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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배 "장애.뇌출혈..시련딛고 희망 노래"

송고시간2011-03-09 07:20

<조덕배 "장애.뇌출혈..시련딛고 희망 노래">
투병 2년 만에 활동 재개…"신곡 발표하고 공연"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꿈에'를 부른 싱어송라이터 조덕배(52)의 인생은 참 드라마틱하다.
2살 때 찾아온 소아마비로 하반신 장애를 입었고, 2009년 뇌출혈로 쓰러지며 생사를 오갔다. 한번 겪기도 힘든 시련을 그는 두번이나 온 몸으로 이겨냈다.

2년간의 재활 치료 끝에 활동을 재개한 조덕배를 8일 방배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뇌출혈 투병 3개월 즈음 만났을 때 휠체어에 의지했던 그는 예전처럼 목발을 짚고 걸었다. 일그러진 표정에 어눌했던 말투도 꽤 온전한 발음으로 회복됐다.

투병으로 발매 직후 묻힌 9집 활동을 다시 시작했고 디지털 싱글로 낼 신곡 작업도 하고 있다. 오는 5-6월께는 후배들과 콘서트도 연다.

"세시봉 형님들도 건재한데 50대 초반에 '싸가지' 없이 너무 일찍 병치레를 했죠. 하하. 다시 기자와 마주앉아 인터뷰하는 게 기적같고 신기하네요. 제가 좀 수다스러워졌죠?"

말이 2년이지 그는 2천년 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전생에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길래 두번이나 시련이 찾아오나'란 절망에 어디서 뛰어내릴까도 생각했어요. 마약으로 감방에 갔다온 건 이 고통에 비하면 시련이 아니라 드라마의 한 꼭지에 불과하더군요. 그런데 가족과 팬들을 배반할 수 없었어요."

그는 인생을 두번 살게되며 절실하게 노래하고 싶었다고 했다. 또 무대로 돌아왔으니 다시는 내려가지 않겠다는 사명감도 든다며 강한 의욕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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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은 어느 정도 회복했나.

▲100% 완벽한 상태는 아니지만 성체 줄기세포 주사도 맞고 재활치료도 열심히 해 공연이 가능한 정도가 됐다. 뇌출혈은 무서운 병이다. 두통과 눈이 깜빡거리는 전조 증상이 있는데 나는 간과했다. 조영남 형이 뇌경색 초기에 병원에 가 완쾌된 소식이 정말 기뻤다. 지금도 투병 중인 방실이 씨가 빨리 회복되길 매일 기도한다.

--병상에서 지난 인생에 대해 여러 감정이 교차했을텐데.

▲필름을 거꾸로 돌리니 내 인생이 참 신비롭더라. 2살 때 소아마비가 와 죽을 목숨을 엄마가 살렸다. 부모 잘 만나 장애에 대한 의식없이 살았다. 보통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공부를 잘하는데 난 학창시절 공부를 해본 적도, 인생을 조심스럽게 살아본 적도 없다. 지킬&하이드, 아수라백작처럼 살았다. 하하. 그런 나에게 하나님이 음악이란 '달란트'를 줘 멋지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노래밖에 없더라.

--심경의 변화가 있었으니 향후 선보일 음악도 달라지나.

▲곡의 늬앙스가 달라질 것이다. 전에는 인생에 대한 반항, 그리움이 담겼지만 이제 희망이 더해질 것이다. 많은 분들이 슬플 때 내 노래로 위안받았지만 이제 삶의 희망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팝페라 스타일을 좋아해 그런 멜로디에 담을까도 생각 중이다.

--몸이 불편했는데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

▲중학교 2학년 겨울, 학교를 '땡땡이' 치고 혼자 용산역 인근 철우회관이란 극장에 갔는데 거기서 처음 스티비 원더의 음악을 들었다. 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이때 처음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타는 초등학교 때 처음 잡았고 중학교 때 DJ를 하는 친형을 따라 다방에서 음악도 즐긴데다 노래 잘한다는 소리도 들었으니 그 생각은 무척 자연스러웠다.

