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실리콘밸리 남매창업가 "창업으로 연구 성과 극대화"
송고시간2013-07-18 06:10
이진형 교수 "한국-실리콘밸리 가교역할 하고 싶다"이제형 박사 "회사 전략 세울 때 누나 조언 결정적"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임상수 특파원 =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대학을 졸업한 '국내파' 한국인 남매가 창업가로서 한껏 주가를 올리고 있다. 사진은 이진형(36) 스탠퍼드대학 바이오엔지니어링 교수. 2013.7.18
nadoo1@yna.co.kr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임상수 특파원 = "상업화만큼 전파력이 빠른 게 없는 만큼 내 연구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생각해 창업에 관심을 가져왔습니다"(이진형 스탠퍼드대학 교수)
"회사 전략을 세우면서 어려움을 겪을 때 누나의 조언이 결정적인 도움이 됐습니다"(이제형 박사)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남매 창업가로 유명한 이진형(36)·제형(33)씨를 17일(현지시간) 미국 스탠퍼드대학 이 교수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날 제형 씨는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그는 스탠퍼드대 창업지원프로그램 '이그나이트'(Ignite)가 조금 늦게 끝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부터 박사과정까지 모두 같은 학교를 나온 남매는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 이상 만나 서로의 관심사를 논의하고 창업과 회사 운영에 대해 서로 조언한다"며 "팀플레이를 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진형·제형 남매와 일문일답이다.
-- (박사까지) 졸업했는데 수업을 듣는 이유는
▲ (제형) 방학기간 하는 창업지원프로그램 '이그나이트'(Ignite)에 참가하고 있다. 지금까지 (창업을) 해 온 과정이 제대로 된 것인지를 확인하는 차원이다. 또 벤처투자가를 연결해주는 등 인맥 쌓기에도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스탠퍼드 출신이어서 수강료가 750달러이다. 외부인은 1만달러나 된다.
-- 창업하게 된 이유는
▲ (제형) 한국에서 2010년 보스턴 컨설팅회사에서 10주 인턴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창업에 눈이 떴다. 그때부터 창업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지난해 9월 부터 사업 아이템을 찾아 준비과정을 거쳐 지난 1월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당시 실험실에서 지도교수님과 공동연구를 하던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독자적으로 연구한 아이템을 사업화하게 됐다.
-- 공동 창업가가 모두 한국인이라고 들었다.
▲ (제형) 3명이 공동창업했다. 모두 한국인이다. 그중 한 명은 고교 때부터 스탠퍼드대학 박사과정까지 줄곧 동창이다. 다른 한명은 여기에 와서 만났다. 서로 연구해 오던 것들을 하나로 합쳤더니 좋은 창업 아이템이 됐다. 출발은 7명이었지만 지금은 3명이 남았고 직원 2명을 채용했다.
-- 이 회사에 대한 벤처업계 반응은.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임상수 특파원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대학을 졸업한 '국내파' 한국인 남매가 창업가로서 한껏 주가를 올리고 있다. 사진은 이제형(33) 박사. 2013.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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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형) 잠재력 측면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이미 엔젤 투자자 2명에게 투자금을 조금 받았고, 현재는 구체적으로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국내 외 다국적 기업 2곳과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논의 중이다. 이들 기업이 회사에 대한 실사를 진행 중이다. 유명 벤처캐피털도 만났지만 요구 사항이 많아서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택했다. 누나의 도움으로 미국 정부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도 현재 추진 중이며, 정부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
-- 누나도 회사에 참여했다고 들었는데.
▲ (제형) 현재 등기이사로 등재돼 있다. 개인적인 멘토일 뿐 아니라 회사의 전략적인 방향을 정하는데도 중요한 도움을 줬다.
창업 직후 너무 앞선 기술이어서 구체적인 전략을 세우는 과정에서 어려움에 봉착했었다. 그때 누나와 대화하면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바이오엔지니어링을 전공한 누나의 조언이 회사 진로에 큰 도움을 줬다. 우리 회사가 이미징 센서를 만드는 곳인데 누나가 바이오 메디컬 이미징(영상)을 전공했기 때문에 우리 센서가 어디에 적용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잠재력 등에 대해 누구보다 정확한 조언을 해 줄 수 있다. 우리가 함께 '팀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진형)구글 글래스를 대표로 하는 '입는 컴퓨터'시대에 꼭 필요한 센서라고 생각한다. 현재 나온 센서 가운데 제대로 쓸 수 있는 게 없다.
-- 이 교수는 대학교수인데 창업을 했다.
▲ (진형) 지난해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UCLA)에서 스탠퍼드대로 옮겨오면서 진척이 조금 늦어졌지만 원래 동생보다 먼저 창업했다.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면서부터 창업을 염두에 뒀다. 대학에서 연구하는 이유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학에 머물러 있으면 자칫 연구를 위한 연구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연구 결과의 상업화가 내 연구가 세상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보여주는 척도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상업화만큼 전파력이 빠른 게 없는 만큼 내 연구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창업에 관심을 가져왔다.
-- 스탠퍼드대학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 (진형) 동부에 있는 대학교수들은 스탠퍼드대학 교수들은 창업에만 신경쓰고 연구를 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연구는 세상에 의미있는 도움이 돼야한다고 생각한다. 이곳의 문화는 혁신을 장려한다. 또 주변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다. 성공한 경험이 있는 선배들도 많다. 이곳은 늘 신나고,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는데 동부는 그에 비해 진취적이지 않다. 처음 유학을 올 때도 이곳과 동부에 있는 대학들을 모두 둘러본 후 이곳의 문화가 마음에 들어 이곳으로 정했다.
