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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 '만인보' 완간

송고시간2010-04-09 09:17

<고은 시인 '만인보' 완간>
종착지는 5.18 광주

(서울=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 고은(77) 시인의 연작시편 '만인보'(萬人譜)가 9일 총 작품 수 4천1편, 전 30권으로 완간됐다.

만인보는 시인이 1980년 내란음모 및 계엄법 위반으로 육군교도소에 수감 중 구상한 것으로, 1986년 1-3권이 나왔다.

완간은 구상한 지 30년 만에 마무리됐다.

<고은 시인 '만인보' 완간> - 3

만인보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우리 민족의 다양한 얼굴을 그려, 조연급 정도만 포함해도 등장인물이 5천600여 명에 이른다.

이 때문에 '한국 문학사 최대의 연작시'라는 수식어 외에 '시로 쓴 한민족의 호적부', '시로 쓴 인물 백과사전'이라는 평도 듣는다.

◇새로운 시편들 = 이번에 출간된 것은 완간을 기념해 기존에 출간된 1-26권을 출간 시기별로 합본하고 여기에 신간 27-30권을 더한 11권의 양장본이다.

지난해 7월 원고를 탈고한 시인은 역사적 사실 관계와 인명 등을 다시 점검하는 등 4천1편을 손 봤다고 한다.

662편을 담은 27-30권에는 "그 죽음은 무덤이 없어야겠다 차라리//백년 이상/오늘일 것"으로 시작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다룬 '봉하 낙화암'을 비롯, 당대 인물들을 다루거나 친일 행적을 비판한 시 등이 담겼다.

압도적으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시편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다.

5.18 직후 감옥에서 만인보를 구상한 시인은 올해로 30주기를 맞는 그때를 불러내 잔혹했던 장면이나 유가족의 고통 등을 가감없이 전하는가 하면 뱃속의 태아인 상태로 학살당한 아기가 2030년 5월 50세의 최연소 대통령이 돼 광주를 방문한다는 상상력('2030년 5월')도 펼친다.

또 시인은 광주시민, 학생, 부모 자식 등 여러 사람에게 애정이 어린 눈길을 보냈다.

4천1편의 마지막을 장식한 시 '그 석굴 소년'은 "낙조 속에서 태어난 아이"가 버림받고 재수 없는 아이라고 핍박받다 "끝없이 읽어야 할 책이" 기다리는 석굴로 들어가 "세상의 시간"이 아닌 영겁의 시간을 보낸다는 내용이다.

"그대로 하여금 이 세상의 낙조 가득히/이 세상 길고 긴 이야기 다함 없는 오늘 밤도 그대 따라가는/만인의 삶 이야기 삶과 죽음 이야기 그칠 줄 모르리//지금 세상 밖은 온통 머리 푼 바람 속//영겁의 소년 수레여 다할 줄 모르는 영겁의 돌책이여 돌노래여 돌이야기들이여"(일부)

책 서두에 그간 집필했던 시간을 돌아보듯 "만인보 25년, 이 바람 치는 여덟 바다에 그물을 펼쳐두었다. 이제 그 그물을 뉘엿뉘엿 걷어올린다"고 적은 시인은 완간을 기념해 "二十五年與萬人"이라고 적은 붓글씨도 보냈다고 출판사 창비는 전했다.

각권 맨 앞 지면에는 "만인만이 만인이 아닙니다. 만물도 만인입니다" 등 시인이 쓴 붓글씨 12점이 인쇄돼 실렸다.

◇만인보의 역사 = 시인은 1권 서두에 "만인보는 막말로 말해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에 대한 노래의 집결"이라고 적었다.

첫 시는 '서시'였다. "어느 누구도 저 혼자일 수 없는/삶의 날들이 있다//오 사람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기어이 사람이다"(일부)

1-3권(1986)과 4-6권(1988)은 시인이 "우선 내 어린 시절의 기초환경으로부터 나아간다"고 밝힌 것처럼 코흘리개 시인에게 '가갸거겨'를 깨우쳐준 '머슴 대길이'를 시작으로 가난했지만 정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7-9권(1989)은 고향을 벗어나 1950년대 가난한 세월을 살아오면서 만나고 스쳐간 사람들의 이야기다.

