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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열전> "황장엽을 한국으로" 한중협상 `막전막후'

송고시간2012-12-03 07:01

北 `시신이라도 데려와라' 강한 반발정종욱 전 주중대사 회고..탕자쉬안 中부부장 15번 만나

지난 1997년 7월 황장엽 북한 노동당 전 국제담당 비서(왼쪽)와 김덕홍 조선무역여광총회사 전 총사장이 안기부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망명 동기 등을 설명하고 있다. (자료사진)

지난 1997년 7월 황장엽 북한 노동당 전 국제담당 비서(왼쪽)와 김덕홍 조선무역여광총회사 전 총사장이 안기부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망명 동기 등을 설명하고 있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홍제성 기자 = 지금부터 15년 전인 1997년 2월 12일 오전.

정종욱 당시 주중 대사가 근무하던 베이징(北京)의 주중한국대사관 대사실에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남상욱 주베이징 총영사로부터 걸려온 전화는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우리 영사관에 들어와 망명 신청을 했다"는 놀라운 내용이었다.

그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면서 곧바로 차량으로 10여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총영사관으로 달려갔다.

황씨는 처음 만난 그에게 주머니에서 독약을 꺼내 보이면서 "이게 비상입니다. 내가 망명에 실패하면 죽습니다. 망명에 실패해 다시 북한에 끌려가는 경우에는 내가 독약을 먹고 죽기로 김덕홍씨와 같이 결심을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정 전 대사는 황씨를 만난 뒤 외교통상부 본부에 보고하고 곧바로 중국 외교부에 통보했다.

중국 외교부에는 2가지를 요구했다.

필요한 협력을 할 테니 황씨를 중국 정부가 직접 만나 본인의 자유의사에 따라 망명을 한 것인지 납치를 당한 것인지 직접 확인할 것과, 그가 망명할 때까지 대사관과 총영사관을 치외법권지역으로서 보호해 달라는 것이었다.

2월 12일 하루는 긴박하게 돌아갔다.

오전 10시30분께 황씨가 들어온 뒤 오후가 되자 주중 북한대사관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우리 대사관과 총영사관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보지 못했던 북한사람으로밖에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주변에 몰려들었다. 조금 지나자 북한에서 온 특수 요원들이 대사관, 총영사관을 에워싸 버렸다.

중국은 정 전 대사의 2번째 요구에 대해서는 무장경찰 1천200여명을 즉각 투입, 한국 공관에 대한 경비를 신속히 강화했다.

총영사관은 당시 3중의 바리케이드가 쳐진 상황이었다.

바로 앞에는 중국 무장경찰들이 장갑차로 24시간 경비를 서고 다음으로 북한 특수요원, 맨 끝에는 각국 언론사 사진기자들이 특종 경쟁을 펼쳤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경비강화 요구를 신속히 들어준 것과 대조적으로 첫 번째 요구인 본인 의사확인 절차는 상당히 미온적이고 유보적 태도로 미적거렸다.

처음 며칠 동안은 중국 측이 계속 미루는 통에 중국 측과의 외교 교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황씨가 우리 총영사관에 들어온 직후 북한 측에서 시체라도 좋으니 무조건 데리고 오라는 강한 지시를 내렸다는 사실도 나중에 알게 됐다.

북한과 중국 역시 이 사건을 놓고 긴박하게 움직였다.

북한은 평양에서, 중국은 베이징에서 각각 황씨의 망명이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자체조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중국뿐 아니라 북한 역시 `납치는 아니다', `제발로 걸어 한국 공관에 들어갔다'는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렀다고 정 전 대사는 전했다.

이렇게 중국 정부가 자체적으로 결론을 내리는데 소요된 약 일주일간 한중간 협상에는 거의 진전이 없었다.

그러다가 중국 외교부로부터 협상을 하자는 연락이 왔다.

우리 정부는 나중에 주중대사를 지낸 김하중 당시 외교부 장관 특보를 중국에 보내 정 전 대사의 협상을 지원했다.

당시 정 전 대사의 협상 `카운터파트'는 나중에 외교부장과 국무위원까지 지낸 탕자쉬안(唐家璇) 외교부 부부장(차관)이었다.

정 전 대사는 이 건으로만 황씨가 베이징에 머문 34일간 탕 부부장과 15번을 만났다.

그런데 약속을 잡고 중국 외교부를 갈 때마다 이상한 장면이 연출됐다. 탕 부부장은 꼭 주중 북한대사를 먼저 만난 뒤에야 자신을 만났기 때문이다. 정 전 대사를 부를 때 중국 측은 북한대사를 꼭 30~40분 정도 먼저 만났다.

중국과의 협상 곳곳에는 걸림돌이 도사리고 있었다.

중국은 우리 정부의 첫 번째 요구였던 황씨와의 자체 면담을 보름 가까이 미루기만 했다. 그러던 중 중국 정부가 황씨 면담 의사를 밝혀 왔다.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던 중국이 이런 입장을 밝혀 오자 정 전 대사는 그제야 `망명이 성공하겠구나'란 확신을 갖게 됐다.

황씨를 직접 만나면 자발적 망명이란 사실이 밝혀질 것을 알고 있는 중국 정부가 황씨를 만나겠다는 것은 망명 허용을 전제로 한 행동이라고 판단했다.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정종욱 전 주중대사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정종욱 전 주중대사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정종욱 전 주중대사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골든타워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는 정종욱 전 주중대사. 2012.12.3
saba@yna.co.kr

협상의 더 큰 걸림돌은 북한 측 태도였다. 중국 측도 북한의 태도를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처음에는 `시체라도 갖고 오라'며 강한 입장이었지만 나중에는 북한으로 데려오는 것은 포기하면서도 한국행은 `절대 불가'라며 중국 측을 압박했다고 한다.

