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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인물> 국내 1

<2011 인물> 국내 1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북한의 최고 권력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연말 국내외에 적잖은 충격을 안기며 향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에 격랑을 예고했다.

앞서 국내 정치권에는 '안철수 바람'이 거셌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전후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새로운 카드'로 거론되며 20-40대의 열광적인 지지 속에 부상했고 그 옆에서 박원순, 박근혜, 홍준표 등의 이름이 부지런히 오르내렸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이 각각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교육감 선거 비리 의혹으로 불명예 퇴진했다.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과 하용조 목사, 소설가 박완서를 비롯해 프로야구 스타 장효조와 최동원, 산악인 박영석과 노동운동가 이소선 여사 등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던 거목들이 세상을 떴다.

연예계에서는 특급 MC 강호동이 세금 탈루 논란 속 잠정 은퇴를 선언했고, 배우 장근석이 배용준을 잇는 한류스타로 떠오르며 일본 열도를 뒤흔들었다.

◇정치·외교·안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 지난 10·26 재보선에서 전국적인 지원유세에 나서면서 정치적 '잠행'에서 벗어나 사실상 '대권 행보'를 시작했다.

하지만 총력 지원한 한나라당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가 패하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야권의 유력 대권 주자로 급부상하면서 '박근혜 대세론'에 타격을 입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당 대표직에서 물러난 지 5년5개월여 만에 비상대책위원장 자격으로 당 운영의 전면에 나서게 됐다.

종전의 '홍준표 대표 체제'로는 의미 있는 쇄신을 이루기 어렵다는 지적 속에 '박근혜 구원등판론'이 봇물터지듯 나오자 고심 끝에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했다.

이에 따라 여권의 전면적인 쇄신으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내년 4·11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승리를 이끌어내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

유력 대권 주자로서 본인의 정치인생에서도 '박근혜 비대위'가 결정적인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홍준표 한나라당 전 대표 = 7·4 전당대회를 통해 당내 비주류로서는 이례적으로 대표직에 올랐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 공격 사건의 파도를 넘지 못하고 5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취임 초기 계파타파와 친서민정책 강화를 내세우며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지만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추진한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오 전 시장의 사퇴에 따른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잇따라 패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난 10월 말에는 홍대 앞에서 가진 대학생들과의 '타운미팅'에서는 "이대 계집애들"이라고 말했다가 사과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11월 내 처리 여부를 놓고 기자와 내기를 건 이른바 '아구통' 발언으로 곤욕을 겪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의 비서가 개입한 것으로 드러난 중앙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은 홍준표 체제의 붕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디도스 사태에 대한 지도부의 대응 미숙 등을 이유로 선출직 최고위원 3명이 동반사퇴한 상황에서 '재신임 카드'를 꺼내며 버티다가 당내 주류로 부상한 친박(친박근혜계)계가 등을 돌리면서 결국 12월9일 사퇴를 선언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 8월24일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주도하면서 정국의 중심에 섰다.

민주당이 다수인 서울시의회가 결정한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을 막으려고 시도한 주민투표가 투표율 33.3%를 넘기지 못해 투표함을 열지도 못하고 끝나자 이틀 뒤 서울시장직에서 전격 사퇴했다.

그의 사퇴로 치러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선 시민단체 출신인 박원순 야권 통합후보가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큰 표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는 총선을 앞둔 한나라당에 또 한 차례 쇄신의 바람을 불러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중앙선거관리위 디도스 공격 파문'까지 불거져 급기야 '홍준표 대표 체제'가 막을 내리고 '박근혜 비대위원장 체제'가 출범하게 됐다.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거치면서 기성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폭발했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부상하는 계기도 됐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무소속 출마를 검토하다 출마의 뜻을 접고 박원순 변호사(희망제작소 상임이사)로 후보 단일화를 이뤘다.

안 원장의 등장은 기성 정치권을 한순간에 긴장으로 몰아넣었고 이른바 '안풍(안철수 바람)'으로 이어지면서 '2040(20-40대) 세대'의 폭발적인 호응을 불러왔다.