--선뜻 나서는 음반제작자가 있던가.

▲하하. 내 돈으로 제작해 1984년 1집 '사랑이 끝나면'을 냈다. 1집에 수록된 '나의 옛날 이야기'는 중3때 만든 곡이다. 수업 시간 한구석에서 짝사랑하던 여학생이 생각나 노랫말을 썼고 기타로 멜로디를 붙였다. 1집 준비 때 가사를 다시 보니 내 옛날 얘기더라. 그래서 '나의 옛날 이야기'란 제목을 붙였다. 한 선배가 '중학교 때 너처럼 발랑 까진 애는 처음 본다'고 했다.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은 뭔가.

▲아세아레코드에서 낸 2집 '꿈에'다. 당시 130만장이 나갔다. 이때는 '난 조덕배야'로 살았다. 평생 이렇게 잘 될 줄 알았다. 그래서 저축을 해본 기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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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로서 그런 전성기를 겪은 지라 요즘의 세시봉 음악 열풍이 반가울텐데.

▲1960-70년대를 주름잡은 세시봉 선배들은 싱어송라이터 창업 세대다. 당시는 문화 암흑기였기에 그분들이 지핀 음악의 빛은 더 밝게 빛날 수 있었다. 미국이었다면 그분들은 영웅 대접을 받고 살았을 것이다. 방송국도 그분들의 음악을 아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을 것이다.

--1980년대 가요계는 어땠나.

▲80년대에는 음악인들이 뭉칠 수 있는 응집력 있는 곳이 없었다. 세시봉 같은 라이브 클럽이 명동, 압구정동, 삼청동 등지에 많이 생겨났고 음악도 다양해졌다. 난 이때 주로 콘서트를 많이 했다. 600여 회 정도의 전국 순회공연을 했다. 밤 업소는 9년 전 어머니가 암 투병을 하셨을 때 병원비를 벌려고 시작했다.

--늘 어머니, 아내, 딸(중학생), 세 여자에게 미안해하는데.

▲초등학교 때 어머니는 한달에 보름씩 나를 업고 병원에 다니셨다. 어머니와는 전생에 원수였거나, 사랑했는데 이뤄지지 못한 인연이었던 것 같다. 이번 생에 절실하게 대가를 치렀으니 다음 생에는 아름다운 인연으로 만나고 싶다. 아내와 딸에 대한 미안함은 무대에서 멋지게 노래하는 걸로 보답하고 싶다. 그게 내 인생의 희열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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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을 재개하니 요즘 가요계도 눈여겨볼텐데.

▲아이돌 가수의 힙합과 댄스, 홍대 프로그레시브 음악, 트로트 등 옛날보다 장르가 무척 다양해졌다. 다양한 시도를 하는 후배들은 모두 귀엽다. 우리 때는 노래만 잘하면 가수가 됐는데 요즘은 초등학교 때부터 연습한다니 그 노력이 가상하다. 단지 방송 등 미디어가 특정 장르에 편향적인 게 아쉽다.

--아이돌 음악만 부각되는 시장이 아쉽다는 의미인가.

▲가수들에게 선배란 먼저 음악을 시작했을 뿐이다. 난 아이돌 가수와도 선의의 라이벌 관계라고 생각한다. 세시봉과 빅뱅도 눈에 보이지 않는 라이벌이다. 그래야 가요계가 발전한다.

--병마와 싸우는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성인이 돼 휠체어를 탄 강원래와 시각장애를 겪게 된 개그맨 이동우는 나보다 100배 더 힘들 것이다. 언젠가 원래가 '형님은 그 세월을 어떻게 견뎠냐'더라. '현대 의학으로 안되니 외계인을 기다리며 살았다'고 했다. 그 심적 고통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 생각을 바꾸니 세상에 대한 원망이 지워지더라. 어느 날 병상에서 서강대 고(故) 장영희 교수가 장애, 암과 싸운 인생사를 접하며 내가 새로 얻은 인생에 감사하게 됐다. 시련이 있어야 인생 아닌가.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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