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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6.25> 수도사단 26연대 무전병 손담씨

송고시간2010-04-12 07:30

소년병 입대했던 손담씨
소년병 입대했던 손담씨

(진해=연합뉴스) 김재홍 기자 = 6.25 당시 15세의 어린 나이에 소년병으로 자원입대해 수많은 전투에 참가했던 손담 6.25참전전우회 진해시지회 사무국장이 6.25전쟁을 회상하고 있다. 2010.4.12 <<지방기사 참고>>
pitbull@yna.co.kr

15살에 자원입대.."잔혹한 전장에 분노"

(진해=연합뉴스) 황봉규 기자 = "15살 어린 나이에 국군이 더 물러설 수는 없다는 생각에 자원입대해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누가 일으킨 전쟁이기에 이토록 잔혹할까'하는 분노가 치밀 때가 많았습니다"

6.25전쟁이 일어난지 2개월여 뒤인 1950년 8월 자원입대해 총 한번 쏴보지 못하는 초단기 훈련만 받고 전장에 투입됐던 손담(75) 6.25 참전유공자회 진해시지회 사무국장은 자신이 겪었던 전장을 6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했다.

◇나이 속이고 자원입대..무전병되다 =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손씨는 당시 교육도시인 청주로 유학가기 위해 조기잡이 배를 얻어 탈 요량으로 13살때 진해로 이사왔다.

그러나 부모님 슬하에 동생들이 태어나면서 진해에 눌러앉았고 공립중학교 2학년 때 6.25전쟁이 터졌다.

전쟁이 시작된지 두달만에 국군은 낙동강까지 밀려나 방어전선이 형성됐고 마산과 지척인 진동에까지 인민군이 들어와 교전을 벌였다.

`쌕쌕이'라고 불리던 전투기(F-80)의 폭격소리가 가끔 들리고 둔탁한 프로펠러 소리를 내는 헬기가 부상자를 수송하느라 분주히 오가던 시절이었다.

6.25 회상하는 손담씨
6.25 회상하는 손담씨

(진해=연합뉴스) 김재홍 기자 = 6.25 당시 15세의 어린 나이에 소년병으로 자원입대해 수많은 전투에 참가했던 손담 6.25참전전우회 진해시지회 사무국장이 6.25전쟁을 회상하고 있다. 2010.4.12 <<지방기사 참고>>
pitbull@yna.co.kr

손씨는 전교생 780여명 가운데 210명의 선후배들과 자원입대를 결심했다.

"전쟁이 터진 뒤 수도 서울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인민군이 계속 밀고 내려오면서 진해까지 총소리가 들렸다"며 "어린 마음에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고 생각했지.."

손씨는 18살로 나이를 속여 입대했고 진해에서 기차를 타고 `용진가'를 부르며 부산 영도의 통신중학교에 도착해 2주간 총 한번 쏘아보지 못하는 `급속 훈련'을 받은 뒤 `소년병'이 됐다.

◇포항에서 겪은 첫 전투 = "군번을 부여받고 수도사단 26연대에 배치된 나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9월 중순에 형상강을 두고 인민군과의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던 포항으로 향했어"

15살의 어린 소년이 감당하기에 벅찬 무게 30㎏의 무전기를 지급받고 고작 이틀간의 실무 교육을 거쳐 전장에 투입됐다.

형상강을 건너 포항 시가지를 탈환해야 진군할 수 있는 상황에서 아군이 수차례 공격을 감행했으나 기관총을 앞세운 완강한 적의 저항에 희생만 늘어날 뿐이었다.

대대장이 손씨가 메고 있던 무전기에 대고 항공지원을 요청하자 곧이어 `쌕쌕이'가 나타나 고막이 찢어질듯한 굉음을 내며 적진에 공격을 퍼부었다.

제10중대장 윤사섭 중위가 1개 소대 규모의 특공대를 돌아보며 `나를 따르라'고 외치며 돌격해 적의 기관총 진지를 무력화시켜 형상강을 건너 진격할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처음 닥친 전투라 오금이 저릴 정도로 바짝 긴장한 탓에 정신없이 보냈다"라고 그는 회상했다.

◇무전기도 버리고 필사의 탈출 = 형상강을 건너 북진하던 손씨의 부대는 1950년 10월 하순 함흥에 입성한 뒤 장진호 쪽으로 전진했다.

