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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 10년>⑦ 한인 유족들의 아픔 `진행형'

송고시간2011-09-02 09:20

<9·11테러 10년>⑦ 한인 유족들의 아픔 `진행형'
조용히 장학사업 펼치면서도 외부 접촉은 철저히 사절
"해마다 이맘때면 아파".."기자 이제 그만 만나겠다"

(뉴욕=연합뉴스) 정규득 특파원 = `참척'(慘慽.자손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먼저 죽는 일)의 아픔을 겪은 아버지는 "아무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가슴속에 움푹 팬, 시퍼런 상처를 다시금 헤집게 될까 봐 내심 두려웠던 탓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은 이역만리에서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부모에겐 아무런 약효가 없었다.

뉴욕시 서니사이드에 사는 강성순(73) 씨는 기자와의 인터뷰를 정중하게 거절했다. 거듭 요청해 봤지만 "지금 너무 아프다"면서 끝내 방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자신도 아내와 같이 많이 아팠는데, 올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전화기 너머로 "제발 오지 말라고 해달라"며 손사래 치는 부인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만나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강씨의 떨리는 목소리에는 억겁의 세월도 씻어내지 못할 서러움이 묻어 있었다.

그는 9ㆍ11테러로 4남매 중 외아들인 준구(당시 34세) 씨를 잃었다. 27대 종손인 준구 씨는 당시 세계무역센터(WTC) 104층 캔터 피츠제럴드 증권회사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다. 강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테러가 있기 며칠 전 20여명의 회사 직원이 구조조정을 당했는데 "그 안에 준구가 포함됐었더라면..."이라며 한숨짓곤 했다고 한다.

또 건물 유리창에서 하얀 러닝셔츠 바람에 손을 흔들며 살려달라고 외치던 TV 속의 희미한 남자가 금쪽같은 아들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는 푸념을 늘어놓는가 하면, 지금도 아들이 너무나 보고 싶을 때에는 말없이 그라운드 제로를 찾는다는 게 지인들의 전언이다. 그에겐 그라운드 제로가 아들의 무덤인 셈이다.

강 씨 부부는 지난해 남미 도미니카공화국 수도 산토도밍고의 빈민촌에 아들의 이름을 딴 `준구 메모리얼 스쿨'를 개교했다. 그곳의 아이들이 좋은 교육을 받고 준구 씨가 못 이룬 꿈을 이뤘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9·11 테러로 둘째 아들을 잃은 김평겸(70) 9.11 한인 희생자 유족회장도 인터뷰 요청을 한사코 거절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더 이상 가족들이 원하지 않는다"고만 짤막하게 대답했다.

컬럼비아대학을 졸업한 뒤 금융업체인 프레드 알저 매니지먼트에서 경제분석가로 일하던 그의 아들 재훈(당시 26세) 씨는 참사 당일 아침 일찌감치 WTC의 사무실로 출근해 일하다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김 회장은 유가족 대표로 사태수습과 추모시설 건립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아들의 뜻을 이으려 아들의 영어 이름을 딴 `앤드루 김 추모 장학재단'도 설립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애써 슬픔을 추슬렀던 김 회장의 활동상은 이후 몇 년간 언론에 소개됐다. 하지만 가족들로서는 그때마다 상처가 덧나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고 한다. 집으로 찾아가서 잠깐 얼굴만이라도 보겠다고 청해봤지만 "기자와는 그동안 충분히 만났다"는 말만 남긴 채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장학재단을 통해 매년 수십명의 꿈나무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그는 아들이 타고 다녔던 빨간 폴크스바겐 차량을 지금도 타고 다닐 정도로 아들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안고 산다.

9·11테러로 숨진 한국인 희생자는 21명. 준구 씨와 재훈 씨를 포함해 대부분이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인재들이었지만 어떤 유족들도 현장에서 뼈 한 조각조차 찾지 못했다.

강 씨와 김 씨처럼 조용히 장학사업을 펼친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는 견딜 수 없는 아픔에 생업을 놓았다. 지금도 뉴욕 일원에 사는 유족은 서너 가족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한국이나 캐나다, 미국의 다른 주(州)로 떠났다.

한인 희생자 가운데 유일하게 주재원 신분이었던 구모(당시 42세) 씨의 아내는 두 딸과 함께 수년간 뉴저지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으나 기자가 통화를 시도했을 때에는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번호"라는 무심한 기계음 대답만 들려왔다.

유족회는 9·11테러 10주년을 몇시간 앞둔 오는 10일 오후 7시30분 맨해튼 66번가의 한 조용한 교회에서 희생자 추모 음악회를 열어 불의의 참사에 희생된 안타까운 넋들을 위로한다.

앞서 앤드루 김 장학재단은 2008년 9·11테러 7주년 추모 행사에서 "그을음과 먼지, 잿가루가 빗물처럼 쏟아져 내린 2001년 9월11일, 우리는 인종과 계급, 세대, 성(性), 신념, 언어를 뛰어넘어 하나의 몸과 가족, 영혼, 국민이 됐다"는 내용이 담긴 `원'(One)이라는 제목의 헌시(獻詩)를 바쳤다.

wolf8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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