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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얼패드 '절반의 성공'…출시 첫날 감격 못잊어"

공동창업자 김도연씨, 美실리콘밸리에 남아 벤처기업 일궈
다이얼패드 창업자 김도연
다이얼패드 창업자 김도연(새너제이<미국 캘리포니아주>=연합뉴스) 임상수 특파원 =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다이얼패드를 공동창업했던 김도연씨가 3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시 북동부에 위치한 다이얼패드 첫 사무실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2013.2.4
nadoo1@yna.co.kr

(새너제이<미국 캘리포니아주>=연합뉴스) 임상수 특파원 = "다이얼패드는 실패가 아닌 절반의 성공입니다"

세계를 장악할 수 있었으나 안타깝게 '실패'한 벤처신화를 얘기할 때마다 소셜네트워크의 원조격인 인터넷 커뮤니티 싸이월드와 함께 거론되는 인터넷전화서비스 다이얼패드.

하지만 1999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다이얼패드를 안현덕(48)·조원규(47) 씨와 함께 창업했던 김도연(44) 씨는 3일(현지시간) 연합뉴스 특파원과 만나 이같이 강조했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다이얼패드 출신 기술진들이 이후 구글의 '구글 보이스'와 애플의 '페이스타임', 야후의 메신저 등을 개발하는데 주축이 되는 등 관련 분야의 발판이 됐다는 것이다.

또 다이얼패드와 직·간접적으로 거쳐 간 한국계 인재들이 현재 실리콘밸리 한인 커뮤니티의 주축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어 무조건 실패라고 단정짓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리콘밸리 내 중견 벤처캐피털(VC) 트랜스링크를 이끄는 음재훈 대표, SKT벤처스 파트너를 거쳐 현재 자신의 벤처캐피털을 구상 중인 패트릭 정 등이 그들이라고 김 씨는 소개했다.

다이얼패드 신화는 안 씨가 1997년 새롬기술의 미국 지사장으로 오면서 서울대 84학번 동기인 조 씨와 당시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경영학석사(MBA) 공부를 하고 있던 조 씨의 매제 김씨를 불러 들여 시작됐다.

엔지니어 4명과 함께 지사를 꾸려가던 이들은 그러나 1997년말 외환위기 때문에 새롬기술의 지원이 거의 끊긴 상태에서 1년간 고생을 하다 독자 회사 다이얼패드를 차리게 됐다.

김 씨는 "한국의 새롬기술 등과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다이얼패드는 미국에서 독자적으로 시작한 회사"라며 "따라서 미국 내 다이얼패드만 따로 떼어내 성공과 실패를 조망해 볼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는 1998년 말 크리스마스 휴가 때 인터넷광고 단가가 올라가고 전화비는 내려가는 것을 본 뒤 광고를 보여주는 대신 공짜 전화를 제공하는 수익모델을 구상했다.

다이얼패드 창업자 김도연
다이얼패드 창업자 김도연(새너제이<미국 캘리포니아주>=연합뉴스) 임상수 특파원 = 1999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안현덕, 조원규씨와 함께 다이얼패드를 창업했던 김도연씨가 3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다이얼패드는 실패가 아닌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하고 있다. 2013.2.4
nadoo1@yna.co.kr

김 씨는 "수익모델이 떠오르자 사흘 잠을 설친 뒤 새해 이튿날 두 형(조씨와 안씨)을 만나 창업을 제안했다"며 "처음엔 회의적이었지만 며칠을 쫓아다니며 졸라 끝내 허락을 받아냈다"고 회상했다.

이들은 1999년3월 한국계 투자회사의 자금과 사무실을 투자받아 실리콘밸리 동북부 포천 드라이브 거리에 있는 한 건물에서 다이얼패드를 창업하고 그해 10월13일 제품을 출시했다.

안 씨와 조 씨가 최고경영책임자(CEO)와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고 김 씨는 마케팅을 담당했다.

