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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간광산에 새겨진 식민지의 아픔

송고시간2010-06-18 11:46

<망간광산에 새겨진 식민지의 아픔>
'재일조선인 아리랑' 출간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나의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트럭운전수 조수를 비롯해 갖은 일을 해왔습니다. 그중에서도 망간광산에서의 일에 아버지는 가장 열정을 쏟았습니다. 좁은 광산의 갱도에서 쭈그린 자세로 포대에 200킬로그램이나 되는 망간 광석을 등에 지고 나르는 노동은 상상을 초월하는 가혹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운반한 망간은 국가의 기반이 되는 철강을 생산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

이용식 전 단바(丹波)망간기념관 관장이 아버지이자 기념관의 1대 관장인 이정호 씨를 회고하는 말이다. 얼핏 들으면 산업화 시대 역군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국가'는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다.

이 전 관장이 최근 써낸 '재일조선인 아리랑'(논형 펴냄)은 일본 망간광산에 평생을 바친 재일조선인들의 이야기와 이들이 겪은 고통을 세상에 전하려고 이정호 씨의 삶을 담은 책이다.

일본의 망간광산은 2차 세계대전 전에도 후에도 사실상 일본의 국가 발전을 견인한 곳이었다. 망간은 철강 생산뿐 아니라 건전지, 병(甁) 등 일상생활의 필수품을 만드는 데도 소중한 자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망간광산은 대개 일본인들이 아니라 재일조선인들의 노동으로 유지됐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 아무도 일하려 하지 않는 이곳에서 일할 사람을 일제가 대부분 조선인 강제연행을 통해 조달했던 탓이다.

물론 모두가 강제연행으로 이곳에 온 것은 아니다. 강제연행이 시작된 1930년대 이전에 이곳에 조선인이 왔던 기록도 있고, 모집을 통해 온 조선인도 있다. 하지만 이씨는 이에 대해 "강제연행도, 모집연행도, 징용도, 일본군에게 토지를 빼앗겨 먹을 것이 없어 일본으로 건너온 것도, 모두가 강제연행"이라고 당시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고 이 전 관장은 전했다.

책에는 모집이라는 명목으로 강제로 망간 광산에 끌려왔다거나, 일이 너무 힘들어 몇 번이고 도망쳤다거나, 당시 월급이 밥값과 같아 돈을 모으는 건 불가능했다는 등의 피해자 증언도 실렸다. 이들 피해자 대부분은 이씨처럼 진폐증을 앓았다.

NHK 방송이 진폐증에 대한 특집을 방송하고자 피해자를 취재해놓고도 결국 방송되지 못한 이야기와 일본 정부가 진폐증을 노동재해로 인정하면서도 국가에 돈이 없다는 이유로 대부분 피해자들을 치료비 지원이 안되는 낮은 등급으로 등록했다는 이야기도 담았다.

진폐증에 시달리면서도 "내 무덤 대신이다. 조선인의 역사를 남기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단바망간기념관을 세운 이씨의 노력과 결국 운영자금 등의 문제로 지난해 5월 아버지가 만든 기념관을 폐관한 이 전 관장의 아쉬움도 고스란히 글로 옮겼다.

뒷부분에는 조선인의 망간광산 강제연행을 "객지로 돈벌이하러 떠난 것"이라고 표현한 다나카 사카이 전 교도통신 기자의 '망간 파라다이스'의 내용을 피해자들의 증언을 들어 비판하는 내용도 실려 있다.

배지원 옮김. 200쪽.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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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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