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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시위, 이슬람주의-세속주의 충돌 측면 강해>

총리의 억압적·독선적 통치가 도화선...아랍의 봄'과는 달라

(이스탄불=연합뉴스) 김준억 특파원 = 터키 이스탄불 도심의 작은 공원을 지키려던 집회가 반정부 시위로 확산한 도화선은 경찰의 과잉진압이지만 현 정권의 억압적이고 독선적인 통치가 근본 배경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최근 주류 규제 강화와 이스탄불 제3대교 건설 등의 정책을 주도하면서 반대 여론을 무시하는 오만함을 보여왔다.

에르도안 총리가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정책들을 밀어붙이면서 청년과 중산층을 중심으로 반발심리가 축적됐으며 이번 시위에 일제히 터져 나왔다.

이슬람에 뿌리를 둔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이 이슬람 성향의 정책을 강화하자 서구적 개혁 이념인 '케말리즘'(Kemalizm)과도 충돌하는 모습이다.

시위 발발 1주일을 맞은 3일(현지시간) 오전 이스탄불 시내에선 시민들이 일상으로 복귀하고 도심인 탁심광장의 시위대도 현장을 청소하는 등 평온을 되찾았으나 오후에 다시 많은 시위대가 몰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시위가 쉽사리 끝나지는 않겠지만 에르도안 총리는 선거를 통해 집권했으며 지지층도 탄탄하다는 점 등에 따라 이번 시위를 '아랍의 봄'과 비교하기는 무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총리의 세소적 자유 제한·독선적 통치에 반발

11년 동안 터키를 통치한 에르도안 총리는 이슬람 색채가 강한 정책들을 추진하면서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독선적인 통치를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달만 하더라도 주류 규제를 대폭 강화하고 사설 경비원을 공권력인 경찰로 대체하는 정책들을 내놔 거센 반발을 일으켰다.

에르도안 총리의 주도로 지난달 24일 의회에서 통과된 주류 규제 관련 법안은 밤 10시 이후 소매점에서 술을 팔지 못하도록 했다.

알코올이 들어간 음료의 생산자와 수입자, 판매자들은 목적을 불문하고 홍보나 사은품, 판촉 등을 무상으로 제공할 수 없도록 하는 등 주류 관련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이런 정책이 자유를 제한한다는 여론이 들끓었으나 에르도안 총리는 "집에서 술을 마셔라"라고 대꾸해 오만한 대응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대학생 오스만 귤은 "술에 대한 규제 강화는 국민에게 다음에 총리가 또 제한을 시도할 것이라는 우려를 샀다"고 말했다.

지난달 22일 정부는 사설 경비원이 최근 폭력사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면서 대학과 경기장 등의 경비를 맡는 경찰부대를 신설하겠다고 밝힌 것도 거센 반발을 샀다.

터키의 대학교수들과 대학생들은 정부의 발표가 나오자 일제히 반대하고 나섰다.

앙카라대학 얄츤 카라테페 정치정보학부 학장은 "정부가 권력에 항의하는 세력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대학들을 무력으로 '가시 없는 장미정원'으로 만들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스탄불의 제3대교 건설도 이번 시위 확산의 원인으로 꼽힌다.

환경단체와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이 공사가 이스탄불의 녹지를 훼손하고 교통체증도 심화시킬 것이라며 반발했으나 지난달 29일 착공식에 참석한 에르도안 총리는 반대 여론을 무시했다.

회사원 볼칸 아라스는 "총리가 '반대 시위를 할테면 해봐라, 우리는 이미 결정했다'는 취지로 발언하는 그의 오만함에 질렸다"고 말했다.

이밖에 지난 4월 세계적 피아니스트인 파즐 사이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 이슬람교를 비하했다며 실형을 선고해 표현의 자유를 제한했다는 비판을 샀다.

이처럼 자유를 억압하는 일련의 정책들이 청년층이 이번 시위를 주도하게 된 배경으로 풀이된다.

◇이슬람 색채 강화로 케말리즘과 충돌

자유 제한에 대한 반발과 함께 '케말리즘'이 이번 시위의 한 축으로 자리하고 있다.

케말리즘이란 오스만제국 말기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고자 터키 공화국을 건설한 무스타파 케말이 주도한 서구적 개혁 이념이다.

