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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진단> 기업농 육성이냐, 가족농 지원이냐?

송고시간2010-10-20 06:36

강원도 철원군의 들녘별 농업공동체
강원도 철원군의 들녘별 농업공동체

(철원=연합뉴스) 들녘별 농업공동체인 강원도 철원군의 '동송 고품질 기능성 쌀생산단지'. 52농가가 120ha를 공동경작하면서 비용절감 효과를 보고 있다. <<지방기사 참고, 철원군 제공>> 2010.10.20
hysup@yna.co.kr

농업법인 증가 속 '경쟁력 있는 규모' 본격 논쟁

"기업농이 대외경쟁력" vs "고소득경영체 93%가 가족농"

(창원=연합뉴스) 임형섭 기자 = 강원도 철원군에서 벼농사를 짓는 신명철(40) 씨는 지난해 농사 비용을 예년에 비해 10%나 줄였다.

정부가 농업경쟁력 제고를 위해 2008년부터 추진한 들녘별 농업 공동경영체의 효과를 톡톡히 본 것.

2007년까지 10ha 남짓한 땅을 경작하던 신씨는 2008년 마을 주민들과 함께 공동농장 법인인 '동송 고품질 기능성 쌀생산단지'를 설립했다.

이 생산단지에는 52농가가 참여해 120ha를 함께 경작하고 있다.

신씨는 "병충해 방제작업을 공동으로 하다 보니 비용이 10%가량 줄었고 일손에도 여유가 생겼다"며 "마을 주민들 중 참여자를 계속 늘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들녘별 농업 경영체를 운영하고 있는 곳은 현재 전국적으로 30곳(4천500여ha)으로, 정부는 장기적으로 200곳까지 경영체를 늘릴 계획이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따로따로 경작하는 것보다 법인화를 통해 공동경영을 하는 것이 효율성이 높은 것은 자명한 일"이라며 "우리 농가의 체질을 경영마인드를 바탕으로 한 기업형 농업 위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원도 철원군 들녘별 농업공동체
강원도 철원군 들녘별 농업공동체

(철원=연합뉴스) 들녘별 농업공동체인 강원도 철원군의 '동송 고품질 기능성 쌀생산단지'. 52농가가 120ha를 공동경작하면서 비용절감 효과를 보고 있다. <<지방기사 참고, 철원군 제공>> 2010.10.20
hysup@yna.co.kr

◇늘어나는 농업법인…"경쟁력 강화?"

전통적으로 한국 농촌은 소규모 농사를 짓는 가족농이 주축을 이뤄 왔지만, 산업구조가 발달하면서 회사 형태를 갖추고 농사를 짓는 '농기업'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전국의 농업법인은 2000년 5천208개에서 2007년에는 5천520개, 2008년 말에는 6천306개로 늘었다.

사업규모의 증가세는 더욱 두드러져, 전체 농업법인의 연간 매출규모는 2000년 1조 7천억원, 2007년 4조 6천600억원, 2008년 말에는 5조 7천900억원으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연 매출액이 10억원을 넘는 법인의 수도 2000년 332개에서 2007년 876개, 2008년 말 1천31개로 늘었다.

농림부 측은 "최근 농업회사법인에 대한 출자 완화와 농지소유 완화 등이 빠른 성장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농가의 기업화, 규모화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며 "앞으로도 농기업의 창업 및 투자유치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같은 기업농 육성정책은 현 정부 들어 가장 눈에 띄는 농업정책 중 하나다.

'기업농 육성'이라는 말은 흔히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현재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가족농들이 모여 법인을 설립, 경영체로 탈바꿈하는 '농기업'을 육성한다는 의미와 대규모 자본이 농업회사를 설립한다는 것 등이다.

'가족농 지원' 강조하는 전찬익 박사
'가족농 지원' 강조하는 전찬익 박사

(창원=연합뉴스) 임형섭 기자 = 성급한 영농 규모화.기업화 보다 가족농 지원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농협경제연구소 전찬익 농정연구실장. <<지방기사 참고>> 2010.10.20
hysup@yna.co.kr

농림부 조재호 농업정책과장은 "현재 정부의 기업농 육성정책은 가족농들을 경영체로 육성하고 영농을 규모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고, 대자본이 농가에 진출하도록 지원하는 정책은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이 같은 정책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영마인드와 생산력 혁신 등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가족 형태보다는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기업'형태의 농업이 주를 이뤄야 한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최근 일부 전문가들이 정부의 기업농 위주의 정책에 반대하고 오히려 소규모 가족농을 배려하는 정책에 집중해야 한다고 맞받아치면서 논쟁이 일고 있다.

◇경영 효율성, 기업농 vs 가족농

최근 "대규모 기업농보다 소규모 가족농이 더 경쟁력이 강하다"는 내용의 조사결과가 발표돼 많은 관계자들이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 바 있다.

서종석 전남대 교수와 김사균 농촌진흥청 연구사는 최근 열린 농정연구센터 세미나에서 '고소득농업경영체의 지속가능 육성 정책에 관한 연구'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고소득농업경영체는 농업소득 1억원을 웃도는 농업인과 영업이익 2억원 이상인 농업회사나 영농조합법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런데 서교수 등의 조사에 따르면 2008년 5월 기준 고소득농업경영체는 7천681개인데 이 가운데 93%가 개인이 운영하는 가족농이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대규모 기업농 육성이 농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방법인지에 대한 논쟁에 불이 붙었다.

