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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강타한 '귀태' 도대체 어떤 말이길래…>

시바 료타로, '쇼와시대' 빗대어 만든 말강상중은 자전적 에세이선 `다른 의미'로 사용
기자들 질문 공세, '귀태' 발언한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변인
기자들 질문 공세, '귀태' 발언한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변인(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새누리당이 12일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변인의 '귀태' 발언을 문제 삼아 모든 원내 일정의 중단을 전격선언했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변인이 12일 오전 국회 운영위 회의실로 향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13.7.12
jjaeck9@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유미 기자 = '귀태'(鬼胎)라는 생경하고도 음습한 단어가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귀태의 사전적 뜻은 '두려워하고 걱정함', '나쁜 마음' 정도다.

사전적 뜻만 생각한다면 별 문제가 없을 이 단어가 마치 쓰나미처럼 순식간에 정치권을 집어삼기키고 있다.

'귀태' 논란이 촉발된 것은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변인이 11일 브리핑에서 한국계 재일 학자 강상중 현무암 교수의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의 본문 내용을 인용하면서다. 이 책은 일어로 출간된 '흥망의 세계사' 시리즈 가운데 만주 부분만을 우리말로 완역한 역서다.

홍 원내대변인은 "책에 '귀태'라는 표현이 있다. 귀신 귀(鬼), 태아 태(胎)를 써서, 그 뜻은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태어났다(는 것)"며 "일본이 제국주의를 위해 세운 만주국의 귀태가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이러니하게도 귀태의 후손들이 한국과 일본의 정상으로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를 언급했다.

정부와 여당은 바로 이 '귀태'라는 표현에 발끈하며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자유민주주의에 정면 도전한 것"(청와대), "국가원수 개인에 대한 직접적 명예훼손 및 모독"(새누리당)이라고 반발하는 상황까지 발전했다.

그렇다면 실제 책에서는 '귀태'가 어떤 의미로 쓰였을까.

저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를 각각 '독재자'와 '쇼와의 요괴'로 지칭하고 두 사람의 뿌리가 일본 제국주의의 분신인 '만주제국'이었다고 서술하면서 두 사람을 '제국의 귀태들'이라고 묘사했다.

또한 "그들은(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는) 발 달린 망령처럼 되살아나 '독재자'와 '요괴'의 자식들(박근혜 대통령, 아베 신조 총리)을 움직이고 있다"고 서술했다.

이 어려운 단어에 역자가 주석을 달았다. 역자는 '귀태'에 대해 "작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의 조어"라며 "의학적으로는 융모막 조직이 포도송이 모양으로 이상증식하는 '포도상 귀태'를 뜻하지만, '태어나서는 안될, 사위스러운, 불길한' 같은 부정적 뉘앙스가 강한 말"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유명 소설가 시바 료타로(1923~1996)는 이른바 쇼와시대로 일컬어지는 1905~1945년을 '귀태의 40년'이라고 정의했다. 쇼와시대를 규정하기 위해 귀태라는 말을 만들어냈다는 게 정설인 것 같다.

그러나 일본의 문헌과 자료를 살펴보면 시바가 '귀태'와 함께 '이태(異胎)'라는 표현을 같은 의미로 사용했던 점으로 미뤄 봤을 때 귀태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라는 단선적인 정의에 가두어 둘 수 있는지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서울=연합뉴스) 강상중 현무암 교수의 저서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이 책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를 각각 '독재자'와 '쇼와의 요괴'로 지칭하고 두 사람의 뿌리가 일본 제국주의의 분신인 '만주제국'이었다고 서술하면서 두 사람을 '제국의 귀태들'이라고 묘사했다. 또한 "그들은(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는) 발 달린 망령처럼 되살아나 '독재자'와 '요괴'의 자식들(박근혜 대통령, 아베 신조 총리)을 움직이고 있다"고 서술했다. 2013.7.12
photo@yna.co.kr

시바는 일제가 러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등으로 치달았던 시기인 쇼와시대를 본래의 일본에서 일탈한 '변종의 시대', '이질적인 시대'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귀태' 또는 '이태'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지적이 많다. 즉 메이지(明治)시대는 "좋은 시대"라고 하면서도, 쇼와시대는 '귀태'라는 조어를 통해 비판을 삼가고 어물쩍 넘어가려 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된 책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의 공동저자인 강상중 교수가 '재일 강상중'이라는 2004년 출간된 자전적 에세이에서 사용하고 있는 '귀태'의 쓰임새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강상중의 단어사용이 시바와는 미묘하게 다른 각도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강상중은 자신의 숙부를 회고하며 "역사가 강요한 가혹한 인생이라고 말해 버리면 그뿐인 것인가. 그러나 역사에 휘말리면서도 아버지와 아저씨는 나름의 방법으로 꿋꿋이 살아냈다고 생각한다. 가혹한 인생을 살아낸 '귀태'들의 기억을, 그들이 살았던 장소에 붙잡아 두고 싶다"는 대목을 보면 귀태가 중층적인 뜻을 지닌 단어로 받아들여진다.

강상중은 여기서 '귀태'를 "조선사(한국사)와 일본사의 경계로 밀려나 경계를 방황하는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역시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란 책(186쪽)에는 "…이때부터 다카키 중위 박정희는 제국에서 밀려난 '귀태'로서 그 과거를 봉인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대목이 나온다. 제국의 본류가 아닌 변방으로 떼밀린 존재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귀태'가 쓰였다고 볼 수 있다.

귀태를 놓고 여러가지 논박이 있을 수 있지만, 이미 이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일은 거추장스러운 작업으로 보일 정도로, '귀태 논란'은 정치문제화되어 버렸다.

gatsby@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3/07/12 18:0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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