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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세시봉은 서양 팝의 선교사">


"인생 첫 여자 세시봉서 만났죠"..내달 '세시봉 그후 45년' 콘서트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화가 겸 가수 조영남(66)은 요즘 잘 팔린다. '세시봉 친구들(송창식, 윤형주, 김세환)'과 지난 추석에 이어 올해 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1960-1970년대 포크 음악 세대가 재조명되며 섭외 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다음 달 10-11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세시봉 그후 45년:조영남 콘서트'를 앞둔 그를 22일 청담동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처음엔 방송 출연을 고민했어요. 노인네들이 노숙자처럼 기타 메고 나가 노래하는 것 같아서요. 그런데 방송 이후 상황이 아주 달라졌죠. 불편할 만큼 유명해졌어요. 허허. 백화점에 갈 때 모자를 눌러쓰고 안경을 벗고 머플러를 둘둘 말아도 사람들이 알아봐요. 그런데 덕분에 공연 티켓은 잘 나가네요."

그러나 그는 60대 통기타 노장들을 향한 세상의 '요란'에 거창한 의미를 붙이지는 않았다.

"넥타이 폭이 좁아졌다가 지루해지면 넓어지는 것 같은 유행이죠. 젊은 친구들의 기계음 노래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니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가 지지를 받은거예요. 반짝 화제집중이어도 괜찮아요. 그럴 가능성도 높고. 우리야 뭐 늙었으니 다시 소외돼도 그것때문에 강에서 떨어져 죽고 그러진 않아요. 딸이 평소 쳐다보지도 않던 통기타를 빌려달라며 기타 학원에 간 것만 봐도 성공 아닌가요?"

<조영남 "세시봉은 서양 팝의 선교사"> - 2

◇"세시봉은 서양 팝 알린 선교사" = 조영남이 무교동 음악감상실 세시봉 무대에 처음 오른 건 1966년. 그러나 그는 세시봉의 첫 무대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자신에 대한 송창식, 윤형주, 이상벽의 증언이 모두 달라 여러 '설'이 있단다.

"저는 '기록맨'인 윤형주의 증언을 신뢰해요. 송창식과 저는 엉터리거든요. 한 언론사 기자와 '세시봉 시말서'(가제)란 책을 쓰는데 요즘 친구들에게 그때의 기억을 물어보고 다녀요. 윤형주도 한국 포크 음악의 역사에 대한 책을 쓰고 있더군요."

당시 세시봉에는 가수뿐 아니라 소설가 최인호를 비롯해 시인, 배우 등 예술인들이 모여들었다. 그는 이미자, 나훈아, 남진이 보수 음악을 하는 A그룹이었다면 자신들은 진보 음악인 서양음악을 하는 B그룹이었다고 했다.

"기독교가 조선 말 선교사를 통해 들어왔듯이 팝은 미8군과 세시봉을 통해 직수입 됐죠. 세시봉은 진보 음악이 태동한 곳이니 팝의 선교사쯤 될겁니다. 이곳에서 팝을 많이 부른 저는 대학 시절 미8군에 가장 먼저 진출해 돈을 잘 벌었죠."

그는 "세시봉에서 누가 가창력으로 손꼽혔느냐"는 물음에는 손사래를 쳤다.

"그거 대답했다가 무슨 날벼락을 맞으라고. 우린 성격처럼 목소리도 달랐으니 순위를 매길 수 없어요. 김세환이 방송에서 우리 정의를 참 잘 내렸어요. 제겐 '여자 관리 잘해라', 송창식에게는 '밤낮 좀 가려라', 윤형주에겐 '설교 좀 그만하라' 했는데 딱이예요. 미국, 울릉도로 정처없이 왔다 갔다 하는 이장희는 스스로 '실패한 농부'래요."

이런 음악 동지들과 교감한 곳이기도 하지만 그에게는 세시봉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또렷한 기억 하나 있다.

"제 인생 첫 여자(배우 윤여정)를 세시봉에서 처음 만났어요. 거기서 중요한 여자를 만나 결혼해 13년을 살았죠. 그 여자는 세시봉 남자들 가운데 홍일점이었는데 정말 독보적이었어요.(그는 민폐가 될 것 같다며 윤여정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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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같은 인생보다 보편적인 삶 꿈꿔" = 이야기를 나눈 조영남의 집은 공시지가 100억원 대로, 연예인 집 중 가장 비싼 곳으로 언론에 보도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집에 들어서자 한눈에 들어온 건 넓은 거실과 복도 바닥에 빼곡히 줄지어 선 그의 미술 작품들. 밀레의 '이삭줍기'와 '만종', 르네 마그리트의 '담뱃대'를 패러디한 그림들엔 그의 입담처럼 위트가 넘쳤다.

그는 이번 콘서트에서도 공연장 로비에 화투, 바둑알 등을 모티브로 한 대표작 뿐 아니라 이경실, 최유라, 박미선, 이성미 등 연예인 지인들을 직접 그린 작품을 전시한다.

그는 거실에서 미완성 작품이 놓인 이젤 하나를 가리켰다.

"언젠가 신정환이 아픈 다리를 끌고 찾아와 100년 된 화투 두 목을 선물해줬어요. 그걸로 이상의 '오감도'를 패러디했는데 가장 최근 작품이죠."

그는 집안과 지하 창고에 몇작품을 소장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세어보지 않았고 숫자에도 약하기 때문이다.

"제가 숫자를 싫어해요. 통장에 돈이 얼마 있는지도 매니저만 알고, 몇년도에 뭘했는지도 모르죠.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전 수학자, 물리학자가 돼보는 게 꿈이에요. 아인슈타인, 리처드 파인만 같은 사람요. 화투를 전혀 못 치는데 화투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죠. 하하."

거실에서 눈에 띈 또 하나는 덩그러니 놓인 탁구대. 지난해 초 뇌경색 초기로 병원 치료를 받은 그는 6개월 전 지인이 치매 방지에 최고라며 추천해 탁구를 시작했다. 그는 자동 기계에서 빠른 속도로 공이 날아오자 능숙하게 '리시브'를 했다.

건강을 챙기는 모습에 60대란 나이가 주는 부담이 있느냐고 물었다.

"60대는 기운도 빠지고 열정도 줄어들지만 적절히 노련해져 사태 파악을 잘하는 안락주의자가 되죠. 전 고흐, 이상처럼 예술가는 극단적인 인생을 살 때 찬사를 받는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붕 뜨고 한방에 훅 가는 건 해봤으니 전 지금 보편적인 삶이 가장 위대하다는 사실을 추종해요."

보편의 삶을 위해 그는 늘 새로운 사랑을 꿈꾼다.

"그것 외에 꿈꿀 게 뭐가 있을까요. 얼마 전 영화 '러브 앤 드럭스(Love and Drugs)'를 봤는데 그런 사랑 한번 해보고 싶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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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mi@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1/02/23 14:17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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