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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수백만 인도인 아사시켰다"

"처칠,수백만 인도인 아사시켰다"

(뉴델리 AFP=연합뉴스) 제2차대전 당시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의도적으로 수백만명의 인도인이 굶어죽게 만들었다는 주장이 한권의 책으로 저술돼 나왔다.

이 책의 저자는 처칠이 인종적 증오심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마드후수리 무케르지는 "처칠의 비밀 전쟁"이라는 제목의 이 책에서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많은 자료를 제시하며 처칠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 책은 전시라 식량 수송에 쓸 배가 없었다는 처칠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며 인도 주재 영국 관리들의 필사적인 식량 요청을 처칠이 묵살했다는 증언들을 소개하고있다.

벵갈에는 1943년 대기근이 들어 300만명이 아사하는 참극이 빚어졌다.

일본이 벵갈 지방에 쌀을 수출해온 미얀마를 점령하고 인도 식민지배자인 영국인들이 군대와 징용근로자들을 위한 식량을 대량 비축하고 난 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 굶주림으로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수많은 사람들이 콜카타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음식물 쓰레기를 놓고 다투었고 피골이 상접한 부녀자들이 길거리에서 쓰러져 죽어갔다고 당시 목격자들은 말한다.

이 때도 영국인들이나 중산층 인도인들은 클럽이나 집에서 풍족한 식사를 했다.

영국 전시내각의 회의록이나 잊혀졌던 정부 문서들,개인 기록 등은 당시 곡물을 가득 싣고 지중해로 향하던 호주 선박들이 인도를 지나갔음을 알려준다.

무케르지는 당시 미국과 호주가 식량 지원 의사를 밝혔지만 영국 전시내각이 배를 내놓지 않아 지원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무케르지는 미국이 자국 배에 실어 곡물을 실어다주겠다고 까지 제의했으나 영국은 답신을 보내지 않았다고 밝혔다.

무케르지는 처칠이 "인도사람들에 대해 거북한 이야기를 많이했으며 비서에게 '인도사람들이 폭격이나 맞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했다"고 폭로했다.

처칠은 "영국이 계속 인도를 통치하도록 미국이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있었기 때문에 인도 사람들에게 화가났다"고 무케르지는 생각한다.

처칠은 식량 지원을 요청한 인도주재 영국 관리들에게 왜 간디는 아직 죽지않았느냐는 말로 응답하기도 했다.

그는 리오 에머리 인도담당국무장관에게 "나는 인도인들을 증오한다.그들은 괴상한 종교를 가진 괴물같은 사람들이다"고도 말했다.

에머리장관은 이런 폭언을 하는 처칠에게 화가나 한번은 "히틀러와 사고 방식에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에머리장관은 일기에도 "인도 문제에서 그(처칠)가 제정신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고 적어놓기도 했다.

무케르지는 처칠의 이런 태도가 빅토리아시대의 가치관이 몸에 배인 때문으로 분석했다.

처칠은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 처럼 인도를 단지 대영제국의 왕관에 박힌 보석의 하나로만 생각했다는 설명이다.

처칠의 일생에 관해서는 수백권의 책이 이미 나와있지만 무케르지의 책은 새로운 사실을 보여주는 획기적 저서로 환영받고있다.

저명한 영국 사학자 맥스 헤이스팅스는 무케르지가 7년간의 작업 끝에 내놓은 이 책을 "의미있는 책이며 영국 독자들에게는 불편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저술가 라마찬드라 구하는 "한 위대한 인물의 편견이 현대사에서 가장 참혹했던 기근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처음으로 명확히 입증했다"고 말했다.

무케르지는 "이 기근은 의도적으로 야기된 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1943년 초에 인도는 처칠의 주장에 따라 쌀을 수출했으며 전쟁 중 영국은 인도를 무자비하게 수탈하면서 기근이 발생한 후에도 수탈을 멈추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무케르지는 벵갈의 대기근이 역사책에서도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벵갈 출신으로 지금은 독일에서 살고있는 그는 "학교 다닐 때 벵갈 대기근에 대해 배워본 적이 없으며 부모님도 말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무케르지는 처칠을 겨냥해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고 대기근을 연구하다 보니 처칠이 관련된 사실을 서서히 알게됐다면서 지금은 처칠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기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그(처칠)는 나보다는 식량이 아깝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무케르지의 말이 뒤따랐다.

maroonj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0/09/08 17:09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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