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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석가탑, 그 영광과 수난의 1300년

송고시간2013-04-02 08:00

경덕왕 원년 건립, 지진·도굴 피해..국보 쏟아내

1966년 석가탑 해체
1966년 석가탑 해체

(경주=연합뉴스) 1966년 석가탑 해체 당시 2층 옥개석까지 분리하는 모습. 2013. 4.2 << 문화부 기사참조, 연합DB >>
taeshik@yna.co.kr

(경주=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불국사 대웅전 앞마당에 다보탑과 나란히 버틴 석가탑(삼층석탑)은 올해로 정확한 나이가 1천273세다.

그것을 세운 정확한 연대는 최근에야 밝혀졌다. 1966년 석가탑을 해체수리할 때 발견된 고려시대 초기의 석탑 수리 문서를 통해 신라 경덕왕 원년(740)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석가탑은 문화재보호법상 정확한 이름이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이며, 현재 국보 제21호다.

불교미술사학계에서는 이 석탑을 신라시대 삼층석탑의 정형을 보여주는 탑으로 평가한다.

2중 기단 위에 3층 탑신(塔身)을 세웠다. 기단이나 탑신에는 이렇다 할 조각이 없어 각종 화려한 장식을 한 인근 다보탑과는 달리 간결하고 장중한 느낌을 준다.

학계는 이 석탑이 전탑(벽돌탑)과 유사한 신라 초기 석탑 형식에서 발전한 것으로 평가한다.

부재를 분할하지 않고 통돌을 사용한 가장 이른 예로 후대 신라 삼층석탑의 정형을 확립한 뿌리로 평가되기도 한다. 쉽게 말해 그 이후 한반도에 태어난 삼층석탑은 모두 석가탑을 롤 모델(role model)로 삼는다 해도 과언이 아닌 기념비적인 탑이다.

◇ 석가탑 수난사

석가탑은 한동안 처음 건축 이래 단 한 번도 큰 보수는 없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1966년 해체 수리 때 사리공에서 발견한 석탑 중수기(수리내역서)가 최근 판독되면서 사정이 일변했다.

이를 통해 먼저 고려 현종 15년(1024) 해체수리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원인은 지진으로 보인다. 이어 12년 뒤인 정종 2년(1036)에도 지진으로 피해 보수를 했으며, 다시 2년 뒤인 정종 4년(1038)에도 다시 지진으로 피해를 보아 고쳐 쌓았다.

조선 선조 20년(1586)에는 낙뢰로 탑 꼭대기 뾰족한 부분인 상륜부가 손상돼 떨어져 나갔다. 이때 손상한 상륜부는 1972년에야 복원하게 된다. 하지만 원래 모습을 알 수가 없어 석가탑과 비슷한 통일신라시대에 쌓은 실상사 삼층석탑의 그것을 본떠 붙였다.

조선 후기에는 불교에 대한 각종 압박이 심해져 불국사가 쇠락하면서 석탑 또한 훼손이 가속했다.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할 무렵에 촬영한 사진들을 보면 훼손이 극심하다. 그러다가 1925년 무렵에 팔방금강좌대와 주변을 정비했다.

<불국사 석가탑, 그 영광과 수난의 1300년> - 2

석가탑은 1966년 사리공에서 사리장엄구를 훔치려던 도굴꾼들에게 탑재 일부가 훼손됐다. 이렇게 해서 당시 해체 수리가 결정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2층 옥개석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떨어뜨리는 어이없는 사고가 발생해 사리장엄구를 수습하는 것으로 해체수리는 끝났다.

그러다가 2010년 12월1일,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석탑을 정기 안전 점검하던 중 기단 갑석에서 길이 1천320㎜, 간격 5㎜ 정도의 균열이 확인됐다.

그 원인을 분석한 결과 기단 내부를 채운 흙과 돌덩이인 적심(積心)이 유실되고, 상부 하중의 지지점이 상실됨에 따라 일어났다는 결과가 제출됐다.

<그래픽> 불국사 석가탑 해체 복원
<그래픽> 불국사 석가탑 해체 복원


(서울=연합뉴스) 박영석 기자 = 국보 21호인 불국사 석가탑(삼층석탑)이 47년 만에 속살을 드러낸다.
석가탑 해체 수리 복원 사업을 진행 중인 국립문화재연구소 경주석조문화재보수정비사업단은 2일 오후 2시 현장에서 2층 옥개석(屋蓋石. 지붕처럼 덮은 돌)을 해체하고 그 아래 몸돌인 탑신(塔身)의 사리를 모시기 위한 공간인 사리공(舍利孔)을 노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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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석탑은 2010년 12월16일 문화재위원회에서 해체수리를 결정했으며, 지난해 9월27일 해체수리에 착수했다.

◇ 1966년 해체 보수

현대에 들어와 석가탑의 대대적인 보수는 1966년 도굴 시도 실패에 따른 후속 조치로 진행됐다.

당시 해체 보수는 10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됐다. 애초 계획한 해체의 범위가 정확히 어느 정도였는지, 전면 해체였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탑신 2층 옥개석까지 해체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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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개석을 분리해서 땅에 내려놓는 과정에서 그만 돌이 굴러 떨어진 대형 사고가 발생한 여파였다.

이런 우여곡절에서도 조사단은 2층 탑신석에서 사리공을 찾아내고 거기에서 사리 48과와 사리장엄구를 수습했다.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로 기록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바로 이 사리공에서 발견됐다. 다라니경과 사리장엄 관련 유물들은 국보로 지정됐다.

사리공은 가로·세로 각각 41㎝에 깊이는 19㎝였다. 이곳에서는 금동제 사리외함과 공양품 등 총 40건에 달하는 유물이 발견됐다.

사리를 담는 그릇인 사리기는 모두 3종이 확인됐다. 하나는 유리제 사리병으로 사리 46과를 봉안했다. 이 사리병은 은제 사리 내호, 은제 사리 외호, 금동제 사리 외함으로 덮여 있었다.

두 번째는 목제 사리병으로 사리 1과를 봉안했다. 금동제 방형 사리합으로 감쌌는데 사리공 동북쪽 모서리에서 발견됐다. 세 번째는 은제 사리 소호로서 사리 1과를 봉안했다. 은제 사리합으로 감싼 이 사리소호는 사리공 서북쪽 모서리에 발견됐다.

불교미술사학계에서는 각각 다른 양식이라는 점에서 2차례 정도 석탑을 중수하면서 새로 넣은 사리기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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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보수 때 발견된 묵서지편(墨書紙篇)이라는 종이류 뭉치는 뒤늦게 그 내용이 판독되면서 불국사와 석가탑 역사를 뒤흔들게 된다. 2005년 무렵 당시 이를 보관 중이던 국립중앙박물관이 이 종이 뭉치를 하나하나 해체한 결과 고려 초기 때 석가탑을 수리한 내용을 기록한 중수기 문서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석가탑의 정확한 창건 연대가 드러나고, 석가탑은 단 한 번도 수리 보수가 없었다는 신화가 붕괴됐다.

이런 역사를 지닌 석가탑이 해체 수리 근 반세기 만에 다시 전면 해체 수리가 진행 중이다. 이번에는 석탑 기단까지 전부 들어냈다가 다시 세우는 전면 해체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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