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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10주기> ③ 필생의 대북사업은 '미완'

송고시간2011-03-09 06:07

<정주영 10주기> ③ 필생의 대북사업은 '미완'
실향민 정주영, 남북경협에 강한 열정
며느리가 물려받았으나 남북관계 악화 '암초'에 침몰 위기

(서울=연합뉴스) 정 열 기자 = 정주영 전 명예회장을 상징하는 또하나의 과업이 바로 대북사업이다.

고향이 북한(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인 정 명예회장은 사업가로서 이룰 수 있는 성과를 대부분 거둔 뒤인 말년에 이르러 대북사업의 개척과 성공에 여생을 바쳤다.

정 명예회장의 호 아산은 그가 태어난 마을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만큼 실향민인 정 명예회장은 고향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었다.

어린 시절 가난한 농가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 판 돈을 갖고 상경, 막노동판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기업가로 성공한 정 명예회장은 고향에 뭔가 보답하고 싶은 개인적인 소망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남북 양쪽에 도움이 되는 여러가지 남북경협 사업을 추진해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글로벌 경제체제에서 국제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민족사업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정 명예회장이 필생의 사업으로 여겼던 대북사업이다.

<정주영 10주기> ③ 필생의 대북사업은 '미완' - 2

정 명예회장은 금강산 관광사업를 비롯한 다양한 남북경협사업을 실현하기 위해 1989년부터 시작해 북한을 8차례나 방문했다.

정 명예회장의 방북은 1989년 민간인 최초로 북한을 방문해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한 의정서를 체결한 지 9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1998년 6월 역사적인 소떼몰이 방북 이후 본격화됐다.

당시 정 명예회장의 나이는 83세.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여생을 금강산 관광사업과 대북사업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일념으로 정력적인 활동을 펼친 정 명예회장은 소떼몰이 방북 당시 북측과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한 기본 합의를 한 뒤 같은 해 10월에는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한 최종 합의를 하기에 이른다.

김정일 면담 이후 금강산 관광사업은 빠르게 진행돼 같은 해 11월18일 금강산 관광선이 첫 출항을 했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반세기 만에 남측의 국민들이 북녘 땅을 밟게 됐다는 상징적인 의미 외에도 본격적인 남북교류 협력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남북교류사에 큰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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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종합개발사업이 본격화되면서 현대의 남북경협사업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정 명예회장은 1999년 2월 5차 방북 당시 ▲남북공동영농사업 ▲평양체육관 건립 ▲남북통일농구대회에 대해 합의했고, 이어 같은 해 3월 6차 방북 때는 공단개발사업을 논의하는 등 다양한 남북경협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특히 개성공단개발사업은 정 명예회장이 1999년 10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2차로 만나 논의하면서 공단부지선정 등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를 이뤄냈다.

이처럼 정 명예회장이 혼신을 바쳐 일궈낸 대북사업은 그의 5남인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이어받았다가 지금은 다시 정몽헌 회장의 부인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이끌고 있지만 일련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사실상 고사상태에 처해있다.

DJ 정부 시절 남북화해 분위기에 힘입어 태동한 대북사업은 참여정부 들어서면서 이른바 '대북성금' 논란에 휩싸였고 급기야 정 명예회장에게서 대북사업의 바통을 물려받았던 정몽헌 회장의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큰 위기에 처했다.

대북사업 자체도 기대에 못미친 관광객 수와 남북관계 악화라는 암초에 부딪히면서 사업주체인 현대아산이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는 등 순탄치 못한 과정을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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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2008년 7월11일 발생한 관광객 박왕자 씨 피격 사망사건과 천안함 폭침 사건 등 현 정부 들어서 잇따라 발생한 악재는 대북사업을 고사직전까지 몰아넣었다.

현대아산은 그동안 3천24억원의 매출 손실을 봤고, 관광 중단 전 1천84명에 달했던 직원도 수차례의 구조조정으로 현재 310여명으로 70%나 줄었다.

현대아산은 국내 건설 부문의 사업을 확대하는 한편 다양한 신사업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지금 당장 뚜렷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북사업의 특수성상 남북 당국간 대화와 화해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이상 개별기업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대북사업에 대한 현정은 회장의 의지가 확고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어렵다고 대북사업을 포기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사업재개를 위한 여건이 마련될 때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남아있는 것'이 당면한 목표"라고 말했다.

passi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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