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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학살피해자 명부>①60년만에 발견된 경위는

송고시간2013-11-24 05:58

1953년 이승만 전대통령 방일직후 주일공관 처음 전달 추정

일정(日政)시 피징용(징병)자 명부. << 연합뉴스 DB >>

일정(日政)시 피징용(징병)자 명부. << 연합뉴스 DB >>

<※편집자 주: 3·1운동 순국선열과 관동대학살 희생자,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피맺힌 절규가 담긴 명부가 최근 주일 한국공관에서 60년 만에 발견, 공개됐습니다. 해방 후 8년 만인 1953년 한국정부 차원에서 36년간의 일제 강점기 한국민의 각종 수난사를 실질 조사한 자료입니다. 연합뉴스는 과거사를 재조명할 수 있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 피살자 명부를 토대로 사건의 참상과 의미, 과거사 배상 문제와 한일관계 전망 등을 담아 4회 기획기사로 일괄 송고합니다.>

(서울·도쿄=연합뉴스) 이 율 기자·이세원 특파원 = 유난히 비가 자주 내렸던 지난 6월 도쿄 신주쿠주 요쓰야의 옛 한국 대사관 건물 내 서류·비품 보관창고.

한달 후 새로 지은 대사관으로 이전하기 위해 서류를 정리·포장하던 직원들은 낡은 박스를 하나 발견하고 뚜껑을 열었다.

일제 강점기 때 잔혹하게 목숨을 잃거나 피해를 무릅쓰고 저항했던 23만명의 피맺힌 절규가 60년 만에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 왜 60년 만에야 발견됐나

24일 국가기록원 등에 따르면 지난 8월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된 67권, 23만여명의 3·1운동과 관동대지진 피살자, 일제 당시 강제징용자 명부는 1953년 4∼7월 열린 제2차 한일회담 때 쓰고자 일본대사관으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명부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특명으로 만들어졌다.

지난 2005년 2월 공개된 김귀엽씨가 공개한 강제징용자 명단. 남편 홍기동(97년 작고)씨로부터 받은 이 명부에는 강제징용돼 미군 포로소에서 복역한 것으로 보이는 강제징용자 1천706명의 명단이 기재돼 있다. << 연합뉴스 DB >>

지난 2005년 2월 공개된 김귀엽씨가 공개한 강제징용자 명단. 남편 홍기동(97년 작고)씨로부터 받은 이 명부에는 강제징용돼 미군 포로소에서 복역한 것으로 보이는 강제징용자 1천706명의 명단이 기재돼 있다. << 연합뉴스 DB >>

이 전대통령은 1952년 12월 15일 부산의 대통령 임시관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3·1운동 살상자 수, 일본 관동대지진 희생자, 제2차대전 징용징병자 수 등 일제강점기 36년간의 수난사에 대한 조사와 집계를 내무부(현 안전행정부)에 지시했다.

내무부는 이튿날 각 시·도지사에게 조사를 지시했다. 일정시 피징용자 명부에 첨부된 서류를 보면 경기도지사는 1953년 1월 21일 조사결과를 내무부에 보고했다.

이런 상황에 비춰볼 때 이들 명부는 이승만 대통령의 1953년 1월 방일 직후에 주일본 한국대표부로 전달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주일 한국대표부는 한일 수교 전인 1949년 1월 일본 도쿄 긴자 핫토리세이코 빌딩 4층에 입주했었다. 그러고 나서 1951년 재일동포 고 서갑호씨(방림방적 설립자)로부터 토지와 건물을 빌려 도쿄 미나토구 아자부주반으로 이전했으며 1962년에 이를 기증받았다. 주일 한국대표부가 주일 한국대사관으로 승격된 것은 1965년이다.

이후 주일 한국대사관측은 1979년 같은 부지에 건물을 신축했고 2010년 동일본대지진 사태가 난 이후 내진설계를 보강하려고 개축했다. 개축 기간에 주일 한국대사관은 주일 한국문화원 청사에 임시로 세들었다.

명부는 임시 거처의 서류·비품 보관창고에서 개축한 원래 청사로 이사를 준비하다 발견됐다.

이동 궤적으로 볼 때 명부는 1953년 도쿄 미나토구 아자부주반의 한국대표부 청사로 전달됐고 1979년 청사 신축 또는 2010년 개축에 앞선 이사 때에도 발견되지 못한 채 임시 거처에서 개축이 완공된 주일 한국대사관 청사로 옮겨지는 과정에서야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이런 수차례의 이사 과정에서 명부가 왜 발견되지 못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남았다.

명부가 원본인지 사본인지도 명쾌한 분석이 필요하다. 명부는 수기(手記)로 작성된 서류들을 책자 형태로 모아 만들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서류 일부는 원본으로 보이지만 일부는 아래 검은 종이를 넣고 베껴 쓴 사본으로 보여 뒤섞인 형태이기 때문이다.

◇ 범정부 과거사 기록 실태조사 '주목'

정부는 일제강점기 희생과 저항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명부가 우연히 발견된 걸 계기로 국내외 각 기관에 보관된 과거사 기록 전반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섰다.

지난 5월 공사가 진행 중인 도쿄의 주일 한국대사관 신청사의 모습. << 연합뉴스 DB >>

지난 5월 공사가 진행 중인 도쿄의 주일 한국대사관 신청사의 모습. << 연합뉴스 DB >>

각 정부부처와 재외공관 161곳, 읍·면·동 단위까지 기록물 관리 서고를 뒤지고 있다.

국가기록원과 국사편찬위원회, 독립기념관, 국가보훈처 등은 1945년 해방 이전 일제 강점기 희생과 저항 관련 과거사 기록을 개별 법령에 따라 수집·관리하고 있다.

국가기록원은 공공기관이 생산·접수한 기록물과 민간 기록정보자료 중 국가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인정되는 자료·해외 기록물관리기관의 한국관련 기록물, 국사편찬위원회는 역사연구의 자료가 되는 기록, 독립기념관은 국난극복사와 국사발전사에 관한 자료, 국가보훈처는 국가유공자의 공훈선양관련 자료를 분담하고 있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이하 강제동원 피해조사 위원회)는 민관에서 수집한 각종 강제동원 명부 335종을 수집, 데이터베이스화해 관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개별기관 단위로 자료를 수집하기 때문에 수집기관 간 협조가 유기적이지 않아 중복수집 등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고, 수집자료의 공동활용이 어렵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이에 따라 민간이나 해외 과거사 기록물의 체계적 수집과 공동활용을 위한 국가기록물관리 관련 '콘트롤 타워'를 명확히 하고 각급기관의 기록정보자료의 자료목록을 모아 공동 활용토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이신철 교수는 "개별 기관별로 자료를 수집하기 때문에 기관이기주의 등이 작용해 비효율이 있기 때문에 국가기록원 위주로 통합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역사 일반에 관한 자료는 기관별로 검색되지만, 일제강점기를 위주로 한 과거사 자료를 체계화해 독자적으로 컬렉션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제동원 피해조사 위원회 정혜경 조사2과장은 "각 기관이 수집한 사료들의 복사본을 국가기록원으로 취합하는 것은 필요하다"며 "옛 읍면동 사무소의 호적이나 수용, 재판기록, 각급 학교의 학적부 등에 대해서는 세세한 조사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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