서구화를 목표로 소수민족으로 분리할 수 없는 국가의 일체성과 이슬람교를 이용해 정치를 하지 않는다는 세속주의 등이 핵심이다.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은 '터키의 국부(國父)'란 뜻인 '아타튀르크'로 불려 케말리즘은 '아타튀르크주의'라고도 한다.

에르도안 총리의 이슬람 강화 정책에 대한 반발이 이번 시위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번 시위가 처음 시작된 이스탄불 도심의 탁심광장도 케말리즘을 상징하는 곳이다.

에르도안 총리는 이곳의 '게지공원'을 허물고 대형 쇼핑몰과 함께 오스만제국 당시의 포병부대를 재건축하는 것도 목적이라고 밝혀 케말리즘 지지자들의 반발을 샀다.

도시계획 전문가인 코르한 규뮤쉬 건축가는 "이 곳의 포병부대 건물은 1차 세계대전 때 이미 무너져 없어져 리모델링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며 "탁심광장은 터키 공화국 건설 주역들을 상징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주류 규제 강화 정책은 이슬람 성향이 강하다는 것 외에도 에르도안 총리의 발언으로 케말리즘 지지자들의 반발을 샀다.

에르도안 총리가 주류 규제의 정당화를 주장하면서 터키에 '주정뱅이'가 두 명 있다고 말했는데 이 가운데 한 명이 아타튀르크를 지칭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케말리즘 성향의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은 즉각 에르도안 총리의 발언은 터키 공화국 건국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이스탄불 제3대교의 명칭을 오스만제국의 9대 술탄인 셀림 1세로 붙이겠다는 발표도 터키 국민 사이에서 과거 이슬람제국으로 회귀하려는 것이냐는 비판을 받았다.

셀림 1세는 술탄 자리를 놓고 다투던 그의 형제들과 아들을 모두 살해하는 등 잔혹한 것으로 유명하며 터키의 소수 이슬람 종파인 알레비파들은 그를 선조의 학살자로 여기고 있다.

직장인 네슬 리한은 "터키의 국민 99%는 이슬람교를 믿지만 아타튀르크를 부정하면서 이슬람제국으로 회귀하는 것에는 국민의 절반 이상이 반대하고 있다"며 "이번 시위는 케말리즘을 지우려는 현 정권의 반발이 쌓였다가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위 장기화 전망되나 '아랍의 봄'과는 다를 듯

이스탄불에서 시작된 시위가 67개 도시로 확산해 지난달 28일 이후 235차례의 시위가 벌어져 당분간 시위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익명을 요구한 터키 관리는 "이번 시위가 광범위하게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어 시위가 오래갈 것 같다"면서도 "서방 언론의 보도처럼 '터키의 봄'과 같은 사태로 번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번 시위가 격렬했던 이스탄불과 이즈미르, 안탈리아 등은 전통적으로 현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하며 정의개발당을 적극 지지하는 동부 지역에선 거의 시위가 일어나지 않았다.

'아랍의 봄'이 휩쓴 중동 국가들은 권력이 세습되고 민주주의 기반이 약한 것과 달리 에르도안 총리는 국민의 투표로 선출됐기 때문에 아랍의 봄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시위에 참여한 메흐메트 칸르는 "시위대 상당수는 체제를 전복하자는 게 아니라 잔인하게 탄압한 경찰의 행동에 화가 났기 때문일 것"이라며 "이번 시위를 빌미로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세력에 대한 견제 여론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시위대는 에르도안 총리 퇴진을 외치고 있지만 야당들은 내년 대통령선거를 의식해 이런 수준까지는 요구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공화인민당은 총리에게 공개 사과만을 요구했고 민족주의행동당(MHP)는 과잉진압한 경찰에 책임을 물었다.

데브레트 바흐첼리 MHP 대표는 "'터키의 봄'과 같은 말을 해서 '형제싸움'을 일으키고 싶은 사람들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1970년대 좌파와 우파가 심한 대립을 벌여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형제싸움'이 재발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무라트 예트킨 칼럼니스트는 "터키는 3권이 분립된 민주주의 체제로 아랍 국가와는 다르다"며 시위가 격화되자 압둘라 귤 대통령은 에르도안 총리와 달리 경찰을 철수하도록 했고 이스탄불 지방법원은 재개발 공사 중지 가처분신청을 인용한 사례를 들었다.

다만 반정부 시위가 더 확대되면 국민의 절반가량인 현 집권당 지지자들이 시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면서 터키의 내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justdust@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3/06/03 19:2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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