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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인물> 국내 2

<2011 인물> 국내 2

◇문화·예술·종교

▲소설가 박완서 = 한국문학의 '거목'인 소설가 박완서 씨가 지난 1월 22일 오전 담낭암 투병 중 세상을 떠났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40세(1970년)에 소설가로 등단한 박 작가는 평생 시대의 아픔과 서민의 애환을 그렸다. 전쟁과 분단 등 한국현대사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으며 청춘을 보낸 그는 사람과 자연에 대한 한없는 사랑을 드러냈고 때로는 자본주의를 통렬히 비판하기도 했다.

'영원한 현역'으로 불렸던 고인은 왕성한 작품활동을 이어왔다.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남자네 집' 등 장편소설과 '세 가지 소원' 등 수필집도 여러 권 출간했다.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던 박 작가가 별세하자 문학계는 물론 정치권, 종교계, 인터넷 등에서 추모 물결이 일기도 했다. 작품 판매량도 늘었고 동료 문인들은 추모 문집 '나의 박완서, 우리의 박완서'를 펴냈다.

▲하용조 목사 = 국내 대형교회 중 한 곳인 온누리교회를 개척한 하용조 목사가 8월 2일 향년 65세로 소천했다.

1946년 평남 진남포에서 태어난 하 목사는 1985년 온누리교회를 세워 교인 수 7만 5천여 명의 대형교회로 키워냈다.

작년 9월 별세한 고(故) 옥한흠 사랑의교회 원로목사 등과 함께 성경 중심의 복음주의 운동을 이끌며 교회 안팎에서 존경을 받았다.

전 세계 각국에 1천22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등 해외 선교에 앞장선 목사로 유명하다. 또 개신교 출판사 두란노서원을 설립해 건강한 기독교 문화를 전파하는 데 힘썼다.

연예인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했던 하 목사는 2006년부터 한류 스타들과 함께 일본 등에서 문화 선교 집회를 여는 등 문화를 통한 새로운 선교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방송·연예

▲강호동 = 특급 MC 강호동이 지난 9월 세금과소 납부로 국세청으로부터 수억원대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자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모든 방송활동을 중단했다.

지난 수년간 유재석과 함께 예능계를 양분한 그의 활동 중단에 지상파 TV 3사 예능국은 날벼락을 맞았다. 곧바로 MBC '무릎팍도사'가 폐지됐고 KBS '1박2일'과 SBS '강심장' '스타킹' 등이 직격탄을 맞았다.

그는 잠정은퇴 기자회견에서 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자숙의 시간 동안 자신을 돌아보겠다고 밝혔다.

씨름 천하장사를 5차례 차지한 강호동은 1993년 연예계에 데뷔했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스타성을 확인한 그는 2000년대 들어 MC 대열에 가세했고 최근 유재석과 함께 예능 최고의 MC로 자리매김했다.

철저한 준비와 사생활 보호, 이미지 관리로 흠 없는 연예인 중 한 명으로 뽑혀왔으나 '탈세' 앞에서 순식간에 무너졌다.

▲김재형 PD = '여인천하' '용의 눈물' 등으로 유명한 사극 연출의 대가 김재형 PD(한국공연예술종합학교 학장)가 지난 4월10일 향년 75세로 별세했다.

1936년 충북 음성 출신인 고인은 1961년 KBS 개국요원으로 입사한 뒤 1964년 TV 사극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국토만리'를 시작으로 '별당아씨' '사모곡' '한명회' '왕도' 등을 연출하며 40년간 248편의 드라마를 연출하며 사극의 대가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1996년부터 1998년까지 방송된 KBS '용의 눈물'과 2001년 SBS '여인천하'의 빅히트는 사극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마저 바꾸는 계기가 됐다. 그는 '용의 눈물'의 성공에 힘입어 브리태니커 개정판에 화제의 인물로 오르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마지막 작품은 SBS '왕과 나'로, 그는 췌장염으로 인한 건강 악화로 이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2008년 1월 중도 하차하면서 40년 드라마 연출 인생의 마침표를 찍었다.

▲배우 김인문 = 어눌한 말투가 트레이드 마크였던 배우 김인문이 방광암 투병 중 지난 4월25일 별세했다.

1967년 영화 '맨발의 영광'으로 데뷔한 그는 1968년 TBC 특채탤런트로 방송에 입문해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다.

'형' '나비야 청산가자' '가시나무꽃' 등의 드라마와 '물보라' '젊은 시계탑' '달마야 놀자' '재밌는 영화' '해적, 디스코왕 되다' '바람난 가족' 등의 영화에서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1990년부터 2007년까지 방송된 장수 농촌 드라마 KBS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에서 정감 넘치는 멋쟁이 아버지 '백구두 신사'를 연기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2005년 뇌경색으로 쓰러졌으나 재활에 성공해 2007년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에 출연했다. 장애 배우들을 육성하는 데 각별한 애정을 쏟아 2009년 1월 장애인방송연기자협회를 설립했다.

▲신현택 삼화네트웍스 회장 =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장이자 한국 드라마계의 '미다스의 손'인 신현택 삼화네트웍스 회장이 폐암 투병 중 지난 4월8일 별세했다.

신 회장은 '제빵왕 김탁구' '엄마가 뿔났다' '솔약국집 아들들' '인생은 아름다워' '조강지처클럽' '내 남자의 여자' '명성황후' '애정의 조건' 등 지난 30년간 숱한 드라마 히트작을 제작해낸 한국 드라마계의 산 증인이다.

1970년 신프로덕션영화제작사를 설립해 비디오 제작·유통 사업을 시작한 그는 1980년 삼화네트웍스의 전신인 삼화프로덕션을 세우며 본격적으로 드라마 제작에 뛰어들었다.

특히 '드라마계의 대모'인 김수현 작가와 친구이자 동료로 오랜 기간 작업하며 작품 대부분을 제작, 명성을 날렸다.

2006년부터는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회장을 맡아 외주제작사들의 권익 보호 등을 위해 공헌했고 대중문화예술산업총연합회 회장, 국제문화산업교류재단 이사장, 한국음반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장근석 = 올 한해 일본에서 '욘사마' 배용준의 인기 아성을 위협하는 한류스타로 떠올랐다.

'근짱'이라는 별칭과 함께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콘서트를 통해 관객 10만여 명을 모으는 파워를 과시했다.

드라마 '미남이시네요'를 통해 한류스타로 떠오른 장근석은 지난 5월 일본에서 발매한 데뷔 싱글앨범 '렛 미 크라이(Let me cry)'가 오리콘 주간차트 정상에 오르며 파란을 예고했다.

10월 나고야, 오사카, 도쿄를 도는 투어 공연을 통해 6만여 관객을 만났고 11월26일에는 도쿄돔의 4만5천석 전석이 매진된 가운데 공연을 펼쳤다.

구글 재팬의 올해 연간 검색 순위 상위권도 휩쓸었다. 한류 부문 1위, 화제의 인물 부문 5위, 남성 부문 3위에 각각 올랐다.

그는 일본에서 각종 광고를 촬영했으며, TV 쇼 프로그램에 출연해 타고난 끼를 발휘했다. 내년 1월에는 주연한 영화 '너는 펫'이 일본에서 개봉한다.

◇스포츠

▲윤석민 =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의 오른손 에이스로 올해 한국 최고의 투수가 됐다.

올 시즌 다승(17승)·평균자책점(2.45)·탈삼진(178개)·승률(0.773)에서 1위에 올랐다. 트리플크라운(다승·평균자책점·탈삼진)을 포함한 투수 4관왕이 나온 것은 1991년 선동열(현 KIA 감독) 이후 정확히 20년 만이다.

2005년 프로 무대에 데뷔한 뒤 간결한 투구 동작으로 시속 150㎞를 넘나드는 직구와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해 가장 주목받는 오른손 투수로 꼽혔다.

그러나 실력에 비해 운은 따르지 않았다. 2007년에는 평균자책점 3.78로 잘 던지고도 승운이 따르지 않아 시즌 최다패(18패)의 불명예를 안았다.

하지만 올 시즌에 라이벌인 류현진(한화)·김광현(SK) 등을 따돌리고 최우수선수(MVP)와 골든글러브를 석권했다.

▲이동국 = '노장 공격수'라는 우려를 털어내고 프로축구 K리그를 빛낸 최고의 스타로 떴다.

올해 정규리그에서 16골을 터뜨려 득점 2위에 올랐고, 도움 15개로 K리그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이번 시즌 경기당 평균 공격포인트는 리그에서 가장 높은 1.07이다. 경기당 1골씩 엮어내는 활약상을 펼친 것. 소속팀 전북을 챔피언 자리로 이끌면서 2009년에 이어 2년 만에 생애 두 번째 K리그 최우수선수(MVP)로 뽑히는 영광도 맛봤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9골을 기록, 팀 동료인 에닝요(7골)를 따돌리고 당당하게 득점왕을 차지했다. 팬들이 직접 인터넷 투표로 뽑는 '팬타스틱 플레이어(FANtastic Player)'로도 선정됐다. 올해 도움왕 타이틀을 얻어 K리그 사상 처음으로 신인왕(1998년), 득점왕(2009년), MVP(2009년·2011년) 등 4대 개인상을 모두 경험한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김하늘 = 올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를 빛낸 최고의 별.

김하늘은 올해 KLPGA 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상금왕-다승왕 등 3관왕에 올랐다. 기자단과 팬들이 선정하는 스포츠토토 인기상까지 독차지했다. 시즌 3승을 거두며 상금 5억2천만원을 받아 상금 랭킹 1위에 등극했다.

최우수선수를 가리는 대상 부문에서도 가장 많은 포인트를 쌓아 2001시즌 KLPGA 투어 최고의 '골프 여왕'으로 인정받았다. 올해 KLPGA 투어는 시즌 막판인 10월까지 15개 대회를 치르는 동안 2승을 거둔 선수가 한 명도 없을 정도로 혼전이 펼쳐졌다.

이런 가운데 김하늘은 10월 하이트 진로챔피언십에서 이번 시즌 처음으로 2승 고지를 밟고서 11월 이데일리-KYJ골프 여자오픈에서 우승, 유일하게 3승을 거두며 국내 무대를 평정했다.

▲손연재 = 내년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2011년을 빛낸 스포츠 스타 중에서 가장 반짝이는 별로 꼽힌다.

지난해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리듬체조 개인종합 종목의 동메달을 딴 뒤 체조요정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마침내 올 9월24일 프랑스 몽펠리에에서 열린 제31회 국제체조경기연맹(FIG) 세계리듬체조선수권대회 개인종합에서 11위에 올라 런던올림픽 출전권을 자력으로 획득했다.

이 대회에서 얻은 107.750점은 아시아 선수 가운데 9위 율리아나 트로피모바(우즈베키스탄·108.375점)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점수다. 런던올림픽에서는 개인종합 10위 안에 들어 결선에 진출하는 게 목표다.

▲장효조 = 한국 프로야구가 낳은 최고의 교타자. 위암 때문에 지난 9월7일 55세로 생을 마감했다.

왼손 타자였으나 '방망이를 거꾸로 쥐고도 타율 3할을 때린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정확한 타격으로 이름을 날렸다. '영원한 3할 타자'나 '타격 천재'와 같은 별명이 붙은 것은 그런 배경에서다.

1983년 27세로 프로야구에 데뷔해 삼성 유니폼을 입자마자 타율 0.369로 수위 타자가 된 것을 시작으로 타격 부문에서 독보적인 역사를 써내려갔다. 1985년(타율 0.373), 1986년(타율 0.329), 1987년(0.387) 등 네 차례나 타격 1위에 등극했고 1991년까지 8시즌이나 타율 3할 이상을 넘겼다. 통산타율 0.331은 한국 프로야구 불멸의 기록으로 통한다.

1992년 은퇴한 뒤 지도자로 변신해 롯데와 삼성에서 후진을 양성했다. 올해 7월 잠실구장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프로야구 30년을 빛낸 10명의 '레전드 올스타' 자격으로 팬들에게 인사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등졌다.

▲최동원 =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고 투수로서의 족적을 남기고 타계했다.

롯데 입단 2년 차이던 1984년 51경기에 등판, 14차례나 완투하며 27승13패6세이브에 평균자책점 2.40의 성적으로 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었다.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1,3,5,6,7차전 등 총 5차례나 등판해 홀로 4승을 챙겨 롯데의 첫 우승을 견인했다. 이후에도 1985년 20승, 1986년 19승, 1987년 14승을 거두며 롯데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그러나 프로야구선수협회의 모태인 선수회 창립을 주도하다가 '괘씸죄'에 걸려 보복성 트레이드로 삼성으로 옮겨간 뒤 야구에 흥미를 잃고 이른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10년 만인 2001년 한화 코치로 복귀했지만 2007년 대장암에 걸려 긴 투병생활을 시작했다. 결국 4년 만인 9월14일 53세를 일기로 세상과 작별했다.

▲박영석 =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된 세계적인 탐험가.

2001년 히말라야 8,000m 이상 14개 봉우리를 8년2개월 만에 모두 올라 세계 최단기간 완등 기록을 세웠다. 2004년에는 걸어서 남극점을 밟았고 이듬해에는 같은 방식으로 북극점에 도달했다.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등정과 두 극점 답사를 완성, 세계 최초로 '탐험 그랜드슬램'을 이룩했다.

이후 한층 혹독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등로주의(登路主義)를 추구하며 2009년 5월 세계 3대 난벽(難壁) 가운데 하나인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지난 10월 안나푸르나 남벽 루트 개척에 나섰다가 눈사태를 만났다. 함께 등반에 나선 강기석, 신동민 대원도 연락이 끊겼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로 내정된 1974년 이래 37년간 아버지 권력을 대행해 실질적으로 북한을 철권통치해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7일 6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김 위원장은 1994년 7월 김일성의 사망으로 본격적인 김정일 시대를 열었으나 국가경제와 식량배급제가 완전히 붕괴해 수백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했고 대외적으로도 미국, 일본 등과 지속적으로 갈등을 빚으며 국제적 고립상태가 이어져 왔다. 그는 김일성 3주기를 마친 뒤 1997년 9월 추대 형식으로 당 총비서에 올랐고 이듬해 10월 제10기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최고 권력기관으로 자리매김한 국방위원회의 수장으로 재추대됐다.

김 위원장은 또 경제적, 외교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1998년 '사회주의 헌법' 개정을 통해 경제난 속에서 변화된 사회상을 반영했고 2002년에는 7·1경제관리개선조치를 통해 시장을 확대하고 임금과 물가를 현실화하는 조처를 하기도 했다. 외교적 행보는 한층 파격적이었다. 1994년 미국과 담판을 통해 북미 기본합의를 이끌어낸 그는 남쪽에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금강산 관광사업 등 파격적인 남북교류를 추진했으며 2000년에는 반세기만의 정상회담을 하고 6·15공동선언에 직접 서명했다.

동시에 미국과도 적극적인 관계 개선에 나서면서 2000년 10월에는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을 특사로 미국에 파견하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과 만났고 클린턴 대통령과 정상회담도 추진했다. 2002년에는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를 평양으로 불러들여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를 시인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이듬해 1월 셋째 아들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하고 2010년 9월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을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선임하면서 후계체제 구축에 속도를 내왔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1/12/21 06:3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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