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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선 60년> ② 남북대치 제2완충지대…'통일 꿈꾼다'

송고시간2014-03-09 14:00

휴전협정 이듬해(1954년) 귀농선이 시발점…3차례 북상 조정최근 남북화해 무드 재조성…'통일 준비 1번지' 다시 관심

<그래픽> 민통선 1∼3차 북상 조정 현황
<그래픽> 민통선 1∼3차 북상 조정 현황


(서울=연합뉴스) 장예진 기자 =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은 말 그대로 군(軍)이 고도의 군사활동을 위해 군사분계선 남쪽 일정 구간에 설정한 경계선이다.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남북 2㎞씩 4㎞ 구간에 설정된 비무장지대(DMZ)와는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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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철원=연합뉴스) 이해용 우영식 기자 =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은 군사분계선(MDL·휴전선과 동일) 남쪽으로 일정 거리를 두고 그어진 경계선이다.

민간인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군의 통제 아래 있는 공간이다.

1953년 정전협정으로 한반도 허리에는 이런 경계선이 남과 북에 각각 여러 개 만들어졌다.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남북 2㎞씩 4㎞ 구간에 비무장지대(DMZ)가 조성됐다. 남쪽 경계에 남방한계선(SBL), 북쪽 경계에 북방한계선(NBL)이다.

남방한계선에서 남쪽으로 일정 거리에 또 선이 그어졌다.바로 민통선이다.

민통선지역은 DMZ 남쪽 구간과 남방한계선∼민통선 구간을 모두 합친 개념이다.

두 공간은 성격이 다르다.

DMZ는 남과 북 사이에 무장하지 않은 지대를 둬 남북의 군사적 충돌을 막을 목적으로 정전협정 당시 협정 당사국 3자 합의 하에 탄생했다.

민통선은 정전 이듬해인 1954년 2월 그어졌다.

미군이 독자적으로 군사목적상 민간인의 출입통제가 필요하다며 설정했다.

DMZ가 군사적 완충지대라면 민통선지역은 보다 완화된 개념의 제2의 완충지대라고 할 수 있다.

또 DMZ는 출입만도 원칙적으로 유엔군사령부, 남과 북의 합의가 있어야 하지만 민통선지역은 무엇이든 대한민국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민통선이 올해로 탄생 60년이 됐다.

이번 기획은 DMZ를 제외한 좁은 의미의 민통선지역을 대상으로 했다. 그러나 민통선지역만 따로 떼어 만든 자료가 정확하지 않아 이번 기획에 쓰이는 각종 통계 수치는 DMZ를 포함한 경우도 있다.

<민통선 60년> 민통선 출입 풍경
<민통선 60년> 민통선 출입 풍경

(철원=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민통선은 1954년 주한미군이 군사작전상 민간인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남방한계선 밑으로 선을 그으며 탄생했다. 60년 동안 인구 증가와 개발 압력으로 3차례 북상했다. 왼쪽 사진은 1985년 연합뉴스가 촬영한 철원지역 영농인들이 민통선 초소를 통과하는 모습. 오른쪽 사진은 2014년 현재 연천 지역 민통초소에서 영농인이 통과하는 모습. 2014.3.9
andphotodo@yna.co.kr

민통선지역은 설정 이래 군부대 초소가 설치돼 민간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됐다. 일반 시민은 군부대의 허가를 받아야만 거주하거나 농사를 지을 수 있다.

학술, 연구, 조사, 취재 등 특정 목적 때는 군의 승인 절차를 거쳐 제한적으로 개방됐다.

민통선은 그동안 남북 관계의 부침 속에 3차례 북상 조정되며 그 지역의 통제 수위는 크게 낮아졌다.

민통선지역은 전후 냉전시대가 유지되며 남북 긴장의 완충 역할만을 해왔다.