결국 '안풍'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가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누르고 서울시장에 당선되는데 일등공신이 됐다.

안 원장은 재보궐 선거 이후로도 야권의 유력 대권 주자로 거론됐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압도하며 '대선 판도'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지난달 14일에는 자신이 보유한 안철수연구소 지분(37.1%)의 절반, 당시 주가로 1천500억원 상당을 사회에 환원키로 해 정치권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 지난해 민주당 10·3 전대에서 당권을 거머쥔 뒤 영욕과 부침 속에 1년 2개월간의 대표직을 수행했다.

우여곡절 끝에 야권 통합을 이뤄냈지만 대선 주자로서 리더십에 의문부호를 남겼다. 바닥권을 맴돌던 지지율은 4·27 재보선 분당을에서 한나라당 강재섭 전 대표를 상대로 극적인 승리를 연출하면서 15%대까지 치고 올라가 야권의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급부상했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정체성 논란과 서울시장 경선 후 사퇴 소동을 거치며 지지율은 급락했다.

그래도 반대파와의 갈등 속에 임시 전대에서 통합 결의를 이끌어내면서 정치적 자산을 남겼다. 내년 4월 총선에서 끼칠 영향력이 대선주자로서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 안철수 바람이 불기 전까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에 앞서나가며 야권의 유력한 대선주자로 뛰어올랐다.

지난 9월 초 진보 성향의 재야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야권 대통합 추진모임인 '혁신과 통합'을 결성하는 등 야권통합 논의의 전도사 역할을 했다.

그러나 10·26 부산 동구청장 재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총력 지원했으나 한나라당의 높은 벽을 절감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김인회 인하대 교수와 함께 '검찰을 생각한다'라는 책을 출간한 뒤 북콘서트를 열어 대중과의 접촉을 늘리는 등 정치적 보폭을 넓히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에서 야권의 부산·경남지역 선전 여부는 대권 주자로서의 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될 전망이다.

▲김황식 국무총리 = 동남권 신공항과 과학벨트 입지 선정,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이전 결정 등 갈등이 첨예한 사안을 도맡아 대과 없이 처리하며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다.

복지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민감한 이슈에 대해서도 평소 소신을 바탕에 둔 흔들림 없는 국정 철학을 강조하며 국정의 중심을 잡았다.

'이 정부 들어 가장 잘한 인사'라는 정치권 안팎의 평가 속에 지난 10·26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한때 여권의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자신이 출마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혀 차출론은 사그라졌지만 그만큼 여권의 신뢰 속에 안정적인 국정 수행 능력을 보여줬다는 방증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최근에는 잇따라 보여준 감성 행보로 국민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달 23일 연평도 포격도발 전사자 1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우산과 우의 없이 장대비를 맞으며 눈물을 흘렸고, 지난 4일에는 의전팀도 모르게 순직 소방관의 빈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하금열 대통령실장 = 지난 35년간 동아방송에서 시작해 KBS, MBC 기자를 거쳐 SBS 보도본부장과 대표이사 사장 등을 지낸 정통 방송맨 출신에서 대통령실장으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정치부 기자로서 오랜 경험과 여야를 비롯한 정치권을 두루 취재해온 경륜이 풍부하기는 하지만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일약 대통령실의 제4기 참모진을 이끌게 됐다.

하 실장은 이변이 없는 한 내년 총선과 대선,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퇴임 때까지 이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할 전망이다.

언론인으로서 쌓아 온 유연한 사고와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대통령을 충실히 보좌하고 원활한 당정 및 국회관계를 정립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하 실장은 이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이던 지난 1990년 초 SBS 정치부장으로 인연을 맺었으며, 이후 대통령 당선 전까지 부단한 교류를 통해 의중을 정확히 읽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 지난해 7월 세종시 수정안의 국회 부결로 여권이 혼란한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3선을 지낸 지역구인 성남 분당을을 포기하고 대통령실에 합류했다.

