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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노병들> 英 클러프씨 "생전에 한반도 통일 봤으면"

연금 쪼개 한국 학생에게 장학금 주는 글로스터연대 출신"기력 떨어지기 전에 한국 더찾고 싶지만 형편 안돼"

(런던=연합뉴스) 김태한 특파원 = "한반도 통일은 반드시 이뤄질 겁니다. 생전에 볼 수 있다면 그보다 기쁜 일이 없을 겁니다."

잉글랜드 글로스터에서 만난 한국전쟁 참전용사 토미 클러프(82)씨는 남북통일이 이뤄져 자신 같은 6·25 세대의 유산이 값진 결실을 보기를 희망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동안 한국의 위상이 몰라보게 달라져 경제적 어려움에 부닥친 북한 내부로부터 통일에 대한 요구가 계속 커질 것이라는 분석도 덧붙였다.

그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 19살의 나이에 5만6천명을 파병한 영국군의 일원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글로스터 연대에 배속돼 이듬해 한국전쟁 3대 전투로 꼽히는 '임진강 전투'에 나섰다가 포로가 돼 종전 후에야 귀향길에 오를 수 있었다.

그는 처음에는 몇 개월이면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이 길어져 귀환까지 3년이나 걸렸다고 회고했다.

"부산에 도착한 게 1950년 9월 경이었습니다. 몇 달 후 크리스마스까지는 집에 돌아갈 수 있을 줄로만 믿었는데 돌이켜보면 순진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호기심 반, 도전 정신 반으로 전쟁에 자원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장의 체험은 평생 잊히지 않는 상흔이 됐다고 토로했다.

그는 부대원 750명 대부분이 죽거나 포로가 된 임진강 전투가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초병 근무를 서고 있었는데 중공군이 새까맣게 밀려들었어요. 후퇴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떨어진 명령은 진지를 사수하라는 것이었죠."

그가 소속된 글로스터 연대는 한국전 참전 영국군의 주력부대였다.

1951년 4월 파주 적성면 설마리에서 퇴로가 차단된 채 2만7천명 규모 중공군 3개 사단의 총공세에 맞서 나흘을 버텼다.

그는 계속되는 전투로 수랭식 기관총을 식힐 물마저 떨어져 나오지 않는 소변을 모아 썼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이 전투로 글로스터 부대원 750명 가운데 167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고, 526명이 포로가 됐다.

전투에서는 졌지만 글로스터 연대의 활약은 국군과 유엔군의 방어선 구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중공군에 맞서 시간을 벌어주지 못했다면 서울이 다시 북한의 수중에 떨어져 전쟁의 양상이 크게 달라질 수도 있었다는 평가가 따른다.

포로가 된 클러프씨는 압록강변 중공군 포로수용소까지 6주간 이동하는 고난의 행군을 겪어야 했다. 그는 중공군 치하의 포로수용소 생활은 처참한 처우와 강제 노역, 사상 교육의 연속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그는 전쟁의 참상을 극복하고 경제 강국으로 변신한 한국의 발전상을 볼 때마다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밝혔다.

한국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 마지막 방문한 2011년 이후에 얼마나 또 달라졌을지 궁금하다고도 말했다.

기력이 떨어지기 전에 기회만 있으면 한국을 더 찾고 싶지만 연금으로 생활하는 형편으로는 쉬운 일이 아니라며 아쉬움도 내비쳤다.

그를 비롯한 글로스터 연대 출신 참전용사들은 넉넉지 않은 형편인데도 매달 받는 연금을 일부 쪼개 한국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고령의 참전용사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 매년 숫자가 줄어 안타깝다는 그는 "참전용사로서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 교육에 적은 힘이나마 도움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전 노병들> 英 클러프씨 "생전에 한반도 통일 봤으면" - 2

thkim@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3/06/23 06:03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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