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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점 목화 면직물과 능산리 백제 면직물>

<문익점 목화 면직물과 능산리 백제 면직물>
면직물 생산과 목화 재배 시점은 구분해야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국립부여박물관은 1999년 부여 능산리 절터 출토 백제시대 직물 1점을 분석한 결과 "고려말 문익점이 중국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처음으로 갖고 들어왔다는 14세기에 비해 무려 800년이나 앞서는 국내 최고의 면직물로 볼 수 있다"고 15일 발표했다.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한국 면직물 역사는 그만큼 쑥 올라간다.

하지만 이번 발표 내용 중에는 세심한 주의를 요하는 대목이 있다. 목화를 재배해 그것을 원료로 직물을 생산하기 시작한 시점과 면직물 사용 시점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이 그것이다.

면직물이 꼭 지금의 우리에게 익숙한 그 목화를 원료로 해서 생산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면직물은 우리에게 익숙한 목화 외의 다른 식물을 재료로 해서 만들 수도 있다.

실제로 문익점 이전에도 한반도에서 면직물을 생산한 기록이 확인된다. 예컨대 고구려와 백제에 비해 그나마 기록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신라에서는 국내에서 면직물을 생산해 중국에 조공품으로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경문왕 9년(869) 조를 보면, 이 해 가을 7월에 신라가 왕자이면서 소판(蘇判)인 김윤(金胤) 등을 당나라에 보내 사은(謝恩)하는 한편, 그 표시로 진봉(進奉) 즉, 받들어 올린 물품 내역을 이례적으로 상세히 공개한다.

이에 따르면 신라가 공물로 보낸 물품은 말 2필을 시작으로 금 100량, 은 200량, 우황 15량, 인삼 100근, 대화어아금(大花魚牙錦) 10필, 소화어아금(小花魚牙錦) 10필, 조하금(朝霞錦) 20필, 사십승백첩포(四十升白첩<疊+毛>布) 40필, 삼십승저삼단(三十升紵衫段) 40필, 사척오촌두발(四尺五寸頭髮) 150량, 삼척오촌두발(三尺五寸頭髮) 300량 등이다.

<문익점 목화 면직물과 능산리 백제 면직물> - 2

이 가운데 40필을 보냈다는 '백첩포'는 여러모로 주목을 받는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면직물 일종이라는 사실이 최근에 밝혀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문헌에 따라서는 '白疊布'(백첩포)로 쓰기도 하는 이 직물을 종래에는 모직물로 보았지만, 민길자 국민대 명예교수가 이를 면직물로 수정한 데 이어 최근 들어 상명대 박선희 교수는 이것이 바로 면직물 일종임을 광범위한 문헌 자료 조사와 고고학 자료를 통해 확인했다.

결국 한반도에서는 이미 문익점이 목화씨를 들여오기 훨씬 이전에 면직물을 생산한 셈이며 최근에는 학계에서도 이것이 통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복식사 전공인 최규순 단국대 교수는 전했다.

고대 한반도에서 직물 산업이 꽤 번창했다는 사실은 신라의 정부 조직과 그 기능을 집약한 삼국사기 직관지에 관급 직물 생산을 담당한 부서가 여러 개 기록돼 있다는 점에서도 간접 확인된다.

백첩포라는 면직물은 고구려에서도 생산했다는 흔적이 있다. 한원(翰苑)이라는 중국의 옛 문헌은 고려기(高麗記)라는 지금은 사라져 버린 고구려에 관한 기록을 인용해 고구려 사람들이 백첩포(白疊布)를 만들었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이 백첩포를 짜는 원료가 곧 우리에게 익숙한 목화, 즉, 문익점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몰래 그 씨앗을 들여오고 그의 장인 정천익이 퍼뜨렸다는 그것과 같은 종류는 아니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상명대 사학과 박선희 교수는 목화에는 크게 아프리카종과 인도종 두 가지가 있으며, 문익점이 들여온 목화는 후자이며, 그 이전에 한반도에서 면직물 원료로 삼은 목화는 초면(草綿)이라고 하는 아프리카종이라고 말했다.

이는 면직물이 반드시 문익점이 가져왔다는 목화, 즉, 인도종만을 재료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어떻든 이와 같은 기록과 더불어 이번 능산리 절터 출토 백제시대 직물에서 확인한 사실을 아울러 고려할 때 고구려ㆍ백제ㆍ신라 공히 면직물을 생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문익점 이전에도 한반도에 면직물은 있었으며, 이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그다지 이견이 없다.

문헌기록과 그에 대한 학계의 연구성과, 그리고 이번 조사성과를 같이 고려한다면 능산리 출토 면직물은 목화가 재료가 아니라 아마도 초면과 같은 다른 원료를 사용한 백첩포일 가능성이 있다.

이번 능산리 직물이 문익점보다 800년 앞선 면직물임은 의심할 나위가 없으며 나아가 이것이 지금까지 실물로 확인된 면직물 중에서는 가장 오래됐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이번 분석결과는 의미가 자못 크다.

하지만 설혹 능산리 백제직물이 면직물로 밝혀졌다 해서 한반도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지금의 그 목화 재배 또한 문익점보다 800년이나 더 거슬러 올라간 백제시대에 시작되었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것이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0/07/16 09:1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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