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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축전>'나뭇잎 불경'서 한글대장경까지

송고시간2011-09-19 14:43

<대장경축전>'나뭇잎 불경'서 한글대장경까지
경(經)ㆍ율(律)ㆍ논(論) 집대성..36년 걸려 한글화 완간

(창원=연합뉴스) 정학구 기자 = 대장경은 29살에 출가해 35살에 득도하고 80살에 열반에 든 석가모니가 설교한 내용 등을 한자로 번역한 불교경전의 총서다.

석가모니가 제자들에게 설파한 경(經), 제자들이 지켜야 할 윤리와 규범인 율(律), 경과 율에 대한 설명과 주석을 모은 논(論) 등 삼장(三藏)을 집대성한 것이다.

석가모니가 득도 이후 45년에 걸쳐 설교한 내용은 열반후 수백년이 지나도록 기록되지 못했고 제자들의 기억으로만 전해졌다.

제자 등 자격있는 사람들이 모여 불전을 평가하는 모임인 '결집(結集)'을 통해 제자들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如是我聞)'라며 각자 들은 내용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러나 서기 1세기, 석가모니가 열반한 지 600여 년이 지난 후 패엽경(貝葉經)이란 이름으로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패다라(貝多羅)는 나뭇잎을 가리키는 산스크리트어(梵語)의 음을 딴 것으로 조개(貝)와는 관계가 없다. 종이가 없던 당시 나뭇잎에 부처님 말씀을 기록한 것이다.

현재 대구 동화사와 영월 법흥사에 패엽경이 보관돼 있다.

돌에 불전을 새긴 석경(石經)도 있다.

중국에서 5세기부터 유교 경전에 이어 불교와 도교 경전도 돌에 새기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는 유교 석경은 전하지 않고 통일신라시대 불교 석경만 전해지고 있다.

7세기 당나라때부터는 금가루를 아교풀에 갠 후 경을 베끼는 금사경(金寫經)이 시작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유행해 고려시대에 이르러 호화판 금사경이 무수히 만들어졌다.

금니경(金泥經)으로 불리는 금사경은 목판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에 나온 사경(寫經)을 후세까지 보존한다는 뜻에서 발달했다.

'고려사' 등에는 사경승(寫經僧)들이 많게는 100명까지 중국에 파견되기도 했다는 기록이 나와 당시 고려인들의 금속을 다루는 기술이나 사경기술이 뛰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훗날 신앙은 물론 예술의 경지, 금속공예의 3위 일체에서 성공할 수 있는 예도(藝道)로 대우받았다.

지금도 국내에서는 김경호 등에 의해 금사경의 맥이 이어지고 있다.

이후 불경을 좀 더 쉽게 관리하고 보존하는 것은 물론 인쇄해 널리 알리기 위해 목판대장경이 고안됐다.

송나라 태조 4년(972년)부터 태종 8년(983년)까지 북송칙판대장경(개보칙판대장경)이 간행됐지만 지금은 인쇄본 일부만 남아있다.

고려에서는 현종 2년(1011년)부터 선종4년(1087년)까지 초조(初雕)대장경이 간행됐으나 1232년(고종19년)몽고의 2차 침입 때 불타고 말았다.

현재 인쇄본이 일본의 남선사와 안국사, 국내 호암미술관, 성암고서박물관 등에 일부 소장돼 있다.

초조대장경 이후에도 거란대장경과 고려속장경 등이 간행됐지만 역시 남아 있지 않다.

고려 고종 38년(1251년)때 불탄 초조대장경에 이어 다시 만든 것이 팔만대장경으로 불리는 재조(再雕)대장경이다.

대장경을 한글로 옮기는 데는 재조대장경(16년)보다 20년이 더 긴 36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동국대 부설 동국역경원은 1964년 한글대장경 제1집 '장아함경'을 시작으로 대장경 번역에 들어가 2000년말에 이르러 한글대장경 318권을 완간했다.

b94051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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