중국 역시 북한이 워낙 반대하는 상황을 무시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중국은 "황씨가 바로 한국으로 가면 남북간에 무슨 일이 날지 모를 정도로 북한이 매우 흥분해 있으므로 바로 데려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 과정에서 "바로 가면 북한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얘기까지 들었다"고 정 전 대사는 회고했다.

중국 측으로부터 `중국 내 어디 외딴곳에 보내서 오래 남겨둔 뒤 남북한이 모두 관심이 줄어든 뒤에 조용히 처리하자'는 제안도 들어왔다.

실제로 과거 중국의 유명한 반체제 인사가 망명을 신청해 미국대사관에서 1년 가까이 체류했던 전례도 있었다.

중국 정부는 `1년 정도 한국 총영사관에 체류하게 하자', `멀리 보내 나중에 처리하자'는 등의 각종 방안을 제시했지만 우리 정부는 `황씨 본인이 한국행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으로 꼭 가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중국은 다음 단계의 원칙이 결정되지 않으면 똑같은 얘기를 반복할 뿐 절대로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중 양국은 협상을 계속함으로써 절충점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일단 황씨를 중국에서 떠나게 하지만 대신 한국으로 바로 가지는 못한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를 위해서는 제3국에서 일정기간 체류할 필요가 있었다. 제3국으로 여러 국가가 거론됐다.

제3국의 기본조건은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한국과도 관계가 나쁘지 않은 국가여야 했다. 이런 조건을 두루 고려해 필리핀이 선택됐다.

필리핀으로 결정된 뒤 한중 양국은 체류 기간을 놓고도 견해차를 보였다.

중국 정부는 길수록, 우리 정부는 짧을수록 좋다는 입장이었다. 우리 정부로서는 황씨가 75세의 고령이어서 건강이 안 좋았기 때문에 제3국 체류 시간을 줄일 필요성이 컸다.

중국은 제3국을 거친 망명을 허용한 뒤에도 새로운 조건을 들고 나왔다. 황씨가 한국으로 간 뒤 정치적으로 황씨를 활용하지 않는다는 우리 정부의 보장을 요구했다.

정 전 대사는 "대통령 차원에서 이 같은 정부의 의사를 표명해 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황씨가 총영사관에 머문 34일간 공관 직원들이 24시간 불침번을 서고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 등 어려움도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정 전 대사는 "총영사관에 누군가 침입해 황씨를 끌어내기라도 할까 싶어 직원들이 조를 짜서 불침번을 섰다"면서 "밤늦게 근무하다가 숙소로 돌아가던 직원들이 북한 차량으로 추정되는 차로부터 미행을 당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좁고 폐쇄적인 총영사관 창고 방에서 황씨의 건강에 혹시 이상이라도 생길까 대사관저에서 음식을 만들어 나르는 등 각별한 신경을 썼다.

황씨는 이 같은 열악한 시설에도 늘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단정한 차림을 유지했다.

교수 출신으로 공직에 들어온 정 전 대사는 김일성대 총장을 지낸 학자 출신의 황 전 비서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황씨는 북한에 두고온 가족들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도 망명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털어놓았다.

그는 황씨가 떠나기 하루 전날 밤 총영사관을 찾아갔다.

정 대사는 "내일 아침에 떠나게 됐습니다. 3국에 가서 좀 있다가 한국에 가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황씨는 한국에 가게 됐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도 기뻐했다.

정 대사는 주머니에 있던 만년필을 꺼내 황씨에게 선물하면서 "한국 가서 글을 쓰신다고 했으니까 이걸로 글 많이 쓰시길 바란다"고 인사를 건넸다. 그 역시 한 달 이상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한 황씨와 정이 많이 들었는지 섭섭한 마음도 많이 들었다

황씨는 정 대사의 손을 부여잡고 "대사 선생 고맙습니다. 한국 오면 꼭 한번 만납시다"라고 했다.

다음날 새벽 황씨는 중국 경찰의 `007'을 방불케 하는 작전을 통해 총영사관을 무사히 빠져나온 뒤 베이징 인근 특수시설을 거쳐 중국 국적 비행기를 타고 필리핀으로 이동했다.

그는 필리핀 마닐라 인근의 클라크 공군기지 인근에서 한 달간 필리핀 정부의 보호를 받으며 체류하다가 결국 한국행에 성공했다.

◇정종욱 전 주중 대사 =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 대학원에서 중국 문제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오랫동안 교수생활을 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 외교안보수석비서관으로서 공직에 입문, 1995년 외무부 본부대사를 거쳐 1996~1998년 주중 대사를 지냈다. 특히 1997년 민감한 황장엽씨 망명 사건의 협상을 매끄럽게 처리하는 등 주중대사로서 한중관계 발전에 기여했다.

공직을 떠난 뒤에는 아주대와 서울대 국제대학원, 동아대 국제학부, 미국 하버드대 등에서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경남 거창(73) ▲서울대 외교학과 ▲서울대 외교학과 및 미국 하와이대 대학원 ▲미국 예일대 정치학박사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장 ▲대통령 외교안보수석비서관 ▲외무부 본부대사▲주중 대사 ▲아주대 사회과학부 교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동아대 국제학부 석좌교수 ▲미국 하버드대 김구초빙교수

j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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