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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서로 윤색된 김삿갓ㆍ박문수 이야기>

<대중서로 윤색된 김삿갓ㆍ박문수 이야기>
"풍자시는 김삿갓, 어사는 박문수로 통합"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오간세시옷(吾看世시옷) / 시비재미음(是非在미음) / 귀가수리을(歸家修리을) / 부연점디귿(不然点디귿)."

풍자시의 대가로 통하는 조선시대 김삿갓(김립<金笠>)이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한시다.

그냥 봐서는 뜻이 통하지 않지만, 시옷을 사람 인(人)으로, 미음을 입구(口)로, 리을을 몸 기(己)로, 디귿 위에 점을 찍은 것을 망할 망(亡)으로 각각 바꿔놓고 읽으면 절묘하다.

"내가 세상 '사람'을 보니 / 시비가 '입'에 있더라 / 집에 돌아가 '몸'을 닦아라 / 그렇지 않으면 '망'하리라."

하지만,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저서 '한시미학산책' 등에서 경망한 선비에게 주는 교훈을 담은 이 시가 김삿갓으로 불리는 김병연(金炳淵. 1807~1863)의 작품이 아니라 정조 때 정승을 지낸 이서구의 시라고 주장한다.

이밖에 매월당 김시습 등의 작품도 김삿갓의 시로 둔갑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신익철 교수도 "백호 임제나 석주 권필 등이 쓴 시가 김삿갓의 시로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풍자시나 동음이의어, 언문을 사용한 희작시(戱作詩. 말놀이시)의 상당수가 김삿갓의 시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이런 현상은 1920년대 후반 이응수의 '김삿갓풍자시전집'이 항간에 김삿갓의 시라고 전해지는 것을 완벽하게 확인하지 않고 김삿갓의 시로 실은 데 따른 것이라고 진단한다. 이 책 이후로 이런 내용이 대중적인 책에 그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대중서로 윤색된 김삿갓ㆍ박문수 이야기> - 2

대표적인 '암행어사'로 불리는 박문수도 사실은 임금으로부터 '암행어사'로 임명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심재우 한중연 교수는 17일께 발간 예정인 '역사와 실학' 41집에 기고한 논문 '역사 속의 박문수와 암행어사로의 형상화'에서 지금 전해지는 박문수의 행적이 윤색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따르면 실제로 박문수는 임금으로부터 '암행어사'로 임명된 적은 한 번도 없고, 다만 '별견어사'로만 4번 파견됐다는 것이다.

별견어사는 '별도로 파견된 어사'를 일컫는 말로, 부분적으로 암행어사처럼 자기 신분을 속이는 일을 하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공개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어사라고 심 교수는 설명했다.

심 교수는 이런 박문수가 '암행어사'의 대명사가 된 것은 1910년대 중반의 소설 '박문수전' 때문이었다고 추정한다. 이 책은 박문수를 백성의 고충을 해결해 주는 어사로 그리는데, 이 당시 제국주의 침략을 받은 조선인들은 이런 역사전기소설 속의 영웅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박문수의 영웅 이미지가 널리 퍼졌다고 심 교수는 추정했다.

이후 1970~1980년대 소설과 위인전 등에서도 '암행어사 박문수'가 대중적 사랑을 받으며 영웅 이미지가 굳어졌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훌륭한 어사 이미지는 박문수로 '여권 통합'되고, 풍자시인 이미지는 김삿갓으로 '야권 통합'되는 모습을 보인다."라며 "읽을거리가 없던 시절에 마구잡이로 낸 출판물의 영향"이라고 이런 현상을 진단했다.

comma@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0/05/11 16:16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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