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민항기 `오인 사격' 덮고갈 일 아니다
송고시간2011-06-21 16:50
<연합시론> 민항기 `오인 사격' 덮고갈 일 아니다
(서울=연합뉴스) 지난 17일 발생한 해병대 초병들의 민항기 `오인 사격' 사건은 우리 군 방위 태세에 적지 않은 허점들이 감춰져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공교롭게도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이 잔뜩 고조돼 있는 상황에 그런 일이 터져 국민의 안보 불안감도 덩달아 고조되는 분위기다. 그런데 사안의 심각성에 비해 우리 군의 대응은 지나칠 정도로 안일하다는 느낌을 준다. 일례로 군은 21일 현재 나흘이 지나도록 `초병들의 오인에 따른 돌발상황'이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 사건의 원인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재발방지 대책도 초병들에 대한 민간 항공기 식별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전부다. 국민의 걱정을 덜어줘야 할 군이 오히려 불안감을 부채질하고 있는 꼴이다.
한 마디로 우리 군은 이번에 국제적으로 큰 망신을 당했다. 국가의 위신이 크게 실추된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경계 근무중이던 해병대 초병들이 국내 민항기를 북한 공군기로 잘못 보고 100발 가까이 소총을 쐈다. 단순히 초병들이 실수했다고 둘러댄다 해서 덮어질 수 있는 성질의 사건이 아닌 것이다. 중국 등 해외 언론들도 이 사건을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 같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20일 "여객기를 사격한 병사의 행동이 규정에 부합해, 한국군은 이 병사를 처벌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하지만) 이틀이 지나도록 오인사격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국제뉴스 전문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20일 `여객기 총격 사건이 한국의 체면을 떨어뜨렸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남북 대치가 초목마저 적의 군대로 보이게 했다. 한국의 방공 수준이 의문시되고 있다"고 비꼬았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일간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19일 `남북간 긴장이 얼마나 고조돼 있는지를 이번 사건은 상징적으로 보여줬다'고 전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도 20일 "북한의 공세적 발표에서 기인한 이 사건은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면서 우려를 표시했다.
기왕에 당한 망신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더 큰 문제는 원인 규명과 대책 수립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초병들의 오인으로 생긴 돌발사건이라는 우리 군의 해명은 사실 사건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를 설명한 것에 가깝다. 물론 초병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대북 인접지역 초병들의 실수는 상상하기 어려운,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왜 그런 실수가 나왔는지, 연관된 시스템상의 문제는 없는지, 그런 실수를 방지하려면 어떤 보완책이 필요한지 등이 세밀히 검토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초병들의 오인 사격은 `정해진 지침에 따라 올바르게 대응한 것'이라고 강변한 우리 군의 태도는 빈축을 살 만하다. 사건의 본질을 정확히 인식해 철저한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려 하지는 않고, 당장의 불편한 상황을 모면하기에 급급해하는 듯한 인상이 짙다. 이런 식이라면 당장 내일 `제2의 오인 사격' 사고가 터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항상 그렇듯이 임시방편의 미봉책은 정답이 될 수 없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반성하는 것에서부터 해답을 찾아야 한다. 이번 사건의 경우 당장 해병대 초병들의 관측장비와 통신시스템에서 문제가 드러났다. 게다가 공군 중앙방공통제소(MCRC)와 해병대 간의 공조시스템도 원활히 작동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생길 때면 군사기밀 보호를 앞세워 무조건 감추려만 하는 군의 고질적 타성도 문제다. 군사기밀 보호를 등한시하라는 것이 아니다. 공공연한 사실까지 감추려 하는 구태를 버리지 않고는 `오인 사격' 같은 시스템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군이 엄격하면서도 합리적인 군인정신으로 재무장해 진정한 `강군'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1/06/21 16:5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