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연합뉴스 최신기사
뉴스 검색어 입력 양식

히틀러의 팔과 다리가 된 사람들

송고시간2011-07-26 17:36

이 뉴스 공유하기
본문 글자 크기 조정

<히틀러의 팔과 다리가 된 사람들>
'나는 히틀러를 믿었다' 출간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몇 년간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의 악행은 히틀러 혼자 저지른 일은 아니었다.

히틀러라는 인류 최대의 범죄자 뒤에는 그의 팔, 다리가 되어 전쟁과 학살을 수행한 조력자들이 있었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귀도 크놉이 쓴 '나는 히틀러를 믿었다-히틀러의 조력자들'(울력 펴냄)은 히틀러의 야망을 실행에 옮긴 여섯 명의 조력자들을 소개한 책이다.

유대인 학살을 조직한 아돌프 아이히만, 독일 청소년들을 동원하고 조직한 발두어 폰 쉬라흐, 히틀러의 비서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마르틴 보어만, 외교장관 요아힘 리벤트로프, 사법 살인을 수행한 롤란트 프라이슬러, 생체 실험을 행한 요제프 멩겔러가 그들이다.

석유회사 대리점 직원이던 아이히만은 "단조로운 삶에 싫증이 나서" 나치 친위대원이 되었다. 친위대 내 유대민족 부서로 자리를 옮긴 그는 1938년 오스트리아 침공 당시 유대인을 강제 이주시키는 임무를 맡아 능력을 인정받았고 곧이어 "유대인을 단기간에 효과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대량 학살 업무에 관여하게 됐다.

아이히만의 업무는 학살 대상자들을 '죽음의 열차'에 실어 강제수용소로 이동시키는 것이었는데 그는 이 열차가 정확하게 출발하고 도착하는 데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게 신경을 썼다고 한다.

후에 "나의 죄는 명령을 따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던 아이히만은 게슈타포 대장인 하인리히 뮐러가 "우리에게 아이히만 같은 사람이 50명만 있었더라도, 전쟁에서 승리했을지 모른다"고 했을 정도로 히틀러의 명령에 충실한 인물이었다.

그는 1961년에야 비로소 사형을 선고받고 이듬해 "나는 전쟁법을 준수하고 국가의 부름에 따라야 했다"는 유언을 남긴 채 처형됐다.

야심 많은 법학도였던 프라이슬러는 나치의 특별재판소장으로 임명돼 정권에 반대하는 모든 행위들을 추적하고 응징하는 일을 빈틈없이 수행했다.

"전체 독일 사법부에서 가장 음울하고 야만적이며 잔혹한 재판관"이라고 불렸던 그는 "민족공동체에 해가 되는 자"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사형을 선고했다.

그는 종전 직전인 1945년 2월 법정에서 나와 대피소로 가는 길에 폭격으로 숨졌다. 자신의 범행 장소에서 상징적인 심판을 받은 것이다.

아이히만과 프라이슬러를 비롯한 이들 여섯 명은 히틀러의 광기에 빠지기 전에는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저자는 "어느 누구나 히틀러의 조력자가 될 수 있었다"며 "범죄 국가가 정의와 불의 사이의 경계를 허문다면 어느 누구나 피해를 입게 된다"고 말한다.

"우리 속에 아이히만과 같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이히만과 같은 본성이 드러나지 않도록 선택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 더 늦기 전에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더욱 필요하다."(28쪽)

신철식 옮김. 475쪽. 2만원.

<히틀러의 팔과 다리가 된 사람들> - 2

mihye@yna.co.kr

댓글쓰기
에디터스 픽Editor's Picks

영상

뉴스
오래 머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