한때 남북 화해 무드가 조성되며 역할 변화의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다시 긴장 국면으로 돌아서며 변화의 바람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남북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노력이 이어지며 지금 민통선지역은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전초기지', '통일 1번지'로서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 민통선 탄생…정전 이듬해 '귀농선'이 시초

현재 민통선지역은 남방한계선에서 남쪽으로 짧게는 3㎞, 길게는 8㎞ 구간에 설정돼 있다.(넓은 의미의 민통선지역에서 DMZ 남쪽 구간 2㎞ 제외)

인천 강화, 경기 김포·파주·연천, 강원 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 등 3개 시·도, 9개 시·군에 걸쳐 있다.

면적은 올해 기준으로 1천86.6㎢(경기 232.9㎢, 강원 853.7㎢)다. 서울시 전체 면적(605㎢)의 1.8배에 달한다.

민통선이 처음 그어진 것은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6개월 뒤인 1954년 2월이다.

미8군사령부가 군사작전상 민간인 출입 통제가 필요하다고 판단, 남방한계선 아래에 일정한 선을 그었다.

DMZ 아래에 제2의 완충지대를 만든 것이다.

최초 명칭은 '귀농선'(歸農線)이었다. '영농은 할 수 있으나 거주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후 1959년 6월 한국군이 DMZ 방어임무를 담당하며 '민통선'으로 바뀌었다.

<민통선 60년> 민통선의 북상
<민통선 60년> 민통선의 북상

(철원=연합뉴스) 이해용 기자 = 민통선은 1954년 주한미군이 군사작전상 민간인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남방한계선 밑으로 선을 그으며 탄생했다. 60년 동안 인구 증가와 개발 압력으로 3차례 북상했다. 철원 노동당사 역시 과거에 민통선에 포함됐다가 해제됐다. 위 사진은 1985년 연합뉴스가 촬영한 철원 노동당사의 모습이며 아래 사진은 지난해 정전 60주년을 맞아 노동당사에서 열린 평화음악회의 모습이다. 2014.3.9
dmz@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dmzlife

한동안 민통선은 명확한 개념 없이 군부대의 판단에 따라 초소를 둬 출입과 주민 생활을 제한했다.

그러다가 1972년 군사시설보호법(현 군사기지 및 시설보호법)이 제정돼 군사적 개념이 처음 규정됐다.

그럼에도 1983년까지는 설정 범위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 없이 군부대마다 필요한 곳에 초소를 설치, 운영했다.

◇ 남북 화해 무드·인구 증가·개발 압력 '3重 변화'…3차례 북상 조정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군이 처음 구체적인 민통선 범위를 정한 것은 1983년 1월 15일 군사시설보호법을 1차 개정하면서다.

당시 군은 민통선을 '군사분계선 이남 20∼40㎞ 지역'(DMZ 포함)으로 설정했다.

이때 민통선지역의 범위가 가장 넓었다. 군조차 관련 통계가 없어 당시 민통선지역의 면적이 정확히 얼마였는지 확인할 수는 없으나 현재의 3∼4배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천 도서지역과 강화, 경기 김포, 파주 통일동산, 연천 백학·미산·왕징면, 고양 한강변 일대, 포천 일부 지역, 강원 철원과 고성 대부분 지역이 포함됐다.

민통선의 북상 조정은 민통선지역에 인구가 늘어나며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민통선마을은 1983년 민통선 범위를 처음 설정할 때 81곳에 달했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8천799가구, 3만9천725명이 거주했다.

민통선마을은 1985년까지 계속 늘어 강원 5개 시·군 31곳, 경기 4개 시·군 81곳 등 모두 112곳(DMZ 대성동마을 제외)이 조성됐다.

군의 통제 아래 묵묵히 농토를 일구며 살아온 주민들은 인구가 급증하면서 재산권 행사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990년대 들어 요구가 거세지며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군은 민통선 조정을 검토한다.

민통선 조정은 군사정권이 물러나고 문민정부 출범 첫해인 1993년부터 본격화됐다.

1차 북상 조정은 1993년 12월에 이뤄졌다.

