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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帝 '감옥섬' 하시마 강제동원 실태보고서 공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委 "최다 800명 동원 추산"생존자 "탈출 위해 신체 절단까지 생각" 증언日,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하며 관련사실 언급없어
<그래픽> 일제 강점기 '감옥섬' 하시마섬
<그래픽> 일제 강점기 '감옥섬' 하시마섬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일제 강점기 혹독한 자연환경과 노동조건으로 악명이 높아 '감옥섬'으로 불린 하시마(端島) 탄광의 조선인 강제동원 실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정부 보고서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는 지난 5월부터 최근까지 하시마 탄광의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 실태의 기초조사 보고서 작성을 최근 완료했다고 4일 밝혔다.

일본 나가사키(長崎) 항에서 18㎞ 떨어진 하시마는 남북 480m, 동서 160m, 면적 6.3㏊(헥타르)에 불과한 작은 섬으로, 19세기 후반 탄광 개발이 본격 시작됐다.

이 탄광에 강제동원됐다가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조선인은 122명이다.

위원회는 과거 일본에서 작성된 사망자 화장 인허가 신고 기록, 자체 진행한 생존자 면접 조사 등을 토대로 당시 하시마의 실상을 재구성했다.

생존자들의 증언을 보면, 해저탄광인 하시마 탄광은 깊게는 지하 1천m 이상에 달해 채탄 작업을 하다 보면 바닷물이 갱내로 비처럼 쏟아졌다. 염분이 강한 바닷물을 맞은 작업자들의 피부는 짓무르고 심한 염증이 생겼다.

탄광 안에는 메탄 등 가스가 다량 응축돼 있어 가스가 암벽을 뚫고 순간적으로 분출하는 '가스돌출' 현상이 일어나기 쉬웠다. 이 때문에 일본인들은 가스돌출 위험이 있는 구역을 꺼렸고, 이런 곳에는 조선인과 중국인이 투입됐다.

일제 강점기 '감옥섬'으로 불린 하시마섬
일제 강점기 '감옥섬'으로 불린 하시마섬(서울=연합뉴스) 일제 강점기 혹독한 자연환경과 노동조건으로 악명이 높아 '감옥섬'으로 불린 하시마(端島) 탄광의 조선인 강제동원 실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정부 보고서가 4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일본 정부와 자치단체는 하시마 탄광을 포함한 자국의 근대 산업시설을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는 것을 목표로 관련 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강제동원 관련 사실은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2012.10.4 << 사회부 기사 참고. 위원회 제공 >>
pulse@yna.co.kr

작업 중 갱 천장이 무너지거나 암석이 떨어지는 사고도 비일비재했다. 현장이 깊은 해저여서 갱내 온도는 매우 높았다. 한 생존자는 "굴 안은 바로 서지조차 못할 정도로 좁고 온도가 45도를 넘었다"고 진술했다.

당시 하시마에는 아파트와 같은 고층 건물이 지어졌는데, 조선인은 해안에 있는 건물 아래층 '함바'(노무자 숙소)에서 생활했다. 하시마 주변은 파도가 매우 높고 거칠어 바닷물이 숙소 안으로 쏟아지기 일쑤였다.

'감옥섬'이라는 별칭답게 하시마는 외부와 철저히 격리됐다. 일부 노무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탈출을 시도했으나 이내 붙잡혀 심한 고문을 당했다. 일부 생존자는 "너무 힘들어 섬을 나가려고 신체 절단까지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하시마에 동원된 조선인 다수는 1945년 8월 인근 나가사키시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자 시내 복구작업에 투입됐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잔류 방사능에 노출됐다.

일본 정부와 자치단체는 하시마 탄광을 포함한 자국의 근대 산업시설을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는 것을 목표로 관련 사업을 추진 중이다.

위원회 윤지현 조사관은 "조사 결과 하시마에서 조선인이 사망한 1차 원인은 강제동원이며 2차 원인은 열악한 노동환경이었음이 확인됐다"면서 "일본 정부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이런 사실을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시마는 1890년부터 대표적 전범기업인 미쓰비시가 탄광 개발을 위해 소유했다. 이후 석탄 채굴이 사양산업화하자 미쓰비시는 1974년 탄광을 폐쇄하고 2001년 관할 자치단체에 하시마 전체를 양도했다.

위원회는 각종 기록과 생존자 구술 등으로 미뤄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4~1945년 하시마에 많게는 800명에 이르는 조선인이 동원된 것으로 추산했다. 위원회가 피해자로 공식 확인한 인원은 134명이다.

윤 조사관은 "미쓰비시가 이 일대 탄광을 폐쇄하면서 사망자 납골시설을 파괴하고 유골을 무작위로 처리해 유족 확인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에 반드시 책임을 묻고 유골 봉환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puls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2/10/04 04:3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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