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에도 비서실장을 할 만큼 신임이 두터워 여권의 위기 상황에서 거의 경쟁자 없이 낙점받았다. 경제 관료 출신인 그는 이후 1년5개월 동안 합리적 중도 성향에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대통령실을 잡음 없이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4월 보궐선거에서 분당에 출마했다가 패배한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의 공천을 임 전 실장이 물밑에서 도왔다는 설이 제기되자 책임론이 불거지기도 했지만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

그러나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큰 격차로 패배함에 따라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했다. 다만 내년도 예산안이 통과되는 연말까지 유임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쇄신 바람에 밀려 조기 사퇴하면서 임 전 실장 역시 같은 배를 타게 됐다.

내년 4월 총선과 경지도지사 출마설이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경제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 김 회장이 이끄는 하나금융지주가 사실상 외환은행을 품에 안았다. 김 회장은 난제였던 론스타와 외환은행 지분 매각 협상을 최근 마쳤다. 금융당국이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자회사 편입 신청을 승인해주기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작년 말 론스타와 최초 계약 이후 당국의 승인이 1년이나 지연됐으나 외환은행을 놓치지 않았다. 그간 충청은행, 보람은행, 서울은행 등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성사시킨 저력 때문에 가능했다.

2006년 외환은행 인수전에서 국민은행에, LG카드 인수전에서는 신한금융에 밀려 분루를 삼킨 뒤 5년만에 승부수를 던져 인수에 성공한 것이다.

40년 전 직원 20여 명을 거느린 부서장으로 출발한 그는 이제 국내 최대 금융회사의 수장으로 거듭나게 됐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 올해 개인 기부로는 최대 규모인 5천억원의 사재를 출연해 기업 위주의 기부 문화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사재로 운영될 '해비치 사회공헌문화재단'의 명칭을 '현대차 정몽구 재단'으로 변경하며 독립적이면서 적극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정몽구 재단은 내년부터 저소득층 대학생과 중고생, 농어촌 소외지역 초등학생 등 5년간 8만4천명에게 저리 대출과 연체이자 감면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1998년 현대·기아차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한 후 품질 경영을 지속적으로 추진, 현대·기아차를 명실상부한 글로벌 메이커로 성장시켰으며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미국 유력 자동차 전문지 오토모티브 뉴스가 선정한 '2011년 자동차 업계 아시아 최고의 CEO'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 = 올해 12월 13일 급성 폐손상으로 별세했다. 84년 영욕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포철신화의 주인공이자 '철강왕'으로 통한다. 탁월한 경영능력을 갖춘 한국 철강산업의 산 증인으로 산업화 주역인 동시에 영욕의 한 시대를 가른 정치인이기도 하다.

일본 와세다대학을 거쳐 육사 전신인 경비사관학교에서 수학한 군부 엘리트로 1968년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제철소 건설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전두환과 노태우 정권 당시에도 포항과 광양제철소 신화를 일궈냈다.

전두환 신군부의 등장과 함께 민정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서 본격 시작된 정치인의 삶은 온갖 풍상을 겪으며 1997년 김대중-김종필-박태준 연합에 의한 정권교체와 총리 재임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고인은 타계 직전까지 직함인 포스코 명예회장이 보여주듯 영원한 포스코인으로 기억된다. 17일 사회장을 거쳐 국립현충원에 안치됐다.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 = 9·15 정전사태의 직격탄을 맞고 낙마했다. 정전 당일 다 벌어진 일을 수습하려고 현장 방문 같은 보여주기식 행보를 하기보다는 한국-콜롬비아 정상회담 만찬에 예정대로 참석하는 게 국무위원으로서 온당한 일이라고 보고 그렇게 실행했다고 한다. "나만 살려고 했으면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재정부 출신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참모 출신답게 강한 '말 펀치' 행정을 폈다. '기름값이 묘하다'는 대통령의 발언에 맞춰 독점이익을 양보하라고 정유사를 몰면서 3개월간 ℓ당 가격을 100원 끌어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기름값은 다시 올랐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의 이익공유제를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하며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지난달 퇴임이 결정된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안철수 서울대 융합기술대학원장을 향해 과학자가 왜 정치권에 기웃거리느냐고 말해 논란을 낳았다.