<민통선 60년> 민통선의 북상
<민통선 60년> 민통선의 북상

(철원=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민통선은 1954년 주한미군이 군사작전상 민간인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남방한계선 밑으로 선을 그으며 탄생했다. 60년 동안 인구 증가와 개발 압력으로 3차례 북상했다. 왼쪽 사진은 1981년 연합뉴스가 촬영한 철원 노동당사의 모습이며 오른쪽 사진은 2014년 현재 민통선에서 풀린 노동당사의 모습이다. 과거 민통선 마을 주민이 농사짓던 밭은 현재 관광객들이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공터가 됐다. 또 '이 건물은 6·25 전 북괴노동당 철원군당으로 국민을 착취하던 곳이었음'이라는 과거 푯말이 눈길을 끈다. 20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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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은 군사시설보호법을 개정, 민통선지역 범위를 '10∼20㎞'로 축소했다.

이때 면적이 1천528㎢(경기 480㎢, 강원 1천48㎢)로 줄었다.

1997년 2차 조정이 이뤄진다. 군사분계선 이남 5∼15㎞(DMZ 포함)로, 민통선을 북쪽으로 올렸다.

철저했던 민통선 통제도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며 자연스레 완화됐다.

군은 1999년 합동참모본부 훈령을 개정, 민통선지역 영농 승인과 대리경작금지제도를 폐지하고 행정관서와 토지주의 허락만 있으면 누구나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했다.

이전까지는 민통선 마을에 거주해야 하고 군부대의 승인을 얻어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또 강원 철원 대마리·생창리·마현리 마을 입구에 설치한 초소를 북쪽으로 올려 출입통제를 해제했다.

이 곳은 이때부터 외지인들이 군부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됐다.

민통선 도서지역을 정기운항하는 선박에 대한 검열제도도 폐지했다.

2002년에는 서해 도서지역과 교동도, 강화도, 김포 등 한강 이남 대부분 지역이 민통선지역에서 벗어났다.

3차 조정은 2008년이다.

군사시설보호법 등 각종 군사 관련 법이 폐지되고 군사기지 및 시설보호법으로 통합 제정되면서 민통선을 '군사분계선 10㎞ 이내(DMZ 포함)'로 축소했다. 이때 조정된 경계선이 현재의 민통선이다.

◇ 민통선마을 112곳→9곳 크게 줄어.

3차례 민통선 북상으로 민통선지역 안에 있는 마을은 급격히 줄었다.

최대 112곳에 달했던 민통선마을은 현재 9곳만 남아 있다.(최북단마을 DMZ 대성동마을 제외)

민통선이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104곳 마을이 당연히 군의 통제에서 벗어났다.

2001년 파주에 통일 염원을 담아 희망하는 실향민들이 입주한 해마루촌이 새로 생겨났다.

민통선마을은 1959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했다.

군사적인 목적도 있었지만 북한의 계획적인 선전촌에 대응하고 버려진 땅을 농지로 개간, 식량난을 해결하자는 취지가 담겨졌다. 그런 의미에서 정전협정에 따라 DMZ 내 군사적 충돌을 억제하려는 목적으로 1953년 8월 3일 북한의 기정동 마을과 함께 조성된 최북단 대성동마을과는 성격이 다르다.

<민통선 60년> 민통선의 성묘 풍경
<민통선 60년> 민통선의 성묘 풍경

(철원=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민통선은 1954년 주한미군이 군사작전상 민간인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남방한계선 밑으로 선을 그으며 탄생했다. 60년 동안 인구 증가와 개발 압력으로 3차례 북상했다. 사진은 1992년 7월 연합뉴스가 촬영한 철원지역 민통선 북방지역 실향민들이 성묘하는 모습. 성묘객 주변에서 장병이 경계근무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2014.3.9 << 연합뉴스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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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1959년부터 민통선 북방에 98개의 자립안정촌, 1968∼1973년 12개의 재건촌, 1973년 2개의 통일촌 등 모두 112개의 마을을 건설했다.

현재는 경기 파주 2곳, 연천 1곳, 강원 철원 6곳만 남아 있다. 인구도 970여 가구, 2천400여 명으로 감소했다. 대성동마을의 인구는 통계에서 제외했다.

◇ 남북 화해 무드…개방 확대, 경작지 증가

1998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며 햇볕정책을 추진, 남북 교류가 활발해지며 민통선지역에는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조성 등 남북 교류협력사업은 민통선에 대한 인식을 '군사적 긴장의 완충지대'에서 '남북 교류의 전초기지'로 바꿨다.