(제형) 누나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이곳의 자유로운 문화가 마음에 들었다. 당시 (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졸업식사에 반한데다 구글이 새롭게 부상하는 등 혁신이 늘 일어나는 곳에서 교수가 되든, 창업가가 되든 기회를 찾고 싶었다. 멋진 날씨도 너무 좋다.
-- 놀라울 정도로 남매가 같은 학교에 다녔다. 동생이 누나를 쫓아다닌다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 같다.
▲ (진형) 유치원만 빼면 박사과정까지 같은 학교를 다녔다. 다만 박사과정에서 저는 바이오 쪽, 동생은 반도체 쪽으로 진로가 달라졌다.
(제형) 누나는 어렸을 때부터 수학에 탁월한 능력이 있었고 저는 물리를 잘했기 때문에 박사과정에서 전공이 달라진 것 같다.
누나의 뒤만 쫓아왔다는 말을 들을 때도 있지만 억울하지는 않다. 누나는 사실 한국에서 대학까지 나와 이곳에 유학 와서 이렇게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을 보면서 늘 존경해 왔다. 실제로 누나는 우리 과학계의 스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렸을 때 정말 많이 싸웠다.(웃음)
-- 박사과정을 마치고 창업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반대하지 않았는지. 누나처럼 교수직을 권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임상수 특파원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대학을 졸업한 '국내파' 한국인 남매가 창업가로서 한껏 주가를 올리고 있다. 주인공인 이진형(36) 스탠퍼드대학 바이오엔지니어링 교수와 동생 제형(33) 박사가 스탠퍼드대학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3.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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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형) 저는 우선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제형) 누나는 교수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저처럼 전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면서 창업에 올인(다걸기)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그래서 성공가능성은 오히려 내가 높다고 생각한다. 사실 교수직이 장점도 많다. 정부자금을 유치하는데 누나가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이곳 교수님들은 제가 창업하겠다고 하니까 같이 해보자고 제안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이곳에는 기업가와 교수가 연구와 창업을 공동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 부모님이 반대하지는 않았는지.
▲(진형) 저는 교수를 선택했지만, 스탠퍼드대학이라고 해도 학계에서 창업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학교가 아무래도 보수적인 곳이고 교수로서 해야 할 일도 많다.
사실 부모님은 교수가 되기를 원하시는 눈치지만 반대하지는 않으셨다. 믿어주시는 편이다. 저한테도 '의대는 어떠니…'라고 물어보신 적이 있지만 과학자가 되는 것을 반대하시지 않았다.
(제형) 부모님이 교수가 되기를 원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믿어주지 않는다면 사업을 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강하게 말씀하셨다면 고민했을 것 같다.
-- 박사학위를 받은 후 창업을 하면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지. 페이팔 공동창업자 피터 시엘처럼 대학교육 무용론을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제형) 스탠퍼드대에는 창업프로그램 중에 D(디자인) 스쿨이라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 문지방을 넘거나 계단을 오를 수 있도록 개선한 노인 보행보조기를 내놓은 것을 봤다. 이런 것들도 상당한 가치가 있지만 박사학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만, 훨씬 깊은 연구를 토대로 한 혁신도 있다. 대학원에 있을 때만 해도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몰랐지만 지금은 박사과정에서 보고 배운 것, 연구한 것들 가운데 실제로 사업화해 보고 싶은 게 정말 많아졌다. 그런 아이템을 개인적으로 정리해 놓고 있다.
(진형)사실 운이 좋거나 실제로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데도 사업에 크게 성공한 경우가 있다. 심지어 사회악이 되는 경우도 많다. 그보다 정말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근본기술을 가지고 성공하는 게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성공을 돈을 척도로만 잴 수 없다.
--실리콘밸리에서 젊은 한국의 창업가들을 많이 만났는지.
▲ (제형) 플러그앤플레이나 알캐미스트 등 실리콘밸리네 유명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았고, 스탠퍼드대의 스타트업 지원모임 BASES의 도움을 받았으나 지금까지 한국 창업가는 본 적이 없다. 아직 한국에서 본격 진출했다고 보기는 힘든 것 같다. 다만, 최근 한국에서 온 팀이 플러그앤플레이에서 상을 받았다는 말은 들은 것처럼 한국 창업가들이 도전을 시작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진형) 아무런 연고가 없는 실리콘밸리에 정착한다는 게 쉽지 않아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이 교수는 실리콘밸리에서 15년이나 있었는데.
▲ (진형) 유학 초기에는 한국인이 별로 없어 외롭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다.
지금은 한국이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한데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요즘 이곳에 오는 젊은 사람들은 선배들이 닦아놓은 토대 위에서 자신감이 넘치고 영어도 잘하는데다 리스크 테이킹(위험감수)에 대한 부담도 덜 느낀다.
-- 요즘 창조경제가 화두다. 실리콘밸리가 롤모델로 부상하고 있다.
▲ (진형) 한국과 실리콘밸리 연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사실 한국의 가장 큰 장점은 유능한 인력이 많다는 점이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스탠퍼드대학이나 실리콘밸리에 오지만 결국 IT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보다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이런 부분을 놓고 한국 정부와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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