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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김정은의 `사람들'> ⑤ 최룡해 당 비서

송고시간2010-10-17 05:05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에서 당 중앙기관 성원 및 제3차 노동당 대표자회 참가자와 한 기념촬영 사진. 김정은 바로 뒤가 최룡해 당 비서이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에서 당 중앙기관 성원 및 제3차 노동당 대표자회 참가자와 한 기념촬영 사진. 김정은 바로 뒤가 최룡해 당 비서이다.

기념사진서 김정은 바로 뒷자리‥`대장호칭'도 함께 받아
`혁명2세대' 선두로 승승장구‥김정일한테 직언할 만큼 신임 두터워

(서울=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 당 정치국 후보위원, 당 비서, 당 중앙군사위원, 인민군 대장, 당 중앙위원.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였던 최룡해(60)가 지난 9월28일 제3차 조선노동당 대표자회에서 일거에 거머쥔 직함들이다. 그래서인지 군의 최고 실력자로 떠오른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직)과 더불어 최룡해를 이번 당대표자회의 `최고 스타'로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이런 직함들이 아니더라도 그가 김정은 후계체제의 핵심 `실세'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전문가들은 대략 두 가지 근거를 대는데, 첫째가 `인민군 대장' 타이틀이고, 둘째가 대외적으로 김정은의 모습을 처음 드러낸 당대표자회 직후 기념사진이다.

먼저 최룡해는 지난달 27일 김정은이 후계 공식화의 첫 수순으로 `인민군 대장' 계급을 달 때 김경희(김정일 위원장 여동생), 김경옥(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과 함께 대장 칭호를 받았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김정은 후계를 보좌할 세 사람 중 하나로 뽑힌 셈이다.

최룡해는 또 당대표자회 직후 김 위원장과 김정은이 다른 회의 참석자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에서, 첫 줄에 앉은 김정은의 바로 뒤에 서 눈길을 끌었다. 이런 기념사진에서 김 위원장의 좌우와 바로 뒷자리를 아무나 차지할 수 없듯이 후계자 김정은의 바로 뒷자리도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분석이 많이 나왔다.

이처럼 김정은 후계의 핵심으로 부상한 최룡는 과거 김위원장 체제에서도 만만찮은 위세를 떨쳤다.

고 김일성 주석의 빨치산 동료 최현(1907∼1984년)의 차남인 그는 북한에서 매우 중시하는 `출신성분'부터 최상류층에 속한다. 김책(전 전선사령관)의 아들 김국태(86.당 검열위원장)나 오중성(전 김일성부대원)의 아들 오극렬(79.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김 주석과 젊은 시절을 함께 한 부친의 후광으로 최고 권력층에 무난히 진입한 것과 비슷하다.

북한 김정일 북방위원장이 지난달 28일 후계자인 셋째 아들 김정은과 함께 대장 칭호를 올려 준 최룡해.

북한 김정일 북방위원장이 지난달 28일 후계자인 셋째 아들 김정은과 함께 대장 칭호를 올려 준 최룡해.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를 거쳐, 혁명 유자녀 교육기관인 만경대혁명학원을 나온 최룡해는 그후 정치적 외풍에 휘말린 한두 차례를 제외하고 큰 굴곡없이 출세가도를 달려왔다.

최룡해의 약진은 노동당의 핵심 외곽조직인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사로청.現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에서 시작됐다. 불과 서른여섯 때인 1986년 사로청 위원장 자리를 꿰차 1998년까지 무려 12년간 500만 명 규모의 이 거대조직을 진두지휘했다.

최룡해가 현재의 `보스' 격인 장성택(김 위원장 매제.당 행정부장)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도 사로청 위원장 시절로 추정되는데 당시 장성택은 사로청을 관장하는 당 청년사업부를 맡고 있었다.

최룡해는 사로청 위원장을 하면서 북한의 청년층에 유일영도체제를 집중 학습시키는 등 김정일체제의 기반을 다지는데도 크게 기여했으나 1998년 조직 내부의 비리사건에 연루돼 해임됐다.

당시 상당수 연루자들이 처형당할 정도로 사건의 파문이 컸지만 최룡해는 평양시 상하수도관리소 당 비서로 내려가는 정도로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그러다가 5년 후인 2003년 8월 당 총무부 부부장으로 복귀했으나 이듬해인 2004년 장성택이 분파행위로 숙청될 때 다른 측근들과 함께 밀려나는 아픔을 다시 겪었다.

이런 과정에서 드러나듯이 최룡해는 이미 당시부터 `장성택 라인'의 핵심이었고 그런 두 사람의 관계는 지금까지도 끈끈이 유지되고 있다.

비근한 예로 2005년 말 장성택이 당 행정부장으로 복권하자 최룡해는 바로 이듬해 3월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로 발탁됐다. 최룡해는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 때 황해북도 당비서 자격으로 군사분계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영접하기도 했다.

최룡해에 대한 김 위원장의 신임도 남달라, 올해 초 김 위원장이 주재한 도당 책임비서 회의에서 화폐개혁의 폐해를 직언한 것이 최룡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김 위원장의 두터운 신임에 장성택의 든든한 후원까지 받고 있는 최룡해이기에 김정은 후계체제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특히 아직 60세로 한창 일할 나이인 그이기에 10년 넘게 사로청을 이끌었던 경험을 토대로, 당과 군의 요소요소에 포진한 `혁명2ㆍ3세대'와 신진 세력을 결집해 김정은 후계체제를 공고히 떠받치는데 앞장설 것으로 관측된다.

좋은 출신성분으로 젊을 때부터 권력의 맛을 봐서인지 최룡해의 성품에 대해서는 좋지 않은 설들이 많이 나돈다. 버릇이 없고 아부를 잘 한다는 말이 많이 나오고, 한 때 김 위원장한테 `기쁨조'를 조달하는 채홍사였다는 소문도 있다.

na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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