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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 시인, 93년 만에 고교 졸업장 받았다

송고시간2013-02-06 14:52

서울 휘문고, 영랑 김윤식 선생에 명예졸업장 추서막내딸 김애란씨 "아버지도 무척 기뻐하실 것"

김영랑 시인, 93년만에 빛나는 졸업장 '모란이 피기까지' 등 주옥 같은 서정시를 남긴 김영랑 시인이 93년 만에 모교에서 명예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독립운동에 연루돼 옥고를 치르다 받지 못한 졸업장은 이제 칠순을 눈앞에 둔 막내딸에게 대신 수여됐습니다. 이경태 기자입니다. ==================================================== 1919년 3월 당시 나이 16세, 고교생 김영랑은 기미독립운동에 연루돼 옥고를 치릅니다. 고향인 전남 강진에서 4.4.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된 겁니다. 김영랑 시인은 이 사건으로 모교를 졸업할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잃어버렸던 졸업장은 김 시인의 고향인 전남 강진군과 휘문고의 협의 끝에 무려 93년만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김 시인과 동문이 된 학생들은 자랑스러운 선배의 뒤늦은 졸업식을 축하했고 아버지의 졸업장을 받아든 막내딸은 감격스러워 했습니다. [김애란 / 김영랑 시인 막내딸] "아버지가 하늘에서 보시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아직도 믿기지 않고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너무 감사드립니다. " 6·25전쟁 중 포탄에 맞아 생을 마감하기까지 47년,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았지만 그의 작품은 이념과 정파에 휩쓸리지 않는 순수함으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테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휘문고는 김 시인을 오는 21일 자랑스러운 휘문인상 수상자로 선정했고 강진군은 김 시인의 생가 인근에 영랑문학공원 조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뉴스와이 이경태입니다.

(서울=연합뉴스) 고상민 기자 =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휘문고교.

교정에 드문드문 서 있는 나목들이 간밤에 내린 눈에 하얀 새 옷을 입고 졸업식 인파를 맞고 있었다.

600여 명의 졸업생들이 저마다 들뜬 표정으로 교내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사이, 일흔에 가까운 한 할머니가 설 녹은 눈길을 헤치고 뚜벅뚜벅 강당으로 향했다.

시인 김영랑, 94년 만에 고교 졸업장
시인 김영랑, 94년 만에 고교 졸업장

시인 김영랑, 94년 만에 고교 졸업장
(서울=연합뉴스) 유용석 기자 = 한국 현대시의 거성 영랑 김윤식(1903~1950) 선생이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휘문고등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학교법인 휘문의숙으로부터 94년 만에 졸업장을 추서 받았다. 사진은 이날 졸업식에서 선생의 막내딸 김애란 씨(가운데)가 반의환 교장(왼쪽)에게 명예졸업장을 전해 받은 후 기념촬영 하는 모습. 2013.2.6
yalbr@yna.co.kr

여조카와 나란히 내빈석에 앉은 할머니는 시인 '영랑' 김윤식(1903∼1950) 선생의 막내딸 김애란(69)씨. 아버지 대신 93년 만에 졸업장을 받기 위해서였다.

모교 출신의 내빈 소개가 이어진 뒤 7번째로 단상에 선 김씨는 감격스런 표정으로 아버지 대신 후배들에게 목례를 건넸다.

영랑 선생은 휘문의숙(徽文義塾·휘문고 옛 명칭) 3학년이던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운동에 연루돼 졸업 기회를 잃었다.

당시 그는 자신의 구두 안창에 독립선언문을 숨기고 고향인 전남 강진에 내려가 독립운동(강진 4·4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시인 김영랑, 94년 만에 고교 졸업장
시인 김영랑, 94년 만에 고교 졸업장

시인 김영랑, 94년 만에 고교 졸업장
(서울=연합뉴스) 유용석 기자 = 한국 현대시의 거성 영랑 김윤식(1903~1950) 선생이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휘문고등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학교법인 휘문의숙으로부터 94년 만에 졸업장을 추서 받았다. 사진은 이날 졸업식에서 선생의 막내딸 김애란 씨(오른쪽)가 반의환 교장에게 명예졸업장을 전해 받는 모습. 2013.2.6
yalbr@yna.co.kr

전남 강진군은 지난해 '모란의 시인' 김영랑을 재조명하는 사업의 하나로 고교 명예졸업장 추서를 휘문고 측에 제안했고 학교도 이에 흔쾌히 응했다.

휘문고 측은 "늦은 감이 있지만 명예졸업장 추서를 계기로 김영랑 선생의 민족의식과 문학 정신이 더욱 빛나기를 기대한다"며 지난달 21일 영랑 선생에게 작고(作故)한 동문에게는 처음으로 '자랑스러운 휘문인 상'도 수여했다.

김애란씨는 "아버지 졸업장을 막내인 내가 90여 년 만에 대신 받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며 "지하에 계신 아버지의 영혼도 무척 놀랍게 여기고 기뻐하실 것"이라며 감격했다.

김씨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라곤 5살 때 봤던 덥수룩한 수염의 모습뿐이라고 했다.

시인 김영랑, 94년 만에 고교 졸업장
시인 김영랑, 94년 만에 고교 졸업장

시인 김영랑, 94년 만에 고교 졸업장
(서울=연합뉴스) 유용석 기자 = 한국 현대시의 거성 영랑 김윤식(1903~1950) 선생이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휘문고등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학교법인 휘문의숙으로부터 94년 만에 졸업장을 추서 받았다. 사진은 이날 졸업식에서 선생의 막내딸 김애란 씨(오른쪽)가 전수한 명예졸업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2013.2.6
yalbr@yna.co.kr

그는 "1949년 아버지가 중앙청 공보처 출판국장으로 일하실 때 늘 퇴근길에 약주를 하시고 들어와 날 무릎에 앉혔다"며 "까칠한 수염으로 얼마나 볼을 비비시던지 따가운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회상에 젖었다.

고모와 함께 조부 모교를 찾은 장손녀 김혜경(55·성악가)씨도 "당시 고등학생 신분으로 독립운동에 나선 조부께서 이제야 졸업장을 받게 돼 가슴이 뭉클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할아버지께서는 문학 외에 국악 등 다른 예술분야에도 다재다능하셨다. 그 유전자를 이어받아 나도, 피아니스트인 내 딸도 음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졸업식에 참석한 강진군청 관계자는 "명예졸업장 추서를 형식적인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선생의 애국사상과 문학사적 위상을 국민에게 다시 한번 환기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졸업식이 끝나자 김애란씨는 "집이 대치동이라 걸어가면 된다"며 총총걸음으로 교정을 빠져 나갔다.

걸어서 5분이면 닿을 거리. 하지만 김애란씨의 모습에서는 아버지가 졸업장을 받기까지 93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goriou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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