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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수의 '하녀' VS 1960년 故 김기영 원작

송고시간2010-05-09 15:18

<임상수의 '하녀' VS 1960년 故 김기영 원작>
원작보다 긴장감 줄고 에로티시즘 강조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고(故) 김기영(1919~1998) 감독의 '하녀'(1960)는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하녀'는 아내(주증녀)가 있는 중산층 남자(김진규)가 젊은 하녀(이은심)의 유혹을 받아 관계를 맺고 난 뒤 일어나는 비극을 그렸다.

임상수 감독이 전도연을 내세워 50년 만에 다시 만든 '하녀'는 원작과 많은 차이가 있다. 임 감독은 최근 시사회에서 영화를 공개하고 나서 리메이크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원작을 잊어버리려 했다고 말했다.

◇ 달라진 캐릭터

리메이크작을 원작과 비교하면 하녀는 나이가 10살 넘게 많아진 반면 여주인은 그만큼 젊어졌다. 전도연이 하녀로 나오며 이정재와 서우가 주인집 부부를 연기했다.

원작에서 1941년생으로 당시 19세였던 이은심이 연기한 하녀는 첫 등장에서부터 담배를 피우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뿜어낸다.

<임상수의 '하녀' VS 1960년 故 김기영 원작> - 3

대담하게 쥐를 맨손으로 들어 보이는가 하면 옷을 벗고 주인 남자를 유혹하는 과감함이 있다. 하녀는 공장에서 일하다 온 처녀로 묘사된다.

임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전도연은 식당에서 일하던 이혼녀라는 설정이다. 주인집 일가족에게 상냥하고 공손하면서 순진한 여자로 주인 남자가 유혹할 때도 솔직한 욕망에 몸을 맡긴다.

존재감은 원작의 하녀가 훨씬 강하다. 이은심이 광기에 휘말리는 카리스마 강한 하녀를 연기했다면 전도연이 연기한 하녀는 순진하고 착한 여자다.

원작의 주인집은 막 2층집으로 이사한 중산층 가정이다. 주인 남자는 여공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며 여주인은 재봉틀을 쉴 새 없이 돌려가며 돈 버는데 열심이다.

리메이크작의 주인집 부부는 호화로운 저택에 사는 상류층이다. 남편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인물이며 아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 없는 삶을 살아간다.

전도연이 부각되면서 이정재와 서우가 연기한 주인집 남녀의 비중은 줄었다.

원작에는 없지만 임 감독의 영화에서 비중 있게 등장하는 캐릭터는 윤여정이 연기한 나이 든 하녀다. 오랫동안 주인집의 모든 일을 총괄해 온 그는 하녀와 주인 남자의 은밀한 관계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이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 한다.

윤여정은 김기영 감독 자신이 '하녀'를 리메이크한 '화녀'(1971)에서 술 취한 주인 남자에게 순결을 잃고 임신하는 식모 역할로 영화에 데뷔하기도 했다.

<임상수의 '하녀' VS 1960년 故 김기영 원작> - 2

◇ 긴장감은 사라져

원작은 '그로테스크하다'는 평을 받았을 정도로 음산한 분위기 속에 긴장감이 넘친다.

영화 시작부터 주인집 아이들이 하는 실뜨기 놀이를 클로즈업하고 쥐와 쥐약을 여러 차례 보여주면서 벌어질 사건을 암시한다. 배경으로 깔리는 음악과 쉴새 없이 내리는 비 등도 긴박한 느낌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한다.

원작에서 2층집이라는 배경은 주인집의 경제력을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주인이 1층에서 재봉틀을 돌릴 때 2층에서는 주인 남자가 피아노를 치고 옆방의 하녀가 그를 갈망한다. 2층의 하녀는 1층의 여주인과 대립하며 계단은 중요한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으로 활용됐다.

리메이크작은 전도연이 임신하기 전까지는 별다른 긴장 없이 흘러간다. '에로틱 서스펜스'를 표방했지만 '서스펜스'보다 '에로틱'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전도연이 허벅지를 드러내는 장면에 이어 전도연과 이정재의 노골적인 섹스신은 직접적인 정사 장면을 보여주지 않았던 원작과 비교할 때 50년의 차이를 확연하게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임상수 감독은 원작의 액자식 구성은 사용하지 않았으며 원작과 다른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줬다.

임 감독의 영화는 대리석이 깔리고 화려한 샹들리에가 걸린 거대한 저택에 수십억원대의 미술 작품을 배치하는 등 미술에 큰 공을 들였다.

◇ 노골적 계급 갈등

원작은 도농 간의 경제적 격차가 발생하고 시골 처녀들이 도시에서 식모로 많이 일했던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작품이다. 빈부 격차가 극도로 커진 오늘날의 현실에 초점을 맞춘 임상수 감독의 영화에선 계급갈등이 훨씬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원작에서 하녀가 임신했을 때 중산층 가정은 붕괴할 위기에 내몰린다. 여주인은 하녀의 임신 사실이 알려지면 남편이 직장에서 해고될 것이 무엇보다 걱정이다.

하지만 리메이크작에서 하녀의 임신은 여주인에게만 용서하기 어려운 일이자 위협일 뿐 주인집에 큰 타격은 되지 않는다.

원작에서 안성기가 연기한 주인집 아들이 하녀에게 심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면, 리메이크작에서 주인집 딸은 하녀에게도 예절 바르기 그지없다. 그러나 이는 다른 사람에게 잘 대하는 것이 나 자신을 높이는 일이라는 아버지의 말 때문이다.

극 중 주인 남자의 대사처럼 하녀는 이들에게 인격적으로 존중해야 할 대상이 아닌 "근본 없는 것들"일 뿐이다.

kimy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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