기업농 육성책에 찬성하는 전문가들은 대규모 영농이 이뤄지면 '규모의 경제' 논리에 따라 효율성이 높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정호 박사는 "가족농으로 경작이 가능한 면적인 10ha 안팎인데, 경작에 필요한 농기계 구입값만 해도 평균 1억 5천만원이 들어간다"며 "경제성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김 박사는 "손익분기점을 고려하면 40ha 이상을 하나의 단위로 경작해야 한다"며 "최근 늘어나고 있는 농업회사 법인 등은 150~300ha를 경작하는데, 이런 중소기업 수준의 농기업이 성장해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95년부터 농산물 실질가격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 경영수지의 악화를 피하려면 규모를 늘려 총소득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며 "이는 가족농이 아니라 기업농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영농 규모화' 강조하는 김정호 박사
'영농 규모화' 강조하는 김정호 박사

(창원=연합뉴스) 임형섭 기자 = '영농규모화'를 통한 체질개선으로 농가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정호 박사. <<지방기사 참고>> 2010.10.20
hysup@yna.co.kr

김 박사는 "농지개혁 당시 영농규모가 농가당 0.8ha였는데, 그 후 60년이 흘렀지만 농가당 1.5ha로 늘어난 것에 그치고 있다"며 "구조개선이 상당히 더딘 편이어서 정부가 더 적극적인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이에반해 농협경제연구소 전찬익 농정연구실장은 "현재 한국의 농지를 살펴보면 소규모 경작지를 농민들이 이곳, 저곳에 분산해서 소유하고 있다"며 "이를 공동으로 경영할 경우 농기계 이동거리 등을 고려하면 효율성이 오히려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장기적으로는 규모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재 토지분산 상태로는 갑작스런 전환은 오히려 독이 될 것"이라며 "서구의 사례를 봐도 구조개선은 100~150년 가량 걸려 이뤄졌다. 우리도 지금 계획보다 훨씬 장기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조사자료를 발표한 전남대 서종석 교수는 "높은 소득을 올린 농업 경영체는 기업농이 아닌 가족농이었다"며 "가족농 중심 농업구조를 무리하게 뜯어 고치기 보다는 정책자금 지원 등을 통해 가족농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FTA 시대 강자는 어느쪽?

점점 시장이 개방되는 상황에서 식량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농촌 구조가 기업농 중심이 돼야 할지, 가족농 중심이 돼야 할지에 대한 논쟁도 뜨겁다.

기업형 농업 옹호론을 펴는 전문가들은 "쌀 개방이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면 여기서 한국 농업을 지키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크고 튼튼한 경영체들"이라고 주장한다.

농업법인의 경우 의사결정에 있어서도 비교적 신속성이 있어 변화하는 경영환경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으며 한시가 다르게 변화하는 농촌현장에서 이런 유연성은 큰 힘이 된다는 것이다.

반면 이와 정반대로 개방화 시대에 식량안보를 지키는 것은 가족농이 유리하다는 주장도 있다.

농협경제연구소 전찬익 실장은 "이윤 추구를 목표로 하는 기업의 경우에는 쌀 농사에서 이윤이 나지 않을 경우 바로 포기하는 경우가 생길 것"이라며 "하지만 가족농의 경우에는 이윤이 나지 않더라도 예부터 내려온 쌀농사의 가치 등을 생각해 더 버티는 사례가 많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 실장은 "이는 가족농의 경우가 오히려 가격변화에 적응력이 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이들을 보조해 주는 방법으로 식량 주권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료사진>
<자료사진>

전국농민회총연맹 곽길자 정책국장 역시 "중국과 FTA가 체결된다면 규모화의 논리로는 절대 대적할 수 없다"며 "오히려 농업은 공공재적 측면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 농민들을 보호하면서 쌀 자급을 지켜낼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옳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업농이 농업의 '다원적 기능' 위협?

기업농 확산정책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는 전문가들 중에는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정책을 편다면 가족농의 존속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다른 가치들을 잃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충북대 서상태 교수는 "경쟁력 확보라는 측면에서 기업형 농업에 대한 기대가 많지만, 이로 인해 농업ㆍ농촌이 갖고 있는 '다원적 기능'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다원적 기능이란 식량생산외에 전통문화의 보존과 계승에 기여하는 기능, 국민정서 함양에 이바지하는 기능, 환경 보호에 보탬이 되는 기능 등을 통털어 말한다.

그는 "농촌이 기업화된다는 것은 농민들이 노동자가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외부에서 기업자본이 들어오면 농민들은 임금 노동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꽤 높다"며 "이는 이제까지의 '농촌다움'과 거리가 먼 것으로 농촌이 지닌 가치들이 통째로 무너질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농의 곽길자 정책국장은 "기업농 확산은 정부가 주장하는 친환경 농업 육성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곽 국장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윤을 우선시 하는 기업농들은 고비용ㆍ저수확인 친환경 농법을 사용하기 어렵다"며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농촌이 지켜온 '자연'을 훼손시키는 일도 비일비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농업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뿌리나 다름없다. 농업에 시장논리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편협한 사고"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조재호 농림부 농업정책과장은 "물론 기업형 농가가 늘어나면 일부 소규모 농가의 경우 경쟁에서 밀릴 수는 있겠지만, 직불금이나 농협 작목반 운영, 들녘별 농업경영체 조직 등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도 많이 마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조 과장은 또 "영농 규모화가 친환경 농업과 배치된다는 생각에도 동의하기 힘들다"며 "아직 활성화되진 않았지만 대규모 농업을 하면서도 친환경 농업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려 노력하는 농가들도 많다"고 반박했다.

hysu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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