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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6.25 대한해협해전 승리 산증인 황상영씨

대한해협해전 승리 백두산함
대한해협해전 승리 백두산함(부산=연합뉴스) 오수희 기자 = 한국전쟁 당일 밤인 1950년 6월25일 부산항 앞바다에서 북한 괴선박을 침몰시킨 백두산함. 이 배는 1949년 손원일 해군 참모총장부터 말단 수병까지 월급을 쪼개 1만8천 달러를 만들고 여기에다 이승만 대통령이 내놓은 4만5천달러를 보태 미국 뉴욕주 해양대 실습선을 구입, 군함으로 개조한 것이다. << 지방 기사 참고 >> 2010.6.23
osh9981@yna.co.kr

(부산=연합뉴스) 오수희 기자 =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 6월25일 밤 부산 앞바다에서 해전이 있었고 우리 해군이 대승을 거둬 부산항을 지키고 위기에 처해있던 대한민국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우리를 기억해주지도, 우리에게 감사해하지도 않아요."

황상영(78) 한국해군동지회 회장의 말이다. 황 회장은 18살 때 해군으로 한국전쟁 당일 부산 앞바다에서 발생했던 대한해협해전에 포탄을 운반하는 탄약수로 참전했다.

대한해협해전은 한국전쟁 당일 밤 특수전요원 600여명을 태우고 부산항으로 침범하려던 1천t급 북한 선박을 우리 해군 백두산함(PC-701)이 침몰시킨, 한국전쟁에서 아군이 첫 승리를 거둔 전투다.

황 회장에게서 긴박했던 해전 상황과 대승 배경 등을 들어봤다.

--대한해협해전에 참전하게 된 상황을 말해 달라.

▲1950년 6월24일 오전 11시30분께 백두산함이 진해항에 입항했다. 그날 오후 갑자기 해군본부에서 "북한 괴선박이 남하중이라는 첩보가 있다. 무조건 출동하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이후 "북한 선박 2척 중 한 척이 부산항으로 가고 있다. 이 선박을 추적하라."라는 명령이 이어졌다. 외박 나갔던 승조원들을 수소문해 73명 전원이 백두산함에 타고 곧바로 출항했다.

--북한 선박을 발견하게 된 경위는.

▲부산 앞바다를 수색하던 중 1950년 6월25일 오후 9시15분께 부산항 북동쪽 54㎞ 해상에서 괴선박을 발견했다. 선명도 국기도 보이지 않고 온통 까맣게 칠해져 있었다. 백두산함에서 발광신호로 국적과 출항지, 목적이 등을 물었으나 답이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 강한 불빛을 비추니 배 양 옆에 기관포가 달려 있고 배 꼬리부분에 친 천막속에 완전무장한 군인이 600여명 있었다. 백두산함 최충남 함장이 북한 출신이라 배 옆에 부착돼 있던 인공기를 알아봤다. 사정거리 확보를 위해 곧바로 후퇴했다.

--당시 교전 상황은.

대한해협해전 승리 산증인 황상영씨
대한해협해전 승리 산증인 황상영씨(부산=연합뉴스) 오수희 기자 = 황상영(78) 한국해군동지회 회장이 23일 한국전쟁 당일 부산 앞바다에서 발생했던 대한해협해전을 회고하고 있다. 황 회장은 대한해협해전에 포탄을 운반하는 탄약수로 참전했다. << 지방 기사 참고 >> 2010.6.23
osh9981@yna.co.kr

▲26일 0시15분께 해군본부에 괴선박이 북한 선박인 것 같다고 보고했다. 곧바로 "북한 배로 확인되면 발포하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즉시 주포였던 3인치 포 1발을 쏘자 곧바로 북한 선박에서 쏘아댄 기관총탄과 소총탄이 백두산함으로 비오듯 쏟아졌다. 거리를 뒀기 때문에 소총탄은 백두산함에 미치지 못했다.

3인치 포 50발, 40㎜, 51㎜ 기관포를 정신없이 발포했다. 북한선박에서도 기관포를 무차별적으로 발포했다. 20여분 간 정신없는 교전 끝에 북한 선박은 선명한 불꽃과 검은 연기를 내뿜은 뒤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전투 후 상황은.

▲북한 선박이 침몰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역을 서너차례 돌았다. 바다에 떠있는 선박 파편을 발견했고 침몰해 있는 선체도 확인했다. 해군본부에 전투결과를 보고한 뒤 지시에 따라 동해 묵호항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적은 전원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교전 중 아군도 2명이 숨졌고 2명이 다쳤다.

--백두산함은 어떻게 탄생했나.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해군이 창설됐지만 군함 한 척 없었다. 1949년 손원일 해군 참모총장이 군함구입 모금운동을 제안, 총장부터 말단 수병까지 월급을 쪼개 1만8천달러를 만들었다. 여기에다 이승만 대통령이 내놓은 4만5천달러를 보태 미국 뉴욕주 해양대 실습선(450t)을 구입, 군함으로 개조했다.

--대한해협해전 승리의 의미는.

▲단순히 북한 선박을 부산 앞바다에서 침몰시킨 게 아니다. 북한은 탱크로 38선을 넘으면서 동시에 바다로 부산항을 침공해 전후방에서 남한을 공격하고 남한을 국제사회로부터 차단하려는 작전을 쓴 것이다. 그 때 부산항이 뚫렸다면 국제사회의 병력과 군수물자가 한국으로 들어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전쟁에서 아군의 첫 승리이자 대한민국이 현재와 같이 온전하도록 구해낸 해전이다.

--당시 전우들은 어떻게 지내나.

▲백두산함 승조원이 73명이었다. 현재 살아있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20명이다. 부산시장이 정부를 대신해 1년에 한번 6월24일 참전자와 그의 가족들과 저녁을 함께 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없어졌다. 1년에 한번이라도 우리를 기억하는 행사가 다시 이어졌으면 하는 게 백두산함 참전자들의 소망이다.

osh9981@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0/06/23 06:33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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