7년 후 나온 10-12권(1996)과 13-15권(1997)은 주로 1970년대 사람들을, 또다시 7년 뒤에 나온 16-20권(2004)은 식민지 시대를 거쳐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직후 소용돌이에 휩쓸린 다양한 삶을 다뤘다.

21-23권(2006)은 4.19를 배경으로 주축인 학생들과 반대편의 정권 실세, 그리고 보통 사람들의 삶을 포착했다.

24-26권(2007)은 특히 고승들의 삶과 행적을 좇으며 신라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한국 불교와 고승들의 면모를 보여줬다.

만인보에서 다뤄진 사람들은 시인의 가족이나 동네 사람들에서 시작해 저마다 사연을 간직한 민초와 역사적 인물이 망라돼 있다.

진보당 당수 조봉암, 빨치산 이현상, 갑신정변의 김옥균, 대동여지도의 김정호, 언론인 겸 정치가 장준하,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사상가 함석헌, 시인 임화 김지하 노천명, 문익환 목사, 차지철,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 등 다양하다.

만인보에는 수많은 정치인, 문인, 민주화 운동가, 학자, 전·현직 대통령, 대중 음악가, 미술가, 친일 인물 그리고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인물도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어 우리 시대의 초상을 그렸다는 평을 받는다.

<고은 시인 '만인보' 완간> - 2

◇완간 기념 심포지엄도 = 출판사 창비는 출간을 기념해 9일 오후 프레스센터에서 만인보를 논하는 심포지엄을 연다.

프랑스의 시 전문지 '포에지' 편집위원으로 한국 시에 관심이 많은 클로드 무샤르는 '고은의 기쁨'이라는 제목의 사전배포된 기조발제에서 "만인보에 실린 시들은 각각 개인으로 존재하는 수많은 한국인들을 소개한다"며 "거대한 시 기획인 만인보는 또 하나의 방대한 작품인 빅토르 위고의 '세기의 전설'을 생각나게 한다"고 말했다.

무샤르는 "지금 여러 작품들이 번역되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서 한국시를 수용하는 비평가들의 목소리는 충분히 들려오지 않는다"며 현지발 비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안선재 서강대 명예교수는 '영어권에서의 고은'이라는 주제 발표문에서 "이미 출판된 열 권의 영문 번역을 포함, 고은의 작품은 지금까지 10개 언어로 36권이 번역됐다"며 "다른 25권도 준비 중인데 여기에는 영어 외 5개의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것들도 있다"고 소개했다.

심포지엄에서는 이밖에 문학 평론가 염무웅이 '개인사와 민중사의 복합적 대서사'라는 제목으로 기조발제하고, 시인이자 소설가 김형수의 '고은, 동참된 존재',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박사과정에 있는 박성현의 '문학과 역사의 접점:사회전기로서의 만인보' 등이 발제될 예정이다.

저녁에는 고은 시인의 문학인생을 영상으로 돌아보고 유안진, 김사인, 장석주, 김해자, 김근 등 후배 시인이 만인보에 수록된 시를 낭송하는 등 완간 기념 축하연도 열린다.

◇고은 시인은 = 1933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18세에 출가해 수도생활을 하던 중 1958년 '현대시'와 '현대문학' 등에 추천돼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 '피안감성'(1960)을 비롯해 시선집 '어느 바람', 서사시 '백두산'(전 7권), '고은 전집'(38권) 등 저서는 150여권에 달한다.

1989년 이래 영미, 독일, 프랑스, 스웨덴을 포함 20여 개 국어로 시선 및 시선집이 번역됐다. 만해문학상, 대산문학상, 스웨덴 시카다상 등을 받은 그는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 중 한 사람으로 거론된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의장, 하버드 옌칭연구소 특별연구교수 등을 거쳤다.

현재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 이사장이며, 서울대 기초교육원 초빙교수와 단국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js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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