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배너

[실시간뉴스]

최종업데이트YYYY-mm-dd hh:mm:ss
검색

<문성근 패배..미완으로 끝난 정치실험>

<문성근 패배..미완으로 끝난 정치실험> - 1

(서울=연합뉴스) 최이락 기자 = 민주통합당 문성근 최고위원이 11일 부산 북ㆍ강서을에서 새누리당 김도읍 후보의 벽을 넘지 못하고 국회 입성에 실패했다.

지난 1월 지도부 경선에 출마해 2위를 차지하면서 배우에서 정치인의 길로 성공적으로 변신했지만 '지역구도'의 벽을 깨는 데는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비록 승리를 일궈내지는 못했지만 그는 여권의 아성인 부산에 대한 도전을 통해 '정치인 문성근'으로서의 이미지를 뚜렷이 각인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배우로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상 절반가량은 야당 정치인의 삶을 살아왔다.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통일 운동가인 늦봄 고(故) 문익환 목사와 박용길 장로의 셋째 아들이라는 신분, 그리고 군사독재라는 시대적 여건이 그에게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는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 김대중 전 대통령과 문 목사의 재판에 방청객으로 들어가 공판 내용이 외국에 보도되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본인이 공판에 들어가 심문 내용을 외워 노트에 베낀 뒤 이를 외신에 전했던 것이다.

그가 정치권과 가장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된 것은 2002년 대선 때였다. 그는 일찍 노무현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배우 명계남씨와 함께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를 조직했다.

그러나 그는 참여정부 출범 이후에는 현실 정치와 거리를 뒀다. 그러다가 2010년 8월에 다시 정치 무대로 나섰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민주주의 후퇴를 두고 볼 수 없다"는 상황인식에서 야권통합 운동에 나선 것이다.

당시 그는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을 만들었다. 그는 전국을 다니며 야권 통합정당 출범시 당원으로 가입하겠다는 회원들을 모았다. 이는 야권 통합으로 이어졌고, 그가 당대표 경선에서 2위를 하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문 최고위원이 비록 패배했지만, 당 안팎에서는 앞으로 대선 국면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그가 야권통합을 이끌어내는데 기여했듯이 대선을 앞두고 또 한차례 야권의 전열을 정비하는 역할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문 최고위원은 선거를 마친 뒤 트위터에 "우리 모두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다"며 "정말 행복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choinal@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2/04/12 00:18 송고

광고
댓글쓰기
배너
광고
AD(광고)
광고
많이 본 뉴스
많이 본 뉴스
종합
정치
산업/경제
사회
전국
스포츠
연예ㆍ문화
세계
더보기
AD(광고)
AD(광고)
광고
AD(광고)

위키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