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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독 20년> ③한반도 통일준비 현주소

송고시간2010-10-11 06:00

찰리 검문소
찰리 검문소

(베를린=연합뉴스) 이귀원 기자 = 분단시설 동.서 베를린을 연결하던 유일한 관문이었던 체크포인트 찰리.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관광명소로 부상했다. 2010.10.11
lkw777@yna.co.kr

한반도 분단, 동·서독보다 훨씬 `견고'
사전준비 절실..통일세 사회적 합의 관건
인도적지원.경제격차 해소.외교노력 중요

(베를린.드레스덴=연합뉴스) 이귀원 기자 = "서랍을 열어보니 비어 있었습니다."

드 메지에르 독일 내무장관은 브레멘주 주최로 지난 3일 브레멘시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통독 20주년 정부 공식 기념식장에서 현인택 통일부장관에게 1990년 10월3일 통독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메지에르 내무장관은 이어 "통일에 대비해 정치적으로는 좀 준비했지만, 경제적, 사회적 준비가 안 돼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 해 전인 1989년 11월9일 베를린장벽의 붕괴를 시작으로 통일이 급진전했지만, 막상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막막했던 독일인들의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동시에 지구 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 역시 통일을 위해서는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조언이었다.

실제 독일은 통일 이후 경제적으로 낙후됐던 동독 지역에 2조유로 이상의 막대한 자금을 지원해야 했고, 지금도 구 동독지역에 대한 지원은 계속되고 있다.

덕분에 구 동독지역의 1인당 국민총생산(GDP)는 1991년 서독 지역의 43%에서 지난해에는 73% 수준까지 올라오는 등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그러나 동·서독 지역 경제적 격차는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양측 주민 간의 이질감 등 사회적 통합도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독일 통일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
독일 통일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

(베를린=연합뉴스) 이귀원 기자 = 독일 분단 시절 동.서 베를린의 경계였던 브란덴부르크 문. 통독 이후 통일의 상징적 장소가 됐다. 2010.10.11
lkw777@yna.co.kr

내적 통합이 통독 20년째인 아직도 진행 중인 것이다.

이 때문에 한반도 통일준비도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 독일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통일을 경험한 독일은 물론 국내외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더구나 한반도 분단은 동서독 경우보다 훨씬 견고하고, 오래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통일준비의 중요성이 더해진다.

한반도 현실은 그러나 북핵 문제에다 천안함 사태까지 겹쳐 최악의 남북관계가 계속되는 등 통일논의 자체가 매우 어색해진 상황이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삼남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화되면서 한반도 정세는 더욱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통일세를 언급하며 통일 논의에 불을 댕긴 것은 우리 내부의 통일준비 차원에서 새로운 전기가 되고 있다.

독일이 통일 이후 구 동독지역 재건을 위해 2조유로 이상의 자금이 필요했던 점을 감안하면 우리 역시 정확한 통일비용 추산과 사회적 합의를 통한 재원마련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통일세 언급을 계기로 각계에서 통일재원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정부도 주무부처인 통일부를 중심으로 세부 추진방안을 마련 중이다.

통일재원 방안에는 기금 등 다양한 형태가 있을 수 있지만, 세금을 통한 재원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사회적 합의와 이를 위한 정부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물론 남북관계가 최악을 치닫는 상황에서 통일세를 언급한 것이 북한의 붕괴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부에서 일고 있고, 북한도 반발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앞으로 대북정책에 대한 `진정성'으로 우리 국민은 물론 통일 당사자인 북한을 설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적극적인 대북 인도적 지원도 통일준비의 중요한 일환이다.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전승국인 영국과 프랑스, 구소련 등 전승국의 유보적 또는 반대 입장에도 독일이 통일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통일에 대한 강한 열망과 특히 동독 주민들이 서독으로의 통일을 선택한 것이 강한 동인이 됐다.

베를린장벽 보존된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베를린장벽 보존된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베를린=연합뉴스) 이귀원 기자 = 베를린 장벽이 그대로 보존된 독일 베를린 시내의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세계 21개국의 작가 118명이 벽화를 그려 넣어 조성된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는 매년 5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베를린의 명소가 됐다. 2010.10.11
lkw777@yna.co.kr

한반도 역시 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북한 주민들이 남측을 주저 없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지속적인 인도적 지원이 중요한 지렛대가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대북 인도적 지원은 지원물자의 투명성 제고와 함께 더욱 과감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대북 인도적 지원은 북핵 문제와는 떼어내 더욱 적극적인 `투 트랙'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적지 않다.

교류확대를 통한 남북 간 이질감 해소도 북한 주민의 `민심'을 얻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다.

남북 간 경제력 격차 해소도 통일 이후 연착륙할 수 있는 필수 요건이다.

통일 당시 동독의 경제력은 서독의 1/3수준이었지만 통일독일은 구 동독지역의 재건에 2조유로라는 막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현재 남북 간 경제력 격차는 통일 당시 동서독보다 훨씬 벌어져 있다. 2008년 북한의 GDP는 248억달러로 한국의 2.7% 수준이며, 1인당 GDP는 북한이 1천달러로 한국의 5.5% 수준에 불과하다.

북한의 경제 재건에는 사회간접자본(SOC) 등에 대한 국내외 투자유치, 개성공단 같은 남북 경제협력사업 확대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남북 간 경제력 격차 해소를 위한 대북 지원을 위해서는 개혁개방, 비핵화를 비롯해 당장 남북관계 걸림돌로 작용하는 천안함 사태 등에 대한 북한의 태도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북한의 전향적인 자세와 함께 이를 이끌어내기 위한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대북 정책이 필요하다.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를 상대로 한 `통일외교'도 거쳐야 할 필수 관문이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미국을 제외한 영국, 프랑스, 구소련 등 전승국들은 독일 통일에 대해 유보적 또는 반대 입장이었지만 콜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한 독일 정부의 적극적인 외교전으로 동의를 이끌어냈다.

`통일 한반도'가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 이바지하고, 주변 4강의 이익에 반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설득하는 외교적 전략과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천안함 사태 과정에서 중국이 북한을 사실상 두둔하고 나섰던 점을 감안하면 통일을 위한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실감케 하고 있다.

lkw77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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