쟁의 강도는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철저한 출입 통제는 생태를 지키는 한편 고유한 문화 창조에도 한몫했다.

마을이 생기기 전에는 민통선 안에 선산이 있어도 성묘조차 쉽지 않았다.

조상 묘를 찾을 때면 무장한 군인들이 대동했다.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차례나 제사를 지냈다.

권영우씨는 "휴전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군인들이 벌초도 대신해줬다고 들었다"며 "1985년 마을이 생기기 전까지는 명절이면 고향 사람들이 단체로 군인들이랑 함께 성묘하러 왔다"고 옛 풍경을 전했다.

민통선마을에는 원주민보다 외지인이 더 많다. 그런 만큼 지역색이 없고 모두가 타향살이여서 텃세도 없었다.

제대군인도 많고 군부대와의 접촉이 일상적이다 보니 '반찬'을 '부식'으로, '전화로'를 '유선상으로'라고 자연스레 말하는 등 군사용어 사용도 뚜렷했다.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려면 민통선 초소를 지나 밖으로 나가야 하는 불편도 컸다. 지금은 형편이 크게 나아져 여느 농촌 학교와 다를 바 없다.

민통선마을 내 유일한 학교인 파주시 군내초등학교는 오히려 특별한 관심과 지원을 받는 학교가 됐다. 교육 여건이 도시 학교보다 훨씬 좋다.

2012년 유네스코 협동학교로 지정되며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총장이 직접 방문해 "군내초교가 세계의 평화를 다지는 초석이 돼달라"며 격려했다.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4명 미만이다.

<민통선 60년> 민통선의 '높은음자리마을'
<민통선 60년> 민통선의 '높은음자리마을'

(파주=연합뉴스) 경기도 파주시 민통선에 조성된 해마루촌의 전경 모습. 반공의식이 아닌 6·15 공동선언 이후 실향민들의 건의로 만든 정착촌이다. 하늘에서 바라본 모습을 높은음자리표로 설계해 '높은음자리마을'이라는 별칭을 가졌다. 2014.3.9 << 연합뉴스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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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특유의 문화를 형성한 민통선마을은 한때 112 곳에 달했다.

그러나 2014년 현재 DMZ 선전촌인 대성동마을을 제외하고 9곳만이 남아 있다.

실제로 마을이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니고 민통선이 3차례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또는 마을 주민들의 적극적인 요구로 각각 민통선지역에서 해제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민통선 마을이 사라지고 있다'며 연구와 재평가 필요성을 강조한다.

한국 DMZ연구소 함광복 소장은 "민통선마을은 분단이라는 시대적 상황이 만들어낸 독특한 가치가 있다"며 "이 부분이 재평가되고 연구될 기회도 없이 사라진다는 게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통선 마을은 대부분 38선 수복지구로 잠시나마 북한의 체제 아래 있었던 지역"이라며 "쉽게 말해 '통일 예행연습 마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지금까지는 이 점이 너무 간과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현1리 주민들은 스스로 마을 입구에 입주기념비를 세워 사라져 가는 기억을 새겼다.

"전쟁 이후 버려진 황무지를 옥토로 가꾼 빛나는 업적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조상들의 숭고한 뜻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여기에 조그마한 비를 세우노라"

민통선이 지배하는 땅, 그 안에 살았던 혹은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통일 준비의 새로운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andphotodo@yna.co.kr, suk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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