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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한국 산악인 '대부' "박 대장 생환하게"

송고시간2011-10-23 14:09

안나푸르나의 작년 3월 모습(자료사진)

안나푸르나의 작년 3월 모습(자료사진)

이경섭 삼부토건 네팔 법인장

(뉴델리=연합뉴스) 유창엽 특파원 = "이젠 등정하기 전에는 안 만나고 등정 후에나 보려 합니다."

교민 500여명인 네팔에서 16년간 한인회장을 역임해오다 지난해 물러난 이경섭(60) 삼부토건 네팔 법인장은 23일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등정하려다 실종된 박영석 대장 일행 소식에 안타까움을 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법인장은 31년째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 '둥지'를 틀고 터줏대감으로 살다 보니 박 대장을 비롯한 웬만한 한국 산악인들의 등정 소식은 훤히 꿰어온 인물.

사실상 네팔의 한국 산악인 '대부'로 통한다.

그는 박 대장이 이번에 남벽을 통한 안나푸르나 등정에 나서기 직전에도 직접 만났다.

밥 한끼 함께 하면서도 또 그 위험한 등정을 시작하려는가 싶어 만류하고픈 마음도 꿀떡같았지만 박 대장이 한번 결심하면 해내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지닌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전과 마찬가지로 또 그렇게 떠나보냈다.

박 대장의 초등(初登) 때부터 사연을 아는 이 법인장은 박 대장의 두 아들 중 큰아들이 도화지에 크레옹으로 아빠가 정상에 올라 태극기 꼽는 장면을 그리는 등 가족들이 가장의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등정을 가슴 졸이면서도 적극 지원했다고 말했다.

이 법인장이 히말라야 고봉을 오르겠다는 한국 산악인의 등정 도전을 늘 안쓰럽게 보게 된 것은 그간 많은 사고사를 봐왔기 때문.

그에 따르면 새천년 2000년 개시를 기념하고자 1999년말 산악인과 취재진이 에베레스트에 올라 생방송하겠다는 계획을 실행하던 중 산악인과 기자 각 1명이 숨졌다.

생방송 계획은 취소됐다. 네팔에선 화장문화가 있기 때문에 주검을 한국으로 운구하는 어려운 문제가 한인회장이던 그에게 맡겨졌다.

그는 영국대사관에 사정해 관을 구한 뒤 손수 주검을 염한 뒤 한국으로 보냈다.

박 대장과 관련된 사고사도 있었다. 그가 1980년대말 아끼던 후배 2명과 남서벽 루트를 통해 에베레스트를 올르려다 후배들이 기상악화속에 실족하는 바람에 불귀의 몸이 된 것이다.

이 법인장은 "박 대장이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후배들의 주검이 카트만두 시내 화장터에서 한 줌의 재로 바뀌는 동안 미친 사람처럼 오열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고미영 대장이 2009년 히말라야 14좌중 하나인 파키스탄의 낭가파르밧 등정을 앞두고 카트만두의 자택에 들렀을 때도 떠올렸다.

이 법인장이 고 대장에게 "칸첸중가 등정을 마친 뒤니 몸을 좀 추스르고 난 뒤에나 등정하라"고 만류했으나 고 대장은 체력이 강하다며 팔씨름을 제안했다.

이 법인장은 여성인 고 대장의 힘에 눌려 보기좋게 팔씨름에 졌다.

대부의 만류를 뒤로하고 등정에 나선 고 대장은 봉우리를 정복한 뒤 하산하다 사고사를 당하고 말았다.

이 법인장은 "그 외에도 히말라야 봉우리를 오르려다 숨진 한국 산악인이 숱하게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특히 안나푸르나 등정과 관련한 사고사가 유난히 많다"며 친동생으로 여긴 박 대장의 실종을 떠올리는 듯했다.

그러면서 "박 대장이 이전 사고 때 부러진 뼈를 스스로 맞춰 살아난 사람인 만큼 그의 생환을 아직도 포기하지 못하겠다"며 "그가 돌아오면 등정 전후에 늘 그래줬듯이 흑염소 한 마리를 잡아 보신시키겠다"고 말했다.

yct94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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