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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1920년대 日 관리에 '조선어 배우라' 장려

총독부가 학습권장 총괄…시험성적 따라 수당 차등지급 오새내 박사 "식민지 일상지배 강화 수단으로 활용"

일제, 1920년대 日 관리에 '조선어 배우라' 장려
총독부가 학습권장 총괄…시험성적 따라 수당 차등지급
오새내 박사 "식민지 일상지배 강화 수단으로 활용"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일제 강점기 식민지배의 선봉에 섰던 경찰과 교원 등 일본 관리들이 공식적으로 조선어 능력을 요구받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는 그간 일본 관리들이 '조선인을 이해하려 혹은 개인의 필요에 의해' 개별적으로 조선어를 배웠다고 알려진 것과는 배치되는 것으로, 일제가 조선어 습득을 통해 우리 국민의 일상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해석된다.

국어학자인 오새내 박사(강남대 강사)는 최근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주최로 열린 정례발표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1920년대 일본인 대상 조선어 회화서에 나타나는 서울 지역어의 사회언어학적 특징'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15일 오 박사에 따르면 조선총독부는 1920년대에 일본인 경찰과 공무원, 교원 등에게 정책적으로 조선어를 요구했다. 조선에 온 일본 관료를 대상으로 조선어장려시험이 치러지고 조선어 능력에 따른 실질적 수당이 지급된 시기였다.

총독부는 1918년 피지배자인 조선인과 의사소통을 위해 '조선어 시험 규칙'에 대한 훈령을 공표했고, 1920년대엔 조선어 학습능력에 따라 관리의 승진, 수당에 차이를 두는 제도로 확대했다.

관리들은 시험 성적에 따라 5∼50엔의 수당을 받았다. 시험 불합격자는 상여금이 최대 4분의 1수준이 깎였다. 일본 관리들은 조선어 공부에 매달려야 했다.

이에 따라 이전과는 다른 성격의 조선어 교재가 등장했다.

청일전쟁(1894∼1895) 이전 조선어 교재는 무역·외교용, 청일전쟁과 러일전쟁(1904∼1905) 시기에는 일본군이 사용할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1920년대에는 조선의 풍습과 일상생활이 소재가 됐다.

교재는 학습 목적에 맞춰 구성됐다. 통치의 거점이 됐던 서울의 입말을 생생히 옮겼고 골목길에서 행상이 외치는 소리, 서울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욕설, 주말 행락 풍속 등을 소개했다. '기생집', '요정' 등도 자세히 다뤘다.

당시는 일본 관리가 조선인의 일상에 깊이 개입하던 시기였다. 일제 경찰은 출생신고, 청소지도, 어업 단속, 음식물 위생 단속 등 개인의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는 모든 것을 관리했다.

활황을 이뤘던 일본인 대상 조선어 교육은 '민족말살' 통치기였던 1930년대로 넘어가면서 쇠퇴했고, 수당 지급의 범위도 대폭 줄어들었다.

오 박사는 "지금 시각으로 보자면 공무원 시험 가산점제와 같다"며 "총독부가 지배의 효율성을 위해 조선어 학습을 제도적으로 장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 입장에서는 조선어 '장려정책'이지만, 식민 통치의 수단이었다는 점에서 사실상 '말살정책'"이라며 "이 시기 일본인 대상 조선어 교육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nomad@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2/10/15 04:3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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