김 씨는 "당시 이미 인터넷전화 기술이 있었으나 관련 파일을 PC로 내려받기를 해야만 했지만 다이얼패드는 웹사이트에서 곧바로 전화를 걸 수 있고, 무료이어서 처음부터 호응이 엄청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래 출시는 자정에 할 계획이었지만 준비과정이 늦어져 새벽 4시에나 가능했다"면서 "사이트가 열리자 이미 입소문이 퍼져 있어 고객들이 밀물 듯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새벽 5시에 퇴근했는데 그때의 감흥, 감격을 잊을 수 없다"며 감회에 젖었다.

고객이 최고 1천400만명까지 불어나고 투자자금이 6천만달러나 들어오고 직원 수도 170명으로 늘어나는 등 미국에서 급성장을 거듭했고, 한국에서도 다이얼패드에 투자한 새롬기술이 액면가의 640배까지 치솟았다.

그들은 미국 내 거의 모든 언론에 소개되는 등 실리콘밸리의 명사가 됐다.

하지만 빠르게 비상한 만큼 추락도 가팔랐다.

창업 2년10개월만에 법정관리 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실패 이유는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경험 미숙과 그에 따른 자만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그는 지적했다.

김 씨는 "그때 우리는 20대 후반, 30대 초반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아이비리그 출신, 미국 대기업 출신 등 화려한 경력만 보고 직원들을 채용했다"며 "하지만 그들은 돈을 버는 것과 자신들의 경력만 챙겼고 조달된 자금으로 사업확장에만 열을 올렸을 뿐 진정한 비전이나 열정이 없었을 뿐 아니라 벤처의 핵심인 기술 개발도 제대로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경력만 보고 뽑은 미국인 최고재무책임자(CFO)도 자금 사정이 어려워지고 있는데도 수수방관했을 정도였다.

다이얼패드 창업자 김도연
다이얼패드 창업자 김도연(새너제이<미국 캘리포니아주>=연합뉴스) 임상수 특파원 = 1999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안현덕, 조원규씨와 함께 다이얼패드를 창업했던 김도연씨가 3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다이얼패드는 실패가 아닌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하고 있다. 2013.2.4
nadoo1@yna.co.kr

김 씨는 "자금이 거의 바닥날 때까지 우리 창업자들은 솔직히 몰랐다"며 "그런 가운데 닷컴버블이 터지고 9·11테러까지 터지면서 더는 자금조달을 할 수 없어 결국 파산하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일각에서 통화품질을 실패 원인으로 꼽은 데 대해서는 "원래 무료 서비스였기 때문에 품질은 문제가 아니었다"며 "하지만 닷컴버블이 터지면서 인터넷 광고단가가 비용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해 자금난의 원인이 됐던 것은 맞다"고 말했다.

그는 "문을 닫기로 결정하고 마지막 날 짐을 싸는데 눈물이 났다"고 회고했다.

김 씨는 이어 조 씨와 2002년 실리콘밸리에서 온라인 평판서비스 오피니티를 창업한 뒤 2007년 매각할 때까지 공동운영했으며 안 씨는 한국에 돌아가 시스템 통합(SI)업체를 인수해 현재 운영하고 있다.

조 씨는 2007년 구글에 입사해 현재 구글코리아 R&D 총괄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이들은 이처럼 한국과 미국에서 각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지금도 기회만 되면 만나는 등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실리콘밸리에 홀로 남은 김 씨는 2007년 인터넷 블로그의 인기 기사와 칼럼을 모아 스팟플렉스를 창업했으나 2008년 금융위기 탓에 다시 접어야만 했다.

그는 이후 미국에 진출하는 한국 중소기업들의 컨설팅을 하다가 2011년 글로벌 온라인 게임업체 그라비티의 CEO를 역임한 강윤석(47) 씨와 함께 소셜게임업체 '팬갈로어'를 다시 창업했다.

김 씨는 지난해 말 첫 작품 '나이틀리 어드벤처 (Knightly Adventure)'를 출시하는 등 여전히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여러 차례 창업을 하면서 한국에서 먼저 시작한 비즈니스모델들이 미국에서 정착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다"며 "한국모델을 미국에서 성공시키고 싶어 적은 나이가 아니지만 다시 창업전선에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특히 "다이얼패드를 출시한 그날 새벽 느꼈던 짜릿한 감격을 잊지 못해 아직도 창업 일선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며 활짝 웃었다.

nadoo1@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3/02/04 06: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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