6.25전쟁 회상하는 손담씨
6.25전쟁 회상하는 손담씨

(진해=연합뉴스) 김재홍 기자 = 6.25전쟁 당시 15세의 어린 나이에 소년병으로 자원입대해 수많은 전투에 참가했던 손담 6.25참전전우회 진해시지회 사무국장이 6.25전쟁에 대한 생생한 경험담을 들려주고 있다. 2010.4.12 <<지방기사 참고>>
pitbull@yna.co.kr

장진호에서 진지를 구축한 뒤 방어하고 있던 저녁 무렵에 2발의 신호탄이 푸른 불꽃을 내뿜으며 밤하늘로 치솟다가 사라지기가 무섭게 중공군이 일제히 포사격을 가해왔다.

손씨의 부대가 위치한 주둔지를 중심으로 분당 120여발의 집중 포격이 4∼5분간 계속됐다.

큰 바위 밑에 납작 엎드려 포격을 피하고 있던 순간 손씨의 머리위에서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파편이 비오듯 퍼부었다.

`이제 죽었구나'라는 탄식이 터져 나오는 것과 동시에 사방에서 중공군이 쏟아져 나왔다.

중공군이 손씨의 부대가 전진하던 낮에는 숨어있다 밤이 되자 포위망을 좁히며 전면공격을 가해왔던 것.

"방향감각을 잃고 무조건 달리다 적진을 향해 뛰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급히 부대지휘소로 되돌아와서는 적이 사용하지 못하게 무전기를 파괴하고 송신기의 중요한 부분만 떼어내 필사적으로 깜깜한 밤길을 달렸어"

넘어지고 달리기를 반복하면서 8시간여가 지난 새벽녘에 안전지대라 생각되던 하천에 도착했으나 매복했던 중공군이 기관총을 쏘아대 또다시 2시간여간 필사적으로 달린 끝에 가까스로 아군을 만나 겨우 목숨을 구했다고 그는 말했다.

◇99일간의 수도고지 탈환 전투.."잔혹한 모습에 분노" = 1952년 7월7일부터 10월14일까지 99일간 수차례 주인이 바뀐 강원도 금화지구 수도고지 전투는 6.25전쟁사에서 치열하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중공군이 군사분계선 설정에 대한 협상주도권을 쥘 목적으로 작전상 유리한 수도고지를 빼앗기 위해 결사의 공격을 해왔기 때문이다.

쌍방 포격으로 산의 높이는 1m가량 낮아지고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살아남지 못했다.

소년병 입대했던 손담씨
소년병 입대했던 손담씨

(진해=연합뉴스) 김재홍 기자 = 6.25 당시 15세의 어린 나이에 소년병으로 자원입대해 수많은 전투에 참가했던 손담 6.25참전전우회 진해시지회 사무국장이 6.25전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0.4.12 <<지방기사 참고>>
pitbull@yna.co.kr

"밤에 빼앗겼던 고지를 낮에 되찾고 나면 복부 관통상을 입어 내장이 튀어나오고 사지가 찢어진 채 전사한 전우들이 주변에 즐비했다"고 당시의 처절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99일간 이어진 전투에서 적군과 아군의 인명피해는 9천500여명에 이르렀다.

"피비린내나는 생지옥에서 전사자를 수습하면서도 `수도고지 사수'가 우리 부대에 주어진 작전명령이자 임무였어"

손씨는 "거적에 둘둘 말린 채 후송되는 전우들의 시체들을 보면서 살아남았다는 것이 오히려 숨막히는 순간들이었다"며 "누가 일으킨 전쟁이기에 이토록 잔혹할까 하는 분노가 치밀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국가에 바친 인생..유공자 예우 아쉬워 = 손씨는 수도고지 전투 이후에도 공비 토벌 작전에서도 활약하는 등 1955년 1월20일 전역할 때까지 군인으로서 젊음을 나라에 바쳤다.

화랑무공훈장, 보국훈장 등 각종 훈장과 대통령 부대표창과 해군참모총장 표창, 국무총리 표창 등을 수상했다.

그러나 정부는 한달 9만원의 명예수당을 주는데 그쳐 참전유공자에 대한 예우는 부실하다고 손씨는 지적했다.

"올해는 6.25전쟁 60주년이 되는 해로 어린 나이로 자원입대한 소년병들의 애국충정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통해 예우받고 싶다. 국회에 관련 법안을 검토해 줄 것을 건의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요즘 국가안보관이 너무 해이해졌다"며 "6.25전쟁의 실상을 제대로 알려 자라나는 후세들이 올바른 국가가치관을 가지도록 하는데 여생을 보내도록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손씨는 군 복무를 마친 뒤 해군 군무원 공채에 합격해 38년간 근무한 뒤 1996년 6월 군무 부이사관으로 퇴직했다.

b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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