1998년 11월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데 이어 2004년 12월 개성공단에서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민통선지역의 기반시설 확충을 불러왔다.

1998년 6월 임진강에 통일대교가 개통되고 2001년 9월 30일 경의선 임진강역이 신설됐다.

이듬해 4월 11일에는 민통선지역에 경의선 도라산역이 개통됐다. 이를 계기로 분단 이후 52년 만에 처음으로 민통선지역에 관광열차도 운행되기 시작했다.

도라산역은 2002년 2월 20일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다녀가며 역사적인 장소로 이름을 얻었다. 통일을 염원하는 각종 행사가 잇따라 열렸다.

2002년 9월 18일에는 남북으로 끊어진 경의선·동해선 철도와 도로 복원공사가 시작됐다.

2006년 3월 15일에는 경의선·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CIQ)가 준공돼 육로를 이용한 남북 출입국 업무가 가능해졌다.

경의선 도로와 경의선 CIQ는 개성공단 근로자들의 유일한 이동 통로다.

기반시설이 확충되며 민통선을 찾는 이들도 급속히 늘었다. 특히 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지며 외국인 관광객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2002년 5월부터 시작된 경기 파주 민통선지역 안보관광지의 누적 관광객 수는 11년 만인 지난해 6월 500만 명을 돌파했다.

인삼밭 등 경작지도 날로 증가했다.

<민통선 60년> 논두렁의 철모 조각
<민통선 60년> 논두렁의 철모 조각

(철원=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민통선은 1954년 주한미군이 군사작전상 민간인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남방한계선 밑으로 선을 그으며 탄생했다. 60년 동안 인구 증가와 개발 압력으로 3차례 북상했다. 사진은 1985년 연합뉴스가 촬영한 철원지역 민통선 주민들이 모내기하는 모습. 논두렁에 녹슨 철모 조각이 보이고 있다. 2014.3.9 << 연합뉴스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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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기준으로 민통선 면적은 1천86.6㎢(경기 232.9㎢, 강원 853.7㎢)다.

이 중 농업지역은 160.7㎢(경기 65.4㎢, 강원 95.3㎢)로 14.8%를 차지했다.

경기지역의 경우 1990년 농지 면적은 52.3㎢였다. 2000년 59.6㎢로, 2009년 65.4㎢로 점차 늘었다.

19년 만에 여의도 면적(2.9㎢)의 4.5배가 넘는 13.1㎢가 농지로 개간된 것이다.

청정지역에서 생산된 명품 농산물로 인기를 얻었다.

인삼 재배의 수요가 늘어난 데다 기후 변화로 민통선지역에서 재배가 어려웠던 복숭아와 사과까지 재배할 수 있게 되면서 경작지가 크게 늘었다.

시가지 면적도 늘었다.

1990년 1.0㎢에서 2000년 2.9㎢로, 2009년엔 4.4㎢로 늘어 여의도 면적의 1.5배가 됐다.

반면 산림은 1990년 157.6㎢에서 2000년 149.1㎢로 준 데 이어 2009년 125.6㎢로 감소했다. 여의도 면적의 10배가 넘는 30.0㎢ 산림이 경작지나 도로, 시가지 등으로 개발됐다.

그러나 활발히 진행되던 남북교류는 2008년 7월 11일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피격사건을 계기로 급속히 얼어붙었다.

특히 2009년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사건과 11월 연평도 포격사건, 지난해 4월 개성공단 사태 등 사건이 잇따라 터지며 남북 긴장은 고조됐다.

민통선지역의 역할과 통일 기대치도 당연히 위축됐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민통선지역은 남북 긴장의 틀에 갇혀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이산가족 상봉이 실현되는 등 남북 화해 분위기가 다시 조성되고 있다.

또 정부 차원의 DMZ 세계평화공원 추진,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발족 준비 등 통일시대에 대비한 논의가 재개됐다.

민통선지역에 또 다른 변화의 물꼬가 트이고 있다.

dmz@yna.co.kr, wy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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