▲이제범 카카오 대표 = '국민 앱(애플리케이션)' 카카오톡을 운영하는 카카오의 대표이사. 1978년 태어나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2006년 카카오를 설립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으며 성공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개발자의 모범 사례로 손꼽힌다.

카카오톡은 그가 2010년 3월 내놓은 실시간 무료 메시지 서비스. 출시 약 1년만인 올해 4월 가입자 1천만명을 돌파하고 11월엔 3천만명을 돌파했다. 카카오톡은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영어, 일어, 스페인어 등 외국어도 지원한다.

이 대표는 지난 10월 '플러스 친구'와 '카카오링크 2.0' 서비스를 출시하며 카카오톡을 수천만 가입자 망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 업체로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 = 올해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를 이끌며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스마트기기 시장에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삼성전자는 3.4분기 전 세계 스마트폰 판매량에서 '아이폰' 제조사 애플을 꺾고 1위 자리를 차지했으며, 4세대(4G) LTE(롱텀에볼루션) 시장에서도 전 세계 시장의 33.3%를 차지하며 HTC와 공동으로 1위에 올랐다.

신 사장이 지난 7월 밝힌 올해 목표 '스마트폰 6천만대 이상 판매' 역시 3분기까지의 실적만으로 이미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신 사장은 최근 실시된 삼성전자의 조직개편에서 기존의 무선사업부 이외에도 IT솔루션사업부·네트워크사업부·디지털이미징사업부·미디어솔루션센터를 총괄하는 IM(IT·모바일) 담당 사업책임자로 중용됐다.

▲김정주 NXC 회장 = 게임회사 넥슨 재팬(일본 법인)을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며 단숨에 재계 부호 순위 3-4위권으로 뛰어올랐다.

'메이플스토리' 등 온라인게임을 주로 서비스하는 넥슨의 지주회사 NXC의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인 김 회장은 상장 이전인 지난 10월에도 재벌닷컴이 분석한 재산평가액이 2조3천억에 달해 재계 부호 순위 8위에 오른 바 있다.

상장된 넥슨 재팬의 주당 공모가격은 1천300엔으로 책정됐으며, NXC의 넥슨 재팬 지분과 김 회장 일가가 보유한 NXC 지분을 계산하면 자산 가치가 3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재계 순위 3-4위권에 해당하는 것으로, 평가액이 2조9천억원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보다 재산이 많다.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 초대 원장 = 단군이래 최대 과학기술 프로젝트라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핵심인 기초과학연구원 초대 원장으로 지난달 25일 선임됐다.

연구원장은 산하 50개의 연구단, 3천명의 연구인력을 거느리고 연구원에 대한 전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국내 기초과학과 과학기술계를 좌우할만큼 막강한 권력을 가진 새로운 자리다.

오 원장은 고체·실험물리 분야 전문가로 현재 서울대 자연과학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방사광 가속기 등 대형연구시설 활용 경험이 있어 기초과학연구원 핵심시설인 중이온가속기 구축과 운영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회

▲박원순 서울시장 = 청년투사,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계의 대부, 소셜 디자이너로 새 영역을 개척해왔다. 10·26 재보선에서 범야권 후보로 나서 당선된 민선 5기 서울시 수장으로서 역할은 진행형이다.

그는 1975년 서울대 사회계열 1학년 재학시절 유신체제에 항거해 할복한 고(故) 김상진 열사의 추모식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투옥, 제명된 뒤 1983년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 사시 22회에 합격한 후 대구지검 검사로 1년여간 근무하다 옷을 벗고 인권변호사로 변신했다. 권인숙 성고문 사건, 미국 문화원 사건, 한국민중사 사건, 말지(誌) 보도지침 사건,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사건 등의 변론을 맡았다.

1995년 진보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를 결성해 2002년까지 사무처장으로 활약했다. 2002년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 2006년 희망제작소를 잇달아 개소해 사회공헌 활동을 활발히 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 작년 6월 진보진영 후보단일화에 극적으로 성공해 서울시교육감에 당선되고서 교육비리 척결에 힘쓰며 공정택 전 교육감과 차별화를 꾀했다.

하지만 지난 8월 교육감 선거 후보 단일화 뒷돈거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은 뒤 구속수감돼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취임 이후 혁신학교 개설, 무상급식 전면 확대, 학생인권조례 개정 등의 공약을 추진해 왔다. 전면적인 체벌금지 선언, 학업성취도평가 대체학습 허용 등 주요 정책을 두고 교육과학기술부와 자주 갈등을 빚기도 했다.

곽 교육감은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 정책을 두고 오세훈 서울시장과 극한 대립까지 치달았다가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사실상 이기면서 한껏 고무된 지 이틀 만에 검찰 수사를 받는 사실이 공개됐다.

이 과정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한 그는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선의(善意)로 2억원을 지원했다"는 말을 남겨 한동안 '선의'라는 단어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현재 1심 재판을 받은 곽 교육감은 법정에서 후보 단일화 대가로 준 돈이 아니라고 '무죄'를 주장하고 있으며 내년 1월 중에 있을 1심을 시작으로 재판 결과에 따라 교육감으로 복귀할지, 교육감직을 잃게 될지가 결정된다.

▲강희락 전 경찰청장 = 2009년 3월 제15대 경찰청장으로 취임해 불법 시위 엄단과 경찰 내부 자정 등을 추진했다. 임기 내 쌍용차 사태, 양천경찰서 고문 사건, 강북경찰서장 항명 파동 등 크고 작은 논란을 빚었지만 임무를 무난히 수행했다는 평을 듣다 2010년 8월, 2년의 임기 중 7개월을 남기고 사퇴했다.

평범한 '전 경찰청장'으로 돌아가는가 싶더니 지난 1월 '함바(건설현장 식당)' 비리가 터지면서 핵심 연루자 중 한 명으로 부상했다. 돈을 받고 각지의 경찰관을 소개해주고 건설 공사 현장 민원 해결, 인사 청탁 등을 들어주면서 2억에 가까운 돈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강 전 청장은 함바 브로커 유상봉(65.수감) 씨에 각종 청탁과 함께 억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로 구속기소됐다. 이후 반년이 넘게 이어진 진흙탕 법정 공방 끝에 강 전 청장은 8월 서울동부지법에서 징역 6년과 벌금 1억7천만원, 추징금 1억7천만원을 선고받았다.

▲이소선 여사 = 1929년 대구시 달성군(당시 경북 소재)에서 태어난 이씨는 아들 전태일 열사가 지난 1970년 청계천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여생을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에 바쳤다.

전 열사가 숨진 직후에는 아들의 요구 사항을 해결하라며 장례식 치르기를 거부, 노동청장으로부터 노조 허가 약속을 받았음. 이후 청계피복노동조합 결성을 주도하고 고문에 추대됐다.

노동교실 실장을 맡는 등 청계노조 활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한편, 군사독재 시절 경찰과 정보기관에 쫓기는 수배자들을 숨겨 주는 등 재야 운동진영에서 활동했으며 이 과정에서 수차례 구속, 옥살이를 하거나 경찰의 수배를 받았다.

1986년에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를 창립해 초대 회장을 맡았고, 1998년에는 의문사 진상 규명 및 명예회복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422일간 천막 농성을 벌였다.

이같은 사회운동 공로로 4월 혁명상과 만해대상 실천 부문상 등을 받았다.

왕성한 노동운동을 하던 이씨는 지난 9월3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조현오 경찰청장 = 한마디로 순탄치 않았던 경찰이라는 조직의 총수로서 만만치 않은 한 해를 보냈다.

함바 비리와 전·의경 구타 건으로부터 한해를 시작했다. 문제가 된 강원경찰청 307전경대를 아예 해체해버리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봄에는 3색 신호등 때문에 시끄러웠다. 여론의 폭격을 받은 이후 결국 전면 폐지라는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다.

서울 강남권 경찰관들의 부패 비리로 한바탕 몸살을 알았고 장례식장 비리와 인천 조직폭력배 미온 대응 건으로도 한동안 매스컴을 탔다.

총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지침을 밝혔다가 인권 단체들과 대립각을 세웠고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나 강정마을, FTA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도 말이 나왔다.

형사소송법 개정을 전후해선 검찰과 싸우면서 일선 경찰의 반발을 막아야 하는 내우외환 상황이었다.

개정 형사소송법에서 상당한 성과를 올렸지만 국무총리실이 강제조정한 대통령령이 경찰 입장을 반영하지 않으면서 다시금 일선 경찰의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조 청장은 직을 건 상태다.

▲이국철 SLS그룹 회장 = 9월21일 정권 실세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게 10년 가까이 십수 억 원을 전달했다고 폭로하면서 단숨에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또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차장의 일본 출장 때 400만-500만원 향응을 제공하고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과 임재현 청와대 정책홍보비서관에게 상품권을 건넸다며 폭로를 이어갔다.

SLS그룹의 워크아웃과 관련해 검찰 고위층 9명에게 구명 로비를 벌였으며, 대영로직스 대표 문환철 씨에게 60억원을 주고 이상득 의원 보좌관 박배수 씨를 통해 로비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의 폭로로 신 전 차관과 박배수 보좌관 등이 구속됐다.

이 회장 본인도 뇌물 제공 혐의와 선수금을 빼돌려 1천1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하고 SLS그룹의 자산상태를 속여 12억 달러의 선수환급금을 증액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최은배·김하늘 부장판사 = 최은배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11월22일 한미FTA 비준 직후 페이스북에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과 통상관료들이 서민과 나라 살림을 팔아먹은 2011년 11월22일, 난 이날을 잊지 않겠다'는 글을 남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간에서 판사의 정치적 발언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을 촉발시켰다.

대법원은 공직자 윤리위에 회부해 법관윤리강령을 위반했는지 심의하기로 했고, 이후 여야 정당이 찬반 논평을 내는 등 논란은 더욱 확산했다. 법원 내 진보성향 학술단체인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김하늘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대법원장에게 한미FTA 재협상을 위한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청원하겠다고 나서 사법부의 FTA 논란에 불을 지폈다. 김 부장판사는 12월9일 판사 166명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에게 건의문을 제출했다.

▲석해균 = 지난 1월15일 인도양 북부에서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화학물질 운반선인 삼호주얼리호의 선장.

우리 해군 청해부대의 선원 구출작전 때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기지를 발휘해 운항속도를 지연시키는 등 작전을 도왔다.

그는 총알이 빗발치는 작전 상황에서 복부 3곳과 양쪽 다리, 왼쪽 팔 등 6곳에 총상을 입었다. 오만 현지에 도착한 아주대병원 중증외상특성화센터 이국종 과장으로부터 수술을 받고 1월29일 한국으로 이송됐다.

아주대병원에서 여러 번 수술을 더 받은 석 선장은 몇 차례 고비를 더 넘겼다. 이후 물리치료와 재활운동에 힘써 8월부터 걸음을 떼기 시작해 총상을 입은 지 288일 만인 11월4일 퇴원했다.

그는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또 국제해사기구(IMO)로부터 '세계 최고 용감한 선원상'을 받는 영광도 안았다.

▲김진숙 = 11개월간 지속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의 중심에 있었던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김 위원은 지난 1월6일 새벽 기습적으로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안에 있는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고공 농성에 돌입했다.

2010년 12월 사측이 생산직 직원 400명에 대한 희망퇴직 계획을 통보하자 노조가 곧바로 총파업에 돌입, 노사갈등이 고조되던 때였다.

김 위원은 노사협상이 타결된 11월10일까지 309일간 높이 35m 크레인 위에서 농성하며 트위터 등을 통해 정리해고의 부당성을 알렸다. 김 위원은 대규모 정리해고에 온몸으로 저항한 상징적인 인물로 부상했다.

김 위원은 1981년 대한조선공사에 여성 최초 용접공으로 입사했다. 이후 1986년 상사명령 불복종, 회사명예 실추 등의 이유로 해고되고 나서 노동계에 뛰어들었다.
(계속)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1/12/21 06:3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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