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볼썽사나운 정치권.재계 포퓰리즘 논쟁
송고시간2011-06-26 17:50
<연합시론> 볼썽사나운 정치권.재계 포퓰리즘 논쟁
(서울=연합뉴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정부와 정치권에 연일 뼈있는 말을 해 파장이 커지고 있다. 허 회장은 24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 경제5단체장의 상견례 자리에서 "오늘날 중요한 정책 결정에서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순수하고 분명한 원칙이 지키지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허 회장은 지난 21일 취임 후 처음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도 "포퓰리즘 하는 사람들이 잘 생각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만들고 있다"면서 `반값 등록금'과 같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복지정책 경쟁에 직격탄을 날렸다. 허 회장은 신중히 생각한 뒤 일단 방향이 정해지면 강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소문대로 허 회장의 최근 발언들은 좀 거칠지 않나 싶을 만큼 직설적이다. 하지만 전부 허 회장의 소신은
아닌 것 같다. 법인세 감세 철회, 초과이익공유제,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 강화 등을 둘러싼 재계의 불만을 대변해 허 회장이 `총대'를 메고 나선 형국이다.
정치권은 여야를 불문하고 허 회장의 `작심 발언'에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의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서민에 우선 순위를 두고 움직이는데 무원칙하다고 폄하하는 것은 편협한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이용섭 대변인도 "고물가와 전세대란에 서민들은 한숨으로 날을 지새는데 세금 안 깎아준다고 볼멘소리 하는 재벌은 어느 나라 기업이냐"고 비난했다. 정치권이 강하게 나오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반(反) 포퓰리즘'을 표방한 재계의 공세가 그만큼 신경에 거슬린다는 얘기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반값 등록금, 법인세 감세 철회 같은 자칭 `친서민 정책'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재계의 공격에 어물어물 대응하다가는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계심리가 작동한 듯하다.
서민을 위한다고 하는 `무상복지 시리즈'에는 무상급식, 무상의료와 같이 `반값 등록금'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구상들도 포함돼 있다. 실제로 무상급식의 시행을 놓고 서울시와 시의회가 첨예하게 맞서 주민 찬반투표를 앞두고 있다. 물론 순수하게 친서민 정책을 편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선거가 다가오면서, 천문학적 재원을 필요로 하는 복지 구상들이 `공짜'라는 상표를 달고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는 점이다. 정부나 정치권에 `을(乙)'의 입장인 재계가 노골적으로 반기를 든 것도 그럴 만한 틈이 보였기 때문이다. 상당 부분 `표(票)퓰리즘'으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무상복지 정책의 한계가 바로 그것이다. 허창수 회장의 발언으로 불거진 정치권과 재계의 논쟁이 지겨운 `밥그릇 싸움'의 재연으로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치권은 차제에 `재계의 버릇'을 고쳐주겠다는 기세다. 국회 지식경제위는 29일로 예정된 `대ㆍ중소기업 상생 공청회'에 허 회장과 주요 경제단체장들을 출석시킬 방침이라고 한다. 겉으로는 시시비비를 따져 보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친서민 정책'을 포퓰리즘으로 몰아붙인 재계를 혼내주는 자리가 되기 쉽다. 그런 분위기를 예상해선지 허 회장 등은 모두 공청회를 보이콧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국회 지경위는 더 세게 으름장을 놓고 있다. 공청회를 청문회로 격상하고 그래도 나오지 않으면 국회법에 따라 고발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안을 놓고 공개석상에서 맞붙기는 양측 모두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막상 대놓고 지적하려고 들면 아픈 구석들을 양쪽 다 안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우선 누르고 보려는 듯한 정치권의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행태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재연됐다. 안타깝게도 이런 자세로는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 해결점을 찾기 어렵다. 최근 한나라당이 발표한 `반값 등록금' 대책에서도 나타났듯이 재원확보 방안이 구체화되지 않은 무상복지 정책은 포퓰리즘 논쟁을 피하기 어렵다. 지금 서민복지를 앞세운다고 해서 미래의 정책실패와 그 후유증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정치권은 지금부터라도 선심성 구호를 자제하고, 구체적 실행을 담보하는 복지정책 개발에 힘써야 한다. 자신들의 문제는 외면한 채 조금이라도 정책적 불이익이 예상되면 반대하기에 급급한 재계의 기회주의적 태도도 볼썽사납기는 마찬가지다. 서민과 중산층의 경제적 고통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마당에 법인세 감세 철회, 공정거래위 조사 강화 등을 비판하는 것이 일반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가진 자'들의 오만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을 재계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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