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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피터 브룩 오페라 '마술피리'

송고시간2012-03-16 09:42

기존 작품들과는 판이한 실험적 오페라 군더더기 없는 무대·노래·반주 인상적

<공연리뷰> 피터 브룩 오페라 '마술피리'
기존 작품들과는 판이한 실험적 오페라
군더더기 없는 무대·노래·반주 인상적

<공연리뷰> 피터 브룩 오페라 '마술피리' - 2

(서울=연합뉴스) 강일중 객원기자 = 웅장함이나 화려함은 찾아볼 수 없다. 과장된 몸짓 연기도 보이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의 의상도 색에서부터 디자인까지 단순하기 그지없다. 모두가 맨발이다. 대형 오케스트라 대신 달랑 피아노 반주만 있다. 많은 것이 생략된 채 무대는 거의 발가벗겨져 있는 것 같은 느낌. "이것이 오페라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15일부터 이틀간의 공연일정으로 강남구 역삼동의 LG아트센터 무대 위에 올려진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는 매우 실험적인 작품이다. 제목부터 그렇다. 세계적인 명성의 연출가 피터 브룩이 무대화한 이 작품의 영어 제목은 부정관사로 시작되는 'A Magic Flute'. 보통 쓰는 'The Magic Flute'가 아니다. 여기에는 기존 작품들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는 암시가 깔렸다.

<공연리뷰> 피터 브룩 오페라 '마술피리' - 3

무대 위에는 오른쪽으로 피아노 한 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고 약 45개의 굵고, 가느다란 대나무 소품이 스탠드 형식으로 군데군데 무리를 지어 서 있다. 사람 키의 두 배 정도의 키로 처음에는 숲의 느낌으로 진을 치고 있던 대나무들은 배우들이 이리저리 놓인 자리를 이동시키면서 새장이 되기도 하고, 등장인물들의 진로를 가로막는 장애물, 또는 지혜의 사원 구조물이 되기도 한다.

브룩은 2010년 파리의 뷔페드노르 극장에서 이 작품을 초연한 후 한 인터뷰에서 "오페라 하면 떠오르는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 위에서 관객에게 감동을 강요하는 요소를 최대한 배제한 채 소리와 사람과 스토리에만 집중하고 싶었다"고 말했었다.

그의 의도를 반영, 이 작품은 무대·연기·연주·노래가 전반적으로 군더더기가 없고 깔끔하다. 피아노 연주자는 흡사 초등학교 교사가 교실에서 어린 학생들을 데리고 '반짝반짝 작은 별' 같은 노래 연습을 시키는 것처럼 순수한 느낌으로 극의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공연리뷰> 피터 브룩 오페라 '마술피리' - 4

원래 오페라에 등장하는 밤의 여왕의 세 시녀나 파미나 공주를 찾아가는 타미노 왕자의 숲속 여행길을 안내하는 세 동자 같은 등장인물들도 모두 생략됐다. 대신 두 명의 일인다역 배우가 구렁이가 되기도 했다가 시녀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무대 등퇴장, 의상의 변화에 의해서가 아니라 순간순간의 대사로 역할 변신을 한다.

이야기의 전개는 원래 오페라와 같다. 멀티맨 배우 외의 등장인물은 밤의 여왕(소프라노)·파미나 공주(소프라노)·타미노 왕자(테너)·파파게노(바리톤)·파파게나(소프라노)·자라스트로(베이스)·모나스타토스(테너) 등 7명. 이들이 내는 노랫소리는 맑고 깨끗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몸에서 힘을 완전히 뺀 채 목소리에는 에너지가 실렸다. '마술피리'에서 가장 잘 알려진 밤의 여왕(소프라노 라일라 벤함자) 아리아 역시 걸림과 거침이 없었다. 보통의 '마술피리'라면 밤의 여왕 아리아가 끝난 후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며 극이 잠시 중단되지만 이 작품은 그럴 여유를 주지 않았다. 가수의 기량 발휘에 대한 찬사나 격려보다는 전체 극의 흐름이 흩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던 것으로 보인다.

무대·노래·연기·반주 모두에서 느껴지는 것은 순수함과 단순성이다. 노래(독어)와 대사(불어, 한국어 자막)에서는 지혜·겸손·사랑·우정·아름다움 등의 단어가 자주 나오면서 관객들의 마음속에 있는 순수함에 대한 그리움을 끄집어내려는 듯 했다. "예전에는 모두가 겸손했지", "옛날에는 의무와 질서가 잘 지켜졌지" 하는 대사들은 지금의 어지러운 사회를 풍자하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무대를 최대한 비우고, 대나무를 오브제로 사용한 것 또는 대사의 내용에서 여백의 미가 엿보이는 등 동양적인 색채가 물씬 풍겼다.

객석 사이의 통로에서 등장인물이 노래를 부르는 등 객석을 연기의 공간으로 삼는 것이나 특정 관객을 향해 대사를 치고 반응을 이끌어내는 등 소통을 시도한 것은 일반 오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장면들로 연극적 요소가 강했다. 자신을 사랑해줄 여자를 갈구하는 파파게노 역의 바리톤 비르질 프라내가 연기 도중 앞줄에 앉은 여성 관객에게 한국말로 "뽀뽀"하며 뺨을 내미는 등 파파게노와 멀티맨 역할을 하는 두 명 배우들의 코믹한 연기가 자주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오페라가 이렇게 만들어질 수도 있구나"라는 점에서 매우 재미와 느낌이 강한 작품이었다.

<공연리뷰> 피터 브룩 오페라 '마술피리' - 5

피터 브룩은 1925년 런던 출생으로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의 연출가로서 다양한 셰익스피어 작품을 연출했을 뿐 아니라 웨스트엔드의 코미디물, 브로드웨이 뮤지컬, 오페라 등 영역을 넘나들며 다양한 실험적 작품들을 만들어온 거장이다. 1985년 아비뇽페스티벌 작품으로 옛 채석장에서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를 소재로 한 작품을 9시간 동안 공연해 큰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ringcyc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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