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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美연방판사 존 리 "한국은 내 존재 근원"

송고시간2012-07-20 08:44

"공정함, 겸손함이 지키고 싶은 가치"

존 리 판사가 시카고 연방법원의 전용 법정 앞에 섰다. 이 곳은 리 판사가 자진 은퇴를 선언하기 전까지 재판을 주재하게 될 '리 판사 전용 법정'이다. 2012.7.20 chicagorho@yna.co.kr

존 리 판사가 시카고 연방법원의 전용 법정 앞에 섰다. 이 곳은 리 판사가 자진 은퇴를 선언하기 전까지 재판을 주재하게 될 '리 판사 전용 법정'이다. 2012.7.20 chicagorho@yna.co.kr

(시카고=연합뉴스) 김현 통신원 = "한국에서의 유년시절은 내 정체성을 형성시키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매우 소중한 시간입니다. 항상 감사한 마음, 그리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미주 한인 역사상 세 번째이자 한인 1.5세로서는 처음으로 미 연방 종신 판사에 오른 존 리(44·한국명 이지훈)씨는 19일(현지시간) 시카고 도심에 소재한 북일리노이 연방법원(시카고 연방법원) 집무실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생후 3개월 무렵부터 만 4세까지 한국의 외할머니 손에서 자란 시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난 13일 취임식 후 일주일이 채 안된 시점이어서 집무실은 아직 정리가 덜 끝난 상태였지만 리 판사는 매우 안정감 있는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취임 후 첫 주말을 어떻게 보냈느냐고 묻자 "교회 수련회에 가는 딸 케이틀린(14)을 인디애나 주까지 운전해 데려다주고 시카고 컵스 야구 경기를 관전하면서 짧은 휴식을 누렸다"고 답했다.

리 판사는 8학년(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 가족끼리 교회를 통해 알고 지내다 로스쿨 졸업 후 다시 만나 결혼한 아내 준 리(41· 한국명 이윤정·마취과 의사)씨와의 사이에 딸과 아들(10·노아)을 두었다.

마침 19일은 리 판사가 연방판사 취임 후 처음으로 미국 시민권 선서를 주재한 날이었다. 이에 대해 리 판사는 "수많은 생각이 교차했다"며 남다른 감회를 표현했다.

그는 "28년 전인 1984년 이 법원 건물 25층의 같은 법정에서 시민권 선서를 했다. 이민자였던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된 것을 영광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이민자의 좋은 역할 모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리 판사와의 일문일답.

-- 연방법원 판사로서 처음 한 일은.

▲ 지난 달 4일부터 시카고 연방법원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선임 판사들로부터 323건의 사건을 넘겨받았다. 첫 2주동안 담당 법률가들을 만나 각 사건에 대한 설명을 듣고 향후 추진 방안을 논의했다.

-- 대형 로펌 변호사에서 연방 판사로 변신했다. 가장 큰 차이점은.

▲ 로펌 변호사는 의뢰인의 대변자다. 의뢰인이 소송에서 이기도록 돕는 것이 최종 목표다. 그러나 판사는 법에 근거해 올바른 것(right thing), 공정한 것(fair)을 추구해야 한다. 변호사와 검사가 스포츠 경기의 선수라면 판사는 심판인 셈이다.

-- 판사로서 꼭 지켜가고 싶은 가치가 있다면.

▲ 공정함(fair)과 겸손함(humble)이다. 열심히 일하는 판사,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우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고 듣는 판사가 되고 싶다.

존 리 판사가 시카고 연방법원 집무실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이야기 하고 있다. 2012.7.20 chicagorho@yna.co.kr

존 리 판사가 시카고 연방법원 집무실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이야기 하고 있다. 2012.7.20 chicagorho@yna.co.kr

-- 딕 더빈 연방상원의원(일리노이·민주당 원내총무)의 추천으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지명을 받았다. 반독점, 통상규제, 지적재산권 관련 소송 전문 변호사를 연방 판사로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 그들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아 모르겠다.(웃음) 나는 추천과 지명, 인준 소식을 들으며 그저 감사하고 행복했다. 그동안 연방법원 소송 건을 많이 맡아왔다. 내 기록과 성장 배경, 평판 등을 보고 결정한 것 같다.

-- 오바마 대통령과 2년간 하버드대학 로스쿨을 함께 다녔는데 당시 개인적 친분이 있었나.

▲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하버드 로스쿨의 법률 학술지 '하버드 로 리뷰(Harvard Law Review)'의 편집장이었다. 교내 활동을 하면서 7-8차례 만난 적은 있지만 개인적인 친분은 없었다.

-- 만 4세 때까지 한국에서 외할머니 손에 자랐다.

▲ 저녁을 먹고 골목길에 나가 놀던 기억,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사먹던 기억, 외할머니와 함께 교회에 가던 기억들이 남아있다. 어떤 학자는 생후 3-4년이 인성과 정서, 인지발달에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말한다. 나는 그 시기를 한국에서 보낸 셈이다. 외할머니는 내가 아홉살 때 미국으로 오셔서 같이 사시다가 지난 해 돌아가셨다. 많이 그립다.

--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나.

▲ 대학시절에 방학을 이용해 연세어학당에서 한글을 배웠다. 이후 지난 해 가족들과 함께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미국에서 살다보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내가 남과 다르게 생겼다는 느낌을 항상 갖고 살게 된다. 하지만 한국에 가니 모두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어서 참 편안했다. 내 아이들도 마찬가지 기분을 경험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마치 옛집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남산, 남대문 시장에도 가보고 여러 곳을 여행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한국의 미래 세대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

▲ 내 아이들에게 "꿈을 성취하기 위한 의지를 가지라"고 강조한다. 똑똑하든 아니든 부자이건 가난하건 자신만의 꿈을 계속 좇다보면 그 꿈은 이루어진다. 덧붙여 두 가지를 조언하고 싶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Work hard)'과 '구체적인 조언과 격려를 줄 수 있는 멘토(mentor)를 찾는 것'이다.

-- 이민 가정에서 자라면서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 내가 의지할 곳은 부모님 뿐이었지만 부모님 조차 이 곳 생활이 처음이셨다. 무엇을 해야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이 곳에서 앞서 살아본 일가친척이 있는 사람들과는 또다른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이민 1.5세들과 2세들에게 부모와 주변 인물들이 갖고 있는 한계를 넘어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멘토를 반드시 찾으라고 당부하고 싶다.

-- 이민자 미래 세대의 좋은 역할 모델이 되고 싶다고 말했는데.

▲ 내가 어릴 적 이민자들은 자녀를 의사로 길러내는 것이 가장 큰 꿈이었다. 법조계 진출은 흔치 않았다. 역할 모델의 부재탓도 있을 것이고 언어 문제도 컸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로펌이나 연방법원에서 아시아계 법조인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러나 이제는 더 많은 이민 2세들이 법조인에 도전하기를 기대한다. 시카고 연방법원에는 지난 2010년 임기제 판사(Magistrate Judge)에 임명된 한국계 영 김(46·한국명 김영배) 판사와 대만계 에드먼드 챙(41) 판사가 있는데 셋이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함께 힘을 모아 아시아계 미래 세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 새로운 소망이나 목표가 있다면.

▲ 지금으로서는 좋은 연방판사가 되고 싶은 마음 뿐